완성된 이야기는 아니라 올린 적 없는 오메가버스 + 가이드버스 배경 소설의 외전 같은 내용입니다. 본편은 BL로, 용어는 이전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에트와르와 별지기(가이드)의 조합입니다.

브릿G의 스노우볼 이벤트 응모작입니다. A4 한 장을 조금 넘는 짧은 이야기지만 단번에 쓰는 건 오랜만이네요. 내년엔 조금 더 자주 써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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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은 눈이 흩날린다. 흩날린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게, 기록적인 폭설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는 눈 쏟아지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전깃줄 위에도 눈이 쌓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일 날씨가 포근하다는 거네요.”
 “아마 내일이면 다 녹겠지.”

 녹는 건 녹는 것이지만, 이정도 폭설이면 한참 전에 그랬던 것처럼 눈 녹는 속도보다 내리는 속도, 쌓이는 속도가 빠를 것이다. 아마도 광화문에서 또 스키어가 등장하지 않을까.

 “스노보드는 평지에서 타기는 어려우니까요.”
 “서울 복판에서 크로스컨트리라.”

 따뜻한 라떼 한 잔씩을 손에 든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사이에 낮은 탁자가 하나 놓여 있지만 소파는 창 밖을 향하고 있는 터라 마주보고 있지는 않았다. 원래 에트와르와 가이드, 별과 별지기를 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참이었다.

 “아니, 그래도 저랑 베키도 에트와르와 가이드니 문제 없잖아요?”
 “페어가 아니잖아. 그리고 나는 가이드라고 하기도 뭐하고.”

 베아트리체 위고는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물리적인 초능력을 포함하여 다양한 형태의 능력을 지닌 에트와르들은 그 자체로는 불완전하다. 그들을 지지하고 지탱하는 것은 깊은 연대로 묶인 가이드들. 능력의 조율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연대까지 하다보니 얕게는 정신적 파트너, 깊게는 배우자나 반려로 함께 지내기 마련이다. 베아트리체는 그 중에서도 특이한 경우로, 에트와르였던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능력 전이가 일어나 에트와르로서도 상당한 능력을 가진 가이드였다. 가이드가 에트와르의 능력을 함께 공유하는 건 자주 발생하는 일이었지만 베아트리체는 자신의 반려와 함께 그 능력이 꽃피듯 개화하여 가이드이자 에트와르로서 활동할 수 있는 매우 드문 상황이었다. 게다가 반려가 사망한 뒤에도 에트와르로서의 능력은 그대로 남고 가이드로서의 활동도 가능하였기에, 지금은 FDI(Foundation D’etoiles Internationales)에서 가이드의 총 관리 자문역을 맡고 있었다. 나이가 나이다보니 실무진으로서의 활약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본인은 더 힘이 될 수 있는 현역 활동을 자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배우자가 남긴 아이를 키우고, 아이가 자라 또 가족을 이루고 손자까지 보다보니 요즘에는 예전과는 달리 이런 풍경을 보고 조금 감성적인 반응을 보이곤 한다.

 “괜찮아요. 뭐, 감상적인 반응을 보이면 어떤가요. 가끔은 뒤를 돌아보며 쉬셔도 좋을 나이잖아요.”
 “아직은 일러. 아직 환갑 조금 넘겼을 뿐이라고.”
 “네네, 올해 한국나이로는 예순 다섯이시지요. 아직 대중교통 무료탑승 안될 나이십니다.”

 진경이 정확하게 찔러오자 베아트리체는 조용히 라떼를 마셨다.

 “그 분이랑 눈이랑 무슨 이벤트라도 있으셨나요? 청혼이라거나?”
 “그런 건 없었어.”

 진경의 질문에 특별히 염색하지 않아 흰색과 회색이 뒤섞인 머리칼을 귀에 살짝 꽂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20년 가까이 함께 한 사람이니 뭘 보든 생각 안 날 수 없잖아. 감상적이 된다는 건, 옛 기억을 떠올리고 자주 펼쳐든다는 거야.”
 “그러면 또 어떤가요. 앨범 꺼내 보는 것과도 비슷한 것을.”

 진경은 대답하며 잠시 카페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문제가 있어 보이는 다른 손님들은 없었고, 계산대를 맡은 모리나 라떼아트에 몰두한 보현이나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상담가로서의 업무를 빼먹을 수는 없으니, 대화 도중에 틈틈이 둘러보고 있었다. 사람의 감정을 수월하게 읽어내는 에트와르로서의 능력이 이럴 때는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둘러본다 해도, 모르는 사람은 카페 매니저가 둘러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아는 사람들은 업무중이려니 생각하고 넘어갈 것이다.

 “나랑 대화하면서 잠시 쉬겠다더니 또 일?”

 베아트리체의 핀잔에 진경은 살짝 웃었다.

 “그야, 업무 시간이니 꾸준히 둘러봐야지요.”

