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을지로가 뭐냐 물으신다면, 방산시장과 그 옆의 광장시장을 이야기할 겁니다. 방산시장에서 제과제빵재료와 도구들을 사러 다녔던 기억도 은근히 남아 있거든요. 그게 아니라면 을지로의 가게를 찾아가 가죽에 금박과 은박을 찍어오던 때의 기억을 떠올릴 겁니다.

 

오늘 오랜만에 을지로에 나갔다가 시간이 있어 카페에 들렀습니다. 그 근처에 평점 높은 카페가 있다했고, 원래 가고 싶었던 명동의 가배도는 오픈 시간이 11시라 시간이 맞지 않았거든요. 애드 카페라는 그곳은 음료도, 쿠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재방문 생각은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먹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부분이 여럿 있었거든요.

 

카페에 방문해보고서 알았습니다. 을지로의 힙함이란 것이, 아마도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라고요. 레트로라고 부르는 '과거에 대한 회고와 추억의 되새김질 양식'은 그리 썩 취향이 아닙니다. 최근에 레트로라 부르는 많은 부분은 외갓집 다락에 있었던 낡은 그릇이나 오래 되어 문양이 지워질랑 말랑하는 그런 그릇들을 되돌려 끌어 올리는 것이라, 그걸 시골집의 정취로 기억하는 제게는 촌스러움으로 인식됩니다. 물론 예쁜 것도 있긴 하겠지만, 왜 꼭 그런 걸 써야 하나 싶은 때가 많더라고요. 디자인이 좋아서 계속 이어지는 그런 제품이면 모를까, 그냥 옛날 물건을 다시 들고 오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을지로를 중심으로 말하는 그 힙함이 옛날의 좋은 기억만 끌고 올라온다는 느낌인데다 그 속의 진짜 오래되고 좋은 것들을 파괴하는 움직임으로도 보여서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며에서는 예전의 핫플레이스, 익선동 끌어올리기도 떠오르고요. 그런 건 질색이거든요.

 

카페에 들어간 순간 이런게 을지로의 힙함이고, 레트로구나, 싶었습니다. 마감은 제대로 되었지만 원래 있던 건물의 벽체 등을 가능한 살리면서도 넓게 보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많더군요. 아마도 작은 땅에 올린 작은 건물이었던 모양이고, 계단을 중심으로 층마다 하나의 사무실만 있지 않았을까, 그런 분위기의 건물이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원래 있어야 할 내부 벽들은 시야 확보를 위해 거칠게 부수었지만, 그 위는 흰색 페인트로 꼼꼼하게 마감해서 벽의 흔적은 살리고, 시야는 럽혔더랍니다. 그리고 그 안의 여러 테이블과 의자들은 예전에 쓰던 물건들을 하나 둘 모아 둔 것처럼 오래되고 낡은 것들이 여럿 보였고요.

 

 

만약 제가 조금 더 어렸다면, 젊은게 아니라 어렸다면 이런 분위기도 좋아했을 것이고 친구들과 함께 한 번쯤 찾아갈 괜찮은 카페라고 좋아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많이 다릅니다. 나이를 먹으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일단, 자리 잡고 앉은 곳의 의자는 그렇다 쳐도 테이블이 삐걱거려서 당황했습니다. 탁자 다리를 확인하니 원통형의 나무 다리인데, 그게 흔들리면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더군요. 일부러 그런 분위기를 낸 것인지, 아니면 수리가 되지 않은 것인지 몰라도 후자라면 조금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여러 의자들을 갖다 둔 걸 보고 테라로사 광화문점을 문득 떠올렸는데, 거기는 테이블만큼은 음료 등을 올려 놓는 공간이라 그런지 튼튼하고 두껍고 단단한 제품을 씁니다. 다른 테이블은 어떤지 확인하지 않았지만 그 삐걱거림에 놀라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깔끔하고 세심하게 마감했음에도 문제가 보이는 계단이 더 걸리더군요. 4층의 옥상까지 이어지는 계단은 매우 비좁았습니다. 거기에 계단 맨 윗칸은, 몸을 돌려 내려갈 때 자칫하면 발을 헛디딜 수 있는 형태의 독특한 형태였습니다. 계단이 건물 사방을 돌아가며 설치되지만 공간의 한계가 있다보니, 원래부터 맨 윗단의 계단참이 있어야 할 부분은 한 발만 디딜 수 있는 홈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 졌더라고요. 성인이라 해도 발을 헛디디기 쉬워서, 실제 음료를 받아 올라갈 때도 제가 일행의 쟁반을 먼저 받아줬고, 내려갈 때도 일행이 먼저 그 아랫단에 발을 디디고 제가 쟁반을 들고 가 안전하게 전달했습니다.

 

요약하면, 원래의 건물을 그대로 살려서 만든 카페의 구조상, 비장애인이나 성인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카페라는 겁니다. 이 카페에 L을 데리고 가는 모습이 상상 안되더군요. 절대로 무리입니다.

 

 

원래 취향이 모던하고 깔끔한 가게이기도 했지만 을지로의 힙한 카페를 한 번 방문하고 나니 다른 카페들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스슥 사라지더군요. 뭐랄까, 정말로 젊은 사람들만 옛날의 좋은 기억들을 전시하고 그걸 들여다보며 '야, 옛날이 이렇게 멋졌대!'라고 상찬하며 같이 노는 그런 분위기가 상상되더라고요. 그리고 그 속에 배제되는 사람들과, 잊힌 역사들은, 음.

 

 

그리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저는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나이 먹는다는게, 꼰대가 된다는게, 라떼가 된다는게 이런 건가요. 허허허허허허허.

하지만 저 역시도 알지 못했던 때라면 멋진 곳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너무 많이 알아버린 걸까요.

 

 

 

덧붙임.

로열밀크티는 직접 만드신다던데, 과연. 상