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하지만 사진 거의 없습니다. 눈으로 보기 바빠서 사진은 생각도 안했고 딱 두 장 찍었습니다. 나머지는 도록으로 채우면 됩니다. 어차피 저보다 도록이 더 사진을 잘 찍었을 것이니 그걸 보고 기억을 되살리면 되고요.
시작하기 전부터 트위터에서 한바탕 돌았습니다. 이런 전시하는데 꼭 보러 가라고요. 민속박물관의 고양이 전시회(요물)과 함께, 이 전시회도 기대하는 쪽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주말은 매번 서울 올라가서는 체력 달린다고 뻗어 있어서 못갔습니다. 그러다 이번 주도 안가면 내내 안 갈 것 같다는 위기감이 갑자기 몰려와서 당일치기로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도 마음잡고 가지 않으면, 하나라도 보고 오지 않으면 다른 전시회도 종료일인 8월까지 못 갈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 마음먹고 움직여야죠.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의 전시 소개는 이쪽입니다.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Flag=1
전날 아래의 예매페이지를 들여다보며 예약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덕수궁 입장료를 따로 지불한다면 전시회 입장료도 그 때 결제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냥 갔습니다. 하지만 안해도 상관 없더라고요. 이유는 따로 나옵니다.
https://booking.mmca.go.kr/product/ko/performance/261#none
10시 반쯤 도착해서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갔습니다. 피크민 블룸 퀘스트 때문에 일부러 종각역에서 내려 덕수궁까지 걸어갔지요. 중간에 테라로사 청계광장점에 들릴 일도 있어서 겸사겸사 걸었습니다. 운동과 커피 구입과 게임 플레이의 협력이지요.
대한문은 이번에 처음 통과해봤습니다. 서울에 그렇게 오래 다녔지만, 궁에는 썩 관심이 없었습니다. 덕수궁 석조전도 예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일부러 방문할 생각은 없었고요. 그 주변 길은 한 두 번 걸었지만, 예전에 카르티에 전시회 보러 갈 때였나, 그 옆 서울시립미술관만 갔고 덕수궁은 돌담 외벽만 보았습니다. 이번에 처음 방문해보니, 진짜 예쁘더군요. 와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으로 모형 정원 같은 아기자기한 분위기입니다. 고즈넉하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건 고층 빌딩이 그 옆을 둘러 싸고 있어서일 겁니다. 허허.
미술관은 안쪽에 있다고 하니 홀랑홀랑 걸었습니다. 딱히 안내가 없어도 대강 여기쯤인가 했는데, 석조전 말고 그 비슷한 석조 건물에 커다랗게 전시회 포스터 현수막이 걸려 있더라고요.
여기가 전시관이겠지요. 그러니 계단을 올라 들어갑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2층이고, 그 2층과 위의 3층의 전시실 각각 두 곳에다 전시를 해뒀습니다. 눈으로만 보라는 안내가 있지만 다들 사진을 찍던데, 사진 촬영 금지 안내는 없고, 대신 플래시를 터뜨리지 말라고는 합니다. 하지만 다들 사진을 찍어대니 그게 또 산만하게 느껴지던데. 그러나 안 찍으려던 저도 맨 마지막의 전시품은 찍었습니다. 이건 아래에 다시 적겠습니다.
아. 그보다.
계단 올라가면서 카드를 주섬주섬 준비하는데 5월 주말은 박물관 입장 무료랍니다.
덕수궁 대한문 앞의 매표소에서 표 구입하고 QR코드 찍으면서 들어갔더니, 미술관 안의 매표소에서는 아예 표를 준비해서 배포하고 있더라고요. 무료 입장이라고 하여 표를 받아 들어가면서 또 QR을 찍고 갔습니다. 덕분에 재방문 의욕이 조금 샘솟는군요. 입장료도 겨우 2천원이었지만, 그 돈으로 괜찮은건가 싶던 멋진 전시였습니다.