 대답에 살짝 눈을 흘기며 베아트리체는 다시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온 세상이 하얗게, 눈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서울도 그렇지만 하여간 한국에서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드물대요. 뭐, 이번도 크리스마스 전에 내리는 눈이니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남산이나 궁들은 눈이 금방 녹지는 않을 테니 명동성당이나 혜화동성당 같은 곳은 하얀 장식으로 성탄을 맞이하겠네요.”
 “응, 그럴거야.”

 꾸준히 가야하지만 몇 번 미사를 못간 것에 대한 보속은 마쳤고, 이제 정결하게 1년 중 가장 큰 성탄 미사에 참여하면 된다. 세례명인 그 이름대로 베아트리체는 모태신자였다. 그렇다보니 성탄을 장식하는 이 눈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눈 치우는 것은 나이 많은 그녀 몫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쯤 손자들이나 조카들은 다들 나서서 성당 주변의 눈 치우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 계셨네요.”

 목소리가 들려와 돌아보니 제레미였다. 일 때문에 본부에 온다더니 업무가 끝난 모양이었다.

 “성당에 눈 치우는 거 도와달라는 연락이 와서 먼저 가볼게요. 저녁 즈음에는 눈 그친다니 그 때까지는 여기 계세요.”

 “나도 같이 가서 치워도 되는데?”
 “아침에 감기기운 있다고 하셨잖아요? 눈 치우는 거 돕다가 감기 걸리면 안돼요.”

 단호하게 말하며 웃음과 함께 퇴장하는 제레미를 보는 베아트리체의 눈은 따뜻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진경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잘컸네요.”
 “응, 잘 컸어. 애들도 그렇고.”

 가족 단체 메신저를 보니 제레미의 딸 크리스, 그리고 제레미의 가이드인 요한의 딸 마리아 모두 오늘 눈 치우는 일에 참석할 모양이다. 자신의 별은 아들과 가이드만 남기고 떠나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으니 지금의 풍경을 보면 더더욱 부러워할 것이다.
 여전히 멈추지 않는 눈을 바라보는 사이 인기척이 났다. 빈 머그 두 개를 반납하러 갔던 진경이, 이번에는 쟁반에 무언가를 담아왔다.

 “단팥죽이랑 런던포그예요.”
 “오!”

 잊고 있었지만 오늘은 동지였다. 1년 중 가장 해가 짧은 날이니 한국의 풍습대로 팥죽을 먹어야 하는 날인데 까맣게 잊고 있던 참이었다.

 “보현이 어제 준비했다고, 오늘 아침 카페에서 살짝 끓여 준비했어요.”

 진경이 내려놓는 팥죽에는 팥 몇 알을 고명으로 얹었다. 거기에 달달한 단풍나무시럽향과 얼그레이의 향이 뒤섞어 올라오는 잔이 함께 놓이니, 아침에 느꼈던 감기 기운도, 창 밖의 추운 풍경도 순식간에 멀어졌다.

 “고마워, 잘 먹을게.”

 오늘의 동지, 크리스마스 전전날도 포근하게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베아트리체는 심술궂은 미소를 띄우며 생각했다.

 ‘그러니 더 부러워하라고요. 저는 여기서 더 즐겁게 보내다 갈 거니까요.’

작품 링크: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s/?novel_post_id=58618


(브릿G 리뷰의 블로그 백업판입니다.)


첫 번째 리뷰를 작성한 것이 언제인가 보니, 7월 4일. 아직 한창 2장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2장을 넘어서 3장의 이야기가 조금씩 진행중입니다.


1장의 이야기는 북쪽의 척박한 땅, 탈콘의 자작이 사망하면서 정식 후계자인 에르도안이 클 때까지 5년간만 임시로 자작위를 받은 바레타가 주인공입니다. 바레타는 자신을 배척하는 다른 가신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것을 빼앗은 것이라 생각하는 에르도안 사이에서 무사히 탈콘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 와중에 탈콘의 내부적 결속을 이루지요.

2장은 점차 에르도안이 성장하면서 점차 누님에게 반하는 내용에 가깝습니다. 탈콘의 연회를 주최하면서 벌어진 이야기, 그리고 그에 앞서 일어난 다른 사건들. 에르도안은 성장하면서 누님을 지키겠다 다짐하고 그렇게 또 성장합니다.
그리고 3장. 아직 진행중인 여기서는 판이 더욱 커집니다. 탈콘의 내치를 다룬 1장, 탈콘의 외치를 다룬 2장에 이어 이제는 탈콘뿐만 아니라 그 밖의, 제국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위의 설명만 보고 소설을 보시면 예상과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주 간략하게 줄인 이야기라 저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목에서 말한 것처럼, 탈콘의 인사인 '모든 것은 탈콘의 의지대로'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소설은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바레타 탈콘과 그 등을 따르는 에르도안 탈콘이 중심입니다. 소설 소개에서 보인 의붓누이와 이붓동생의 모습은 철저하게 에르도안 탈콘의 시점입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바레타는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5년의 기한이 이제 머지않아 끝날 것이고, 에르도안은 장성하여 훌륭한 청년이 되어 갑니다. 이미 기사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기사 자격을 따기 위한 마지막의 문답에서 지적당한 것처럼 에르도안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아마 3장이 넘어야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에르도안이야 이미 넘어갔지만, 아직 바레타는 다른 일로 바쁘니까요.


