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의 최대 성과 중 하나는 지유가오카에서 케이크의 대왕마마님을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대왕님을 모신 것이 6일 점심 때쯤이었는데 그 이후엔 신주쿠 다카시마야의 수 많은 케이크들을 보면서도 어느 것 하나 눈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케이크 쪽은 확실하게 식비 절감을 할 수 있었다는 뒷 이야기가.....OTL

이번 여행에서 길잡이로 도움을 많이 준 것은 최신 카페 도쿄가이드라고, 작년에 구입한 책입니다. 관련 포스트는 여기입니다.
책 뒷부분에 아주 상세하게 약도가 나와 있습니다. 카페 위치파악에도 좋지만 지도로서도 상당히 괜찮습니다. 최신 버전의 지도이기도 하고, 여러 지형물이 나와 있으니 기준을 삼기에도 좋고요.

그날(5월 6일, 토요일)은 하라주쿠 프리마켓에 갔다가 느긋하게 지유가오카로 이동했는데요, 스위트 포레스트는 사람이 바글바글해서-일본 황금연휴 기간이기도 했고 점심 시간이기도 했습니다-대강 둘러보기만 하고 돌아 나왔습니다. "달달한 숲"은 느긋하게 앉아 먹는 카페 분위기가 아니라 사서 들고 나와 먹는 테이크 아웃의 이미지가 강하기도 하고, 사람도 많아서 물건 사기도 쉽지 않더군요. 먹어보고 싶었던 믹스 아이스크림-대리석 판에 아이스크림과 부재료들을 올려 놓고 비벼 주는 것-은 날이 더웠던 탓에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했습니다.

사람에 질려서 간 곳이 바로 여기.
여행 전에 도쿄 카페 가이드를 훑어 보다가 사진에 홀딱 반해 꼭 가보겠다고 결심한 곳입니다.


카페 가이드 뒤에 실린 카페 위치입니다. 지유가오카 역에서도 그리 멀지 않군요. 스위트 포레스트보다도 훨씬 가깝습니다.
(그래도 저희야 스위트 포레스트를 찍고 이동했으니 거리는 조금 ...)


철길과 가까운 곳에 파티세리 파리 세베이유라는 혀 꼬이는 발음의 가게가 있습니다.(이름 외우기가 힘들어서 이후엔 파리로 통일합니다)

정사각형으로 보이는 가게 안에 주방과 테이블, 그리고 쇼케이스가 다 있습니다. 케이크도 아리따웠지만 같이 파는 쿠키나 잼들도 선물용으로 괜찮겠더군요. 한 번도 보지 못한 특이한 잼들이 많았습니다. 여러 부재료를 섞어서 만든 잼들이었습니다. 짐이 무거울 것을 예상해 구입하지는 못했지만 다음 여행에서는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여기서 케이크를 시켜 느긋하게 앉아 한 입 먹었을 때 저와 K의 심정은 딱 이랬습니다.

칸다의 심정이 이심전심, 염화시중, 염화미소 등등 관련된 온갖 사자성어를 다 들어도 다 통할 만큼 케이크의 맛이 환상이었지요.


같이 간 K와 케이크 쇼케이스를 보면서 군침을 흘리다가 각각 하나씩 골라봤습니다. 이름도 다 불어로 되어 있어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영수증을 살펴보니 루쥬 에 느와르(Rouge et noir로 추측), 상트노레캬랴멜(Saint ... 뭐였는데 サン=トノレキャラメル입니다.)로 찍혀 있습니다.

레드 앤 블랙이라는 이름 답게, 루쥬 에 느와르는 초콜릿과 라스베리의 진한 케이크입니다.
색이 잘 안나온 것이 아쉽지만 정말로 멋집니다.

저 앞에 보이는 녹색은 피스타치오.(아니, 호박씨였나?)
K가 주문한 쪽이 이쪽입니다. 아주 진한 초콜릿에 달지도 않고 새콤한 맛이 정말 환상적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가격은 504엔으로 조금 비싸지만 현재 환율을 생각하고 먹으면 가격대 성능비 최강이며, 환율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10배로 계산하더라도 가격 대 성능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맛이 진하니 커피와 함께 먹는다면 환상적인 맛을 낼 겁니다. 점심 때 마신 커피 때문에 음료를 안 시켰던 것이 후회되었지요.
다른 케이크의 맛을 싹 정리하고도 남는 강렬한 맛이라 처음에 먹는 것보다는 맨 뒤에 미뤄두고 먹는 쪽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른 캬라멜 군.

책에 실린 그대로의 자태로 찍어보았습니다.
뭔가 밤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이라 몽블랑계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먹어보니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밤 같지 않습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윗부분의 크림부터 포크를 댔습니다.
호오. 진한 캬라멜-달지 않은, 말 그대로의 진하고 쌉싸름한 캬라멜!-맛이 크림과 동시에 다가옵니다. 거기에 들어간 견과류들도 캬라멜 코팅을 해서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이 최고입니다! 정신없이 포크를 가져대다가 이젠 나이프로 잘라보았습니다.
(서빙할 때 접시와 함께 포크, 나이프를 가져다 줍니다. 잘라 먹기 좋더군요. 포크 하나만 갖다주는 모 케이크 가게들은 각성하라!)

에엥?
단면이 묘합니다.

저건 혹시 커스터드 크림? (이 아니라 크렘 파티시에르라 불러야 할까요. 전부 불어였으니;)
검은색의 점들은 바닐라빈의 씨로 추측됩니다.

이쪽도 마찬가지.

먹어보고야 알았지만 밤처럼 생긴 것은 캬라멜을 바른 미니 슈였고 본체 자체도 슈크림이었습니다. 바삭바삭한 슈 껍질에 달달하지만 지나치게 달지도 않은 중용의 미(...)를 자랑하는 크림과 코팅된 견과류의 부서지는 느낌이 먹는 사람을 정말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쉽게 먹어보지 못할 독특한 케이크지만 그렇다고 마이너한 스타일의 달기만한 케이크와는 격이 다른 멋진 케이크였지요. 그래서 감히 케이크의 대왕마마님이라 부른 것입니다. 덕분에 일본 여행에서 꼭 챙겨 먹으려고 생각했던 딸기 쇼트케이크도 못 먹었습니다. 이 케이크들을 먹고 났더니 더 이상 케이크는 필요없다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더군요.


한동안은 한국에서 케이크 먹을 생각이 안 날겁니다. 그 어디서 케이크를 먹든 간에 그 가격이면 차라리 일본에 가서 먹고 말겠다고 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이 케이크 가게는 이번 일본 여행의 최대 수확이자 최대 문제점이 되었습니다. 하하하....


(다음부터 도쿄 여행에서는 지유가오카는 필수 코스.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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