돌아보면 전시 초반은 근대 자수입니다. 당연하지요. 제목부터가 근현대 자수인걸요. 그렇다보니 근대 자수는 일본 자수의 영향이 많습니다. 30년대 작품들이라, 작품이 주로 여자미술대학 관련이더라고요. 한자로는 女子美術大学이라고 쓰고, 애칭이 조시비랍니다. 저도 자주 이름은 들었고요. Bi님께 실시간 감상 전하면서-꼭보세요! 꼭 보셔야해요!-듣기로는 조시비가 자수랑 섬유 쪽이 강세라는군요. 텍스타일쪽. 이미 30년대에 이런 작품을 내고 있다고 하면 허허허 싶습니다. 그 영향을 받은 건지, 경북과 대구의 여자고등학교의 자수부에서 공동제작한 자수들이 상당히 멋졌습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 해금강. 자수로 풍경화를 그렸더라고요. 수묵 담채의 분위기를 매우 잘 살려서 기억에 남습니다. 현대 자수 작품의 풍경은 거꾸로 입체적입니다. 그건 3층 전시실에 있었지요.
유명 자수 작가의 작품도 있지만 여러 자수부에서 제작한 것도 있고요. 이화여자대학교 자수 전공에서 제작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이게 미술 대학일지 섬유 쪽일지 궁금하긴 하지만서도..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미술입니다. 섬유공예에서 공예작품을 넘어 아예 예술의 영역이 되어버리는 그런 거요. 공예와 예술의 차이가 뭐냐고 한다면, 그거 윌리엄 모리스가 한 말 아니던가요. 장인이냐, 예술가냐의 차이. 2층의 작품이 대체적으로 공예였다면 현대자수는 예술입니다. 아마도, 자수작가들이 부단히 노력한 결과겠지요.
전시 초반에는 유화작품이랑 아크릴 작품도 몇 섞였고 그 중 천경자 화백의 작품도 있습니다. 그림 속에 자수가 등장해서 넣었나 싶더라고요. 이 분 그림은 아마 이번에 실물을 처음으로 보는 것 같은데, 멋집니다. 원래 현대 회화는 보러 잘 안 가지만 이런 그림은 좋아합니다. 기백 넘치는 할머님이 왼손에는 책을 들고 오른손에는 긴 곰방대를 잡아 끽연하면서 책 읽는 모습입니다. May be force with you. 포스데이도 아닌데 왠지 그런 느낌...
다들 찍어 올린 그 공작 자수는 외려 데면데면했고요. 현대자수의 강렬한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역시 자수는 차력쇼였어요. 맨 마지막에 보았던 자수를 보고 정말 무릎을 꿇었거든요. 다른 작품들은 19**이라든지 20**이라고 표기했지만 이 자수는 19**~19~**으로 나옵니다. 10년이더라고요. 작품 제작에 10년 걸렸다는데, 보면 압니다. 10년 가지고 되나요?;
자수로 놓은 팔상도..OTL
팔상도는 부처의 일생을 그린 불화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걸 매우 곱디 고운 자수로 놓았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실이 잘 안 보여요.
접사한게 이러함.-_-
야이....... 야이.......... 이모티콘 안 쓰고 설명하려 노력했지만 그런 것 필요 없습니다. 그냥 직접 보고 있노라면 박력이 넘칩니다. 팔상도니, 총 여덟 점입니다. 이런 자수로, 저 크기로 8작품이요. 이걸 보고 나면 그 앞에 나왔던 8폭 병풍이 기억에서 휘발됩니다.
저는 그래서 이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하. 박력에 졌습니다. 원래 자수 전시회 보러 가면 집에 모셔둔 십자수도 다시 시작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다녀왔지만 졌습니다. 과연 십자수는 언제 끝낼 수 있을까요.
도판은 다녀오자마자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뒀습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8824587
그냥 도판이 아니라 전시회 해설서이기도 한가봅니다. 거기에, 기회되면 다음주에 한 번 더 보러 다녀올까 싶기도 하고요. 다녀오면 체력이 훅 빠지지만, 거꾸로 이렇게 주말 중 하루는 바지런히 움직이는 쪽이 좀 낫달까.... 자수전을 한 번 더볼지, 아니면 국립민속박물관의 기획전, "요물, 우리를 홀린 고양이"를 보러 갈지 고민입니다.
포스터 참 귀엽지요.
거리로 따지면 덕수궁관하고 국립민속박물관하고 그리 멀지 않지만, 멉니다.(...) 체력의 한계를 감안해서 결정해야겠어요.
까지 적고 나서 다른 분 후기 확인하러 갔다가 시립미술관에서 건축전시회 한다는 걸 보았습니다. 음. 어쩔까. 담주에는 같이 묶어서 가볼까..'ㅂ'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