이전 리뷰에도 언급했지만 이 소설의 특징은 여러 등장인물들의 존재감입니다. 작가의 의도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여성의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등장하지 않나 싶은 정도입니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 당장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주요 인물로는 여성이 더 많이 떠오릅니다. 이미지가 더 강렬했다는 의미입니다. 남성 중에서 바레타와 동급으로 혹은 그 못지 않게 강력한 이미지로 나오는 것은 에르도안 외엔, 3부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황자 정도입니다. 그나마 황자는 바레타와 대척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황자의 약혼녀이자 파트너인 안셀르도 대척에 있지요. 안셀르가 매우 눈에 띄는 것은 지금까지 소설 속에 등장했던 다른 여성들은 바레타와 같은 편에 있거나, 같은 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은 편에 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안셀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지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레타와 에르도안의 성격입니다. 바레타는 에르도안보다 나이가 많으며, 어릴적부터 고생하여 그런지 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어른입니다. 매우 냉정하고 냉철하며 사람을 보는 눈도 좋습니다. 그에 비하면 에르도안은 사랑받고 큰 자식이라 초반에는 조금 버릇없습니다. 그러나 점차 성장하며, 누이의 등을 보고는 저 등을 따르고 싶다,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은 감정적이라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속내를 쉬이 드러냅니다. 곰곰히 이 둘의 성격을 비교하다 깨달았지만 여기서도 성별반전의 모습이 보입니다. 냉정하다, 냉철하다, 카리스마 있고 지도자로서 존경할만 하다는 수식어와 버릇없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감정적이다라는 수식어는 보통 남성과 여성에 따라 붙는 성격 수식어입니다 .판타지속에서도 자주 그렇지요.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런 것이 바뀌어 있습니다.


앞서의 리뷰에서는 서문의 이야기가 언제쯤 등장할지 궁금하다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로맨스보다는 바레타가 살아 남는 법, 그리고 이 세계의 여성들이 살아가고 살아남는 법을 다루는 이야기다보니, 바레타의 행보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바레타에게 작은 선물을 남기고 죽은 그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바레타의 등을 볼 뿐입니다. 언젠가 댓글에도 달았지만,

"아니오, 그냥 그렇게 가시면 됩니다. 뒤돌아보지 않고 보여주시는 그 등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닿더라도 신경쓰지 마세요. 묵묵히 가시는 그 길에 꽃 뿌려드리오리다. 그리고 그 꽃길이 다른 사람들이 선망하고 따라갈 길이 되오리다."

바레타가 그저 자신의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그 길을 가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힘이 생깁니다. 본인은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그 발자국이 하얀 눈밭에, 길을 알려주는 첫 사람의 그 발자국 같거든요. 눈이 더 내리더라도 뒤 따라 걷는 사람들이 있으니 길이 다져저 다른 사람들도 편히 갈 수 있을 겁니다. 바레타가 걷는 길,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이 걷는 길이란 그런 것입니다.

아직 1부이고 2부는 가려면 더 많이 남았답니다. 천천히 가는 소설이지만 여러 고비들을 넘기고 오는 소설이니만큼 천천히 따라오시길 추천합니다.:)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109082&novel_post_id=59580

Mik. 『백 한 번째 자매』


7월 초에 마감된 불나방브릿G는 남주로맨스와 여주판타지의 두 종류 공모전(?)이었습니다. 도전해볼까 하다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제 하드를 뒤져도 저 두 키워드에 해당되는 작품이 없더군요. 그리하여 조용히 내려놓고 까맣게 잊었는데 중단편작품 게시판을 역주행하다가 이 소설을 발견했습니다. 제목이 익숙한 걸 보니 트위터 타임라인에 올라온 걸 보았던 모양입니다.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짧지만, 그 짧은 분량에 꽉찬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그 뒤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다른 모험의 시작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뒷 이야기, 그것도 장편을 기대하게 되더랍니다.

내용은 매우 간결합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게 빛나는 어느 공간, 그곳에 『재상』과 그녀의 여러 자매들이 모여있습니다. 수는 모두 백. 그리고 『재상』은 이야기합니다. 이곳에 곧 백 한 번째 자매가 도달할 것이며, 그 때문에 여기 있는 누군가는 자신의 '직업'을 내려 놓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새로운 자매의 스테이터스는 ALL MAX. 그것도 아르바이트와 교육만으로 달성한 수치랍니다. 그녀가 가질 직업은 당연한 것이고, 그렇기에 『여왕』은 자신의 자리를 넘길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결말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달려갑니다.


이 짧은 소설의 부작용은 상당히 심각합니다. 분명 제 방 어딘가에는 PM2=프린세스 메이커 2가 있을 것이니, 오랜만에 그 게임을 다시 꺼내들고 싶어졌지 뭡니까. 소설 속에 묘사된 분홍 머리에 황금빛 눈이라면 아마도 PM3나 그 이후 버전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저는 무사수행에서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용을 해치울 수 있고 무신을 잡을 수 있는 두 번째 버전을 가장 좋아했으니까요. 그 버전이 윈도에서도 돌아갈 수 있도록 개선된 것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니 찾아볼까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공략법은 잊었지만 그래도, 잘 키우면 장군이나 왕궁마법사 쯤 훌륭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치트키를 써야만 왕을 만들 수 있었던 그 옛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옵니다.

그렇다보니 다 읽고 나면 데이터로만 남았을 수 많은 딸들에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그 경계를 넘어간 리셸 룬에게 새로운 길이 열리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전직용사아버지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합니다.


덧붙임.

꼭 읽어보세요. 읽고 나면 분명 옛 게임을 다시 꺼내들고 싶어질 겁니다...! 왜 모바일로는 PM2 같은 딸/아들 키우기 게임이 안나오는 겁니까. 육성게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추억이 되어 꺼내볼만한 그런 게임은 없는 걸까요. 아쉽습니다.ㅠ_ㅠ

소설 좌표는 여기.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94755&novel_post_id=52727

『비오는 날은 재즈와 함께』


재즈는 언제 들어도 좋습니다. 음악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골라 듣는다면 클래식보다는 재즈를 듣습니다. 특히 일할 때나 글 쓸 때 배경음악이 필요하다면 재즈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모처에서 구한 스위스 재즈 라디오는 아예 즐겨찾기에 걸어 놓고 생각날 때마다 틀어 놓습니다. 다양한 음악을 듣다보니, 예전에 좋아하던 음악을 우연하게 다시 찾고, 제목을 알고, 다른 버전으로도 듣게 되는 일도 많군요.

이 소설도 재즈와 함께 시작합니다.


나와 그 일행은 비내리는 날, 재즈카페에서 창 밖의 비를 바라보며 재즈와 칵테일을 즐깁니다. 둘은 재즈와 비가 잘 어울리는 이유에 대해 잠시 대화를 나누다, '나'는 무언가를 찾는 듯한 카페 직원을 보고 궁금증을 느낍니다. 뒤이어 일행인 도하는 재즈와 비가 잘 어울리는 이유에 대한 답이라며 카페의 손님인 어느 커플을 가리킵니다. 각각 재즈와 비를 상징하는 것 같은, 잘 어울리지만 뭔가 묘한 분위기의 커플을 보고 도하는 새로운 수수께끼를 내놓고 둘은 커플에 얽힌 일상적이지만 비일상적인 수수께끼를 풀어 갑니다.


브릿지 자유게시판에서 이 소설을 추천하신 분이 있어 덥석 물었습니다. 처음 읽은 그 날은 마침 비가 내렸고, 종일 비가 온 덕에 저도 무의식 중에 재즈를 틀어 놓고 있었거든요. 덥석 물어서 보고 있는 동안 슬며시 웃음이 나오더군요. 탐정 콤비는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종종 만나는 전형성을 지닙니다. 약간은 막무가내며 눈이 매우 좋고(관찰력이 좋고) 집중력도 좋은 탐정, 그리고 그런 막무가내 탐정에게 휘둘리는 입장이며 본인은 평범하다고 여길 탐정의 친구. 일단 시점은 후자인 '나'의 1인칭 관찰자 시점에 가까우니 나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인물상은 확신할 수 없지만, 내가 보는 타정- 도하의 정보는 상당히 많습니다. 단편이라 길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탐정의 성격이나 습관 등에 대해 이것 저것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콤비 덕분이겠지요.

작은 이벤트가 얽힌 이야기는 다 공개하면 재미없으니 접어둡니다. 다만 재즈카페에서 작은 사고가 발생했고, 탐정 류도하는 그 사건을 해결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그 뒤에 친구의 심장을 들었다 놓았습니다. 전체 이야기의 프롤로그로도 볼 수 있지만 이 자체로도 충분히 완결성이 높습니다. 읽는 동안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 그런 이야기였고요. 슬쩍 웃으며 그 커플을 축하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 읽으면서 가장 걸렸던 부분은 탐정인 류도하의 설정입니다. 읽으면서, 라노베나 만화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인물이지, 솔직히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그런 인물은 아니라는 위화감이 있었습니다. 외모나 관찰력, 집중력은 좋지만, 친한 친구와 대화하면서 놀리는 과정에서 혀를 내밀고 메롱이라. 음. 그렇게 긴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거든요. 제 주변뿐만 아니라 보통의 이성 친구 사이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인물은 앞서 말했든 창작물 속에서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어딘가의 재즈카페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가 살짝 뜬 것 같은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주인공 둘의 관계 설정이 그런 맥락으로 이어지는 전형성을 가진다는 것이 아쉬웠고요. 뭐라해도 맨 마지막에 도하가 선언한 일이 실제 발생한다면, 그 와중에 '내'가 도하에게 내내 휘둘릴 것이란 점은 불 보듯 뻔히 보입니다.


하지만 읽으며 조금 투덜거리더라도, 읽고 나면 소설에 등장한 재즈 곡들을 찾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곡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소설을 읽습니다. 여운이 좋은 소설로, 그 자체의 완결성도 좋지만 이게 다른 긴 이야기의 프롤로그라 해도 좋습니다.

카데바 소셜 클럽에 대한 브릿G 리뷰입니다.'ㅁ'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s/?novel_post_id=27009&ord=asc


리뷰 쓰다 깨달았지만, 카데바 소셜 클럽은 브릿G에서 맨 처음 읽은 소설입니다. 아직 가입도 하기 전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아마도 트위터쪽 링크를 보다가 19세기 영국 배경이란 말에 홀려서 보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챕터 1을 읽고 나서의 여러 감상들이 지금도 몽글몽글 떠오르니까요.


빅토리아기는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있고 이 소설도 그 즈음을 배경으로 합니다. 태그를 보면 1870년이로군요. 셜록 홈즈는 아직이지만 아서 도일은 한창 학교에 다니고 있을 시기고, 살인마 잭은 아직 등장하기 전. 나이팅게일 이야기는 크림전쟁 때라 소설 속에도 등장합니다.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BL에서도 여럿 보았습니다. 열린 곳이 아니라 닫힌 곳에서 연재되었던 소설 중 몇은 지금은 전자책으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는 영국이 가장 빛나던 시기이고 상상의 여지가 많으니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지요. 반대로 생각하면 실재하는 시대이다보니 역사적 사실들을 맞추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가상과 실재의 세계 사이의 줄타기를 해야 하는 이 시대적 배경을 가진 여러 소설들 중에서 『카데바 소셜 클럽』이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굉장히 발랄한 토끼가 한 마리 있기 때문입니다. 제목의 그 흰 토끼 맞습니다.



알렉산더 루크 리들리는 소설에서 뽑아 낸 듯한 키 크고 금발머리를 가진 미남입니다. 거기에 외과의이자 경찰에 협조하는 부검의에 검시관이기도 합니다.
사건이 발생한 홍등가가 있는 화이트채플로 가던 알렉스는 백색증을 가진 여자를 만납니다. 행색을 보아하니 창부인 것으로 추정되었고 말을 걸어보니 화이트채플의 거주민 맞습니다. 이름은 라핀느 드 블랑슈. 이름부터도 흰 토끼군요. 그리고 그 토끼양은 알렉스에 매달려 호객행위를 합니다. 저는 알비노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지만, 하여간 백색증에 관심이 있었던 알렉스는 명함을 한 장 건넸고, 그 명함이 콤비를 탄생시킵니다. 명함을 들고 갔던 토끼님이 사체 확인하는데 왔다가 몇 가지 특이점을 확인해주거든요.

알비노는 색소가 매우 옅어 흰 피부에 붉은 눈을 가지기 쉽다는 건 알았지만 시력은 미처 생각못한 부분이었습니다. 햇빛에 약하다는 것이야 짐작했지만 눈도 약하다는 건 뒤늦게 깨달았고요. 그렇지 않아도 페르시안을 포함해 색소가 적은 푸른 눈 흰 털의 고양이들은 눈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하니 토끼님이 눈이 안 좋고, 그래서 시각 대신 후각이 매우 발달했다는 것은 타당하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 코가 유기된 시체의 여러 정황을 잡아내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이지요. 물론 시력 문제는 알렉스의 도움으로 색안경을 받으면서 해결됩니다. 이런 저런 사건들이 겹치며이렇게 닥터 리들리는 연구할 마음이 든 생물학 표본...쯤 되는 핀을 거둡니다. 핀도 화이트채플을 뛰쳐나오고 싶었으니 둘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셈이지요.


이 소설의 재미는 글 중간중간에 묻어나는 시대상에 있습니다. 핀의 출신 때문에 등장하는 그 당시 창부들의 생활상, 그리고 알렉스를 포함한 신사계급의 특징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재산분배를 포함한 여러 짤막한 지식들까지.
언젠가 장르문학은 단순히 재미만 있어서는 안되고, 읽어서 득이 될만한 또는 쓸모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살아 남은 여러 소설들도 그 속에서 나름의 정보와 지식을 얻고 또 생각할 수 있었고요. 이 소설도 그렇습니다. 읽는 동안 그 시대 영국의 생활상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키가 아주 큰-후기에 따르면 190은 안되는 알렉스와, 150cm로 설정된 핀은 같이 다니면 키다리와 성격 나쁜 작은 토끼로 보입니다. 주변에 토끼를 키웠던 친구가 있어서 그 습성을 들어보면 상당히 성격이 포악하다고 하니까 핀의 성격도 그냥 나온 것은 아닐지도요.


자아. 여기까지가 딱 첫 번째 챕터이자 첫 번째 사건 이야기였고 그 직후에 제가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던 태그 하나가 폭발합니다. 아니, 지뢰였던 것은 아닌데 미처 생각못했습니다. 어, 그렇군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전혀 문제될 것 없습니다. 닥터 리들리는 멋지고, 핀은 사납지만 귀여우며 성깔이 아주 특별하다 보니 그 정도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야기가 진행되며 이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네요. 무엇보다 중반까지도 이들 둘의 관계는 성년은 지났지만 밖에 내놓으면 물 옆에 내놓은 소금자루 같은 흰토끼와, 그 흰토끼가 녹아버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짠맛을 보여주기 전에 적절히 관리하는 보호자로 보입니다. 거기에 앞부터 계속 깔려 있었던 핀의 출생 비밀이 얽히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집니다.

남은 분량을 두고 두고 아껴볼까, 아니면 다음편까지 계속 달릴까 고민하면서 한 편 한 편 읽는 사이에 벌써 66화. 그렇습니다. 이미 남길 것은 한 편도 없고 홀랑 다 털어 읽었습니다.
핀은 가족을 찾았지만 문제가 조금 있고, 알렉스는 서서히 핀과 알콩달콩한 생활을 꾸려갑니다.
아무래도 활동반경이 넓지 않아 그런지 이런 저런 사건들과 사람들이 계속 뒤엉킵니다. 이 사람을 만나 보니 저쪽에서 만난 사건의 주요 인물이고, 그 사람이 또 알렉스의 형님과 얽힌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복잡한 상황들은 각 챕터가 끝나면 일단락 되었다가, 새 챕터가 시작되면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건이 들어오며 뒤섞입니다. 가끔 비문이 보이기도 하고 가끔 그 엉킨 실타래를 보며 복잡하다 투덜대기도 하지만 금방 금방 풀립니다. 그러니 더 마음 놓고 다음 편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지요.


지금은 핀이 날린 주먹을 맞은 그 분께서 사과하러 찾아오시려나라는 궁금증을 갖고 다음편을 기다립니다. 아냐, 어쩌면 이미 안나님께서 말로 어퍼컷을 더 날렸을지도 모릅니다. 그거야 알 수 없지만 알렉스와의 연애전선에 크게 영향은 안 주고,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으니 다행이네요. 더불어 핀의 공부도 무사히 잘 끝났으면 하고 생각해봅니다. 핀이 나이팅게일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은 무리더라도 그 근처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작가님이 조금 더 자주 오셨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오시니 다행입니다. 그러니 채소 갉아 먹는 토끼의 심정으로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 앞 이야기도 반복해서 읽고 또 읽도록 하겠습니다.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102381&novel_post_id=56831

제목에 끌려 보았다가 고양님께 반했습니다. 그리하여 넙죽 리뷰를 바치옵니다.


욕심이란 건 압니다. 그럼에도 저도 투명고양이를 원합니다. 원하는 사람에게 오는 것도 아니고, 무작위로 찾아드는 고양이지만, 제목그대로 투명고양이는 짱입니다. 너 혼자 다 해먹어!


'나'는 어느 날 집에 낯선 존재가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 전부터 감은 있었지만 그 날은 더더욱 뭔가 이상했지요. 그간 잠도 부족했고 기분도 좋지 않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보니 그 때문인가 생각했지만 그런 날카로운 신경줄과는 별개로 뭔가가 있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그리하여 부릅니다. 거기 누구야!

그러나 낯선 존재가 대답합니다. "투명고양이야."

음. 다행히 도둑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투명고양이라니. 크와와와와왕!하고 울부짖는 투명드래곤이 아니라 다행인가요. 하여간 이 투명 고양이는 눈에 보이지 않을뿐 만질 수는 있습니다. 부드럽고 긴 털이라니 장모종인 것은 확실하고, 괜히 노르웨이종이 아닐까 망상해봅니다.

하여간 투명고양이는 밖이 춥기 때문에 겨울 동안에는 남의 집에 몰래 숨어서 보낸다며 겨울 동안 머물러도 괜찮냐고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허락하자, 그 다음날부터 바로 일을 시작합니다. 일이 아니라 취미인지도 모르지만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이런 저런 물건들을 사오라며 돈까지 내줍니다. 나가기를 망설이던 나는 마트에서도 사람이 많아 또 한 번 들어가는 걸 망설이다가 제대로 장을 봤고, 고양이는 그걸로 밥까지 차려줍니다.


그 뒤에도 죽 이어지지만 거기까지 쓰면 재미가 없지요. 하지만 다 읽고 나면 투명고양이는 짱이라는 생각이 확연히 듭니다. 망상하기를, 저 고양이는 정말로 투명해서 존재하고 만질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으니 털 역시 투명하여 눈에 안 들어올 것이고, 그렇다면 결벽증 있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좋을 고양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보이지 않는 털은 청소기를 돌리면 먼지와 뒤섞이더라도 부피를 차지하고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지요. 하지만 그걸 넘어서 어쩌면 이 투명고양이라는 존재 자체도 망상일지 모릅니다.

여기서부터는 추측이지만, 나는 겨울이 되기 전 심각한 우울증이 있어왔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돈이 부족했다면 마트에 가서도 한참 망설이다가 도로 들어왔을 거라는 부분이나, 사람들이 많아서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부분. 후자는 대인기피증세로도 보이지요. 거기에 초반에 잠도 못자고 기분도 우울하고 밥도 잘 못먹었다는 것은 겨울 전의 계절성 우울감일 수도 있지만 그 때까지 주인공이 겪은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갑자기 찾아온 투명고양이 덕분에 나는 바깥 생활도 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햇볕도 꾸준히 쐴 수 있었고요. 크리스마스도 같이 보냈다는 것을 보면 우울증을 뻥 차서 멀리 날려버리는데 아주 큰 공헌을 한 모양입니다.



어느 봄날 투명고양이는 훌쩍 떠나고 텔레비젼이 남았지만, 그러고도 나는 우울함을 떨치고 활기찬 봄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투명고양이는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만날지도 모르고 그 때 안부를 물을 지도 모르지만, 어디있든 투명고양이는 짱 세니까 잘 지낼 겁니다. 그리고 저 정도의 집안 관리 실력이라면 분명 어디가서도 사랑 받을 겁니다. 그러니 제게 한 번 쯤 와주시면 안될까요. 듬뿍 사랑 얹어드릴 수 있을 텐데! 제 첫 고먐님이 되어주세요!

브릿G 연재작에 대한 리뷰글입니다. 리뷰로도 올리지만 블로그에도 별도 백업합니다.:)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95309&novel_post_id=53056


해차반. 『메데아는 죽기로 결심했다』


이제 다섯 편 연재된 작품을 두고 리뷰를 쓴다는 건 무리고, 그 짧은 다섯 편에 대한 감상기, 그리고 다음 편의 조속한 등재를 위한 기원을 담아 써봅니다.


로맨스독서력이 긴 것은 아닌데 그럭저럭 많이 읽었습니다. 현대 배경보다는 판타지 배경을 더 선호하고,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많이 읽다보니 이 소설이 쓴 클리셰, 회귀도 여럿 보았습니다. 회귀라는 소재가 등장한 것은 몇 년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좋은 소재임에 틀림 없습니다.

회귀의 대상은 대개 주인공입니다. 로맨스소설은 대체적으로 여주인공이기 때문에 회귀하는 쪽도 여주인공이 많고 가끔은 남주인공이 회귀하기도 합니다. 둘 다 회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메데아~의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메데아이며, 회귀의 주체도 메데아입니다. 5편까지의 이야기는 메데아가 어떻게 죽게 되었으며, 왜 죽기로 했으며, 왜 회귀를 하게 되었는 가를 찬찬히 풀어 놓은 겁니다.


메데아의 죽음은 여러 단계를 거쳐 일어납니다. 시간순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첫 장면에서는 사랑했던 이에게 배신당한 메데아가 나옵니다. 클리셰대로, 메데아가 사랑해서 스스로 목줄을 쥐어준 이는 성녀를 사랑했으며, 그리하여 마녀인 메데아를 저버리고 성녀와 결혼하기 위해 메데아를 마녀로 몰아 붙입니다. 메데아는 사랑하는 이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 그간 많은 짓을 해온 뒤입니다. 황후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 사랑하던 이는 메데아에게 마녀의 올가미를 씌우고, 이전에 주었던 목줄을 이용해 그 스스로가 감옥으로 들어가라 전합니다. 그리고 메데아는 저주 혹은 예언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스스로를 가둡니다

메데아의 구체적인 이력은 그 다음에 나옵니다. 대공비는 괴물과도 같은 아기를 낳고 죽습니다. 배우자를 매우 사랑했던 대공은 불같이 화를 내며 아기를 쓰레기장에 버리라고 하나, 대공비가 마지막에 부탁한 한 하녀가 아기를 몰래 거두어 키웁니다.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슬쩍 덮어둡니다. 다만 그 하녀 덕분에 살았으나, 그 하녀 덕분에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군요.

비극이 시작된 다른 포인트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던 그 때입니다. 메데아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주었던 것은 하녀가 유일했고, 사실 성녀도 메데아에게 조건없는 선행을 보였지만 극과 극에 위치한 성녀와 메데아-마녀는 친해질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자라는 이와, 모든 이에게 배척받고 핍박받는 이가 둘 있고, 사랑받는 이가 배척받는 이에게 호의를 가진다 한들, 후자가 전자를 사랑할 수 있느냐는 다른의 이야기입니다. 성녀를 만난 시점에서 메데아는 이미 비참한 상황이었고, 그 삶에서 조금 더 나은 삶으로 변할 수 있도록 성녀가 선행을 베풀었다 해도 그것을 메데아가 고이 받아 들일 이유는 없습니다. 뭐, 결국 성녀와 메데아의 사이는 극과 극으로 갈립니다.


이 많은 이야기들이 다섯 화 안에 담겼습니다. 어떻게 메데아가 어떻게 버림 받았으며, 버림받기 전에 메데아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성녀와는 어떤 관계였으며, 성녀와 메데아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단 것은 어떤 이유에서고, 그리하여 그 둘의 관계 파탄이 어떤 결론을 낳았는지까지가 나옵니다. 물론 회귀물 답게, 관계 파탄 후에는 회귀를 합니다.


회귀하기 전의 상황을 훑어보면 메데아가 회귀 전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대강 감이 오지만, 문제는 첫 편의 후기입니다. 딱 잘라 말하시네요. "악녀 회귀물이고 개과천선할 예정은 없다." 넵. 이 힌트까지 얻고 나면 더 궁금합니다. 악녀로서 계속 살 것이라면-메데아는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 최소한 메데아가 살리고 싶었던 인물이 죽기 전으로 돌아온 것은 같으니, 이번에는 보호할 길이 열리는가? 혹시라도 세계의 억지력 같은 것이 발동할 것인가? 배신자와 성녀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수많은 의문을 남겨 놓고 다음편을 기다립니다. 어떻게 흘러가든지 다섯 화의 이야기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메데이아의 이름을 받은 메데아가 굽힐 것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 길이 어떠한 길이든 자신의 선택에 따라 꿋꿋하게 걸어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하루 빨리 메데이아 누님(...)이 오시길 손꼽아 기다립니다.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16960&novel_post_id=11448


브릿G의 소설좌표와 함께 올리는 감상글입니다.




내용 폭로는 아니지만 내용의 중요 키워드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리뷰든 뭐든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닙니다. 쓰긴 쓰나 동력원이 있어야 수월하게 쓰는 타입입니다. 외설적으로 표현하면 꼴려야 쓴다고 할 것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동해야 쓴다고 할 겁니다. 그러니 글을 쓰려면 여러 소설을 다양하게 골라 읽어야 그 중에서 동하는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또 쉽지 않습니다. 읽는 것도 정신적 체력이 필요하니까요.

브릿지에 올라오는 소설들은 대체적으로 무겁습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소설의 질을 떠나 어떤 소설이건 묵직하게 주제를 담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두고 무겁게 혹은 가볍게 쓰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나 취향의 문제일 겁니다. 제가 선호하는 쪽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고, 이는 제가 소설을 재활로서 읽어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삶은 빡빡하니 그 심리적 재활을 소설읽기로 얻고자 하는 겁니다. 그렇다보니 브릿지에서도 장편보다는 단편을 잡게 됩니다. 분량의 문제도 있고, 완결난 소설을 그렇지 않은 소설보다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성격이 급해서 완결날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간 가벼운 소설을 읽어온 탓인지도 모르겠네요.


본격적인 리뷰로 들어오는 길을 길게 잡은 것은 이 소설이 가볍고 무거운 그 균형을 매우 잘 잡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제는 무겁습니다. 제목은 그리 무겁지 않고 로맨스인가 생각하며 발 들이게 마련입니다. 분명 로맨스 맞습니다. 주인공인 가연과 조쉬는 결혼 전 허락을 받기 위해 가연의 어머니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러니 상견례 맞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가면 위화감을 느낍니다. 이거 공포소설인가, 아포칼립스인가, 아니면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것인가.
셋 중에서 맨 마지막-디스토피아는 맞습니다. 한국의 미래를 최악에 가까운 상황으로 묘사하는 소설이니까요. 뭐, 제가 그리는 최악은 『워킹데드』나 『부산행』의 모습, 동남아 몇몇 국가라든지 미국 모처, 독일 모처 등의 상황입니다. 직접적인 묘사가 없었지만 어쩌면 이미 최악의 경계를 건넌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소설을 읽다보면 디스토피아를 확신하기 직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함정이 하나 등장하고, 그걸 읽으면 소설 속 한국은 최악과 차악의 경계선에서 줄타기 하는 중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 사실 그 폭탄. 받아 들고서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 들이게 되더군요. 어릴 적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읽고 생각한 바 있어서 그런지 모릅니다. 이 부분은 스포일러라, 일단 선을 그어두고...


=====


철완 아톰, 한국에는 우주소년 아톰으로 나온 그 작품의 한 부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정식 번역은 아니었을 것이고요. 아톰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지만 그 중에 등장한 에피소드는 로봇이 인간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어 최초로 인간 등록 서류를 제출한 어느 로봇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서류를 제출하고 나와서, 그 로봇은 '어떻게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냐!'는 사람들의 무리에게 맞아 죽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로봇이 더이상 살릴 수 없는 수준으로 파괴되었다면,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폭력상해와 살인죄로 잡혀갈까요. 아니면 기물파손에 해당할까요. 아마 일본이니까, 서류가 접수되었을 뿐 아직 통과는 되지 않았다면서 살인죄 아닌 기물파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지금의 일본이라면 애초에 그런 법이 통과되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한국은?



이 소설에서 그리는 한국 사회는 극단으로 치달은 세계입니다. 그런 모습을 상견례라는 작지만 큰 이벤트를 통해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러한 극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람들이 있어 아직은 살아갈만할지 모른다는 여지를 남깁니다. 솔직히 읽으면서도 과연 지금의 한국 사회 분위기가 여기서 언급한 것과 크게 다를 것인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이정도로 극단은 아니지만, 앞으로 그리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길지 않지만 함축적이고, 그리고 마지막에 여지와 희망을 함께 준 소설, 잘 보았습니다. 곰곰히 씹어보고 생각할 여지가 많아서 여운이 남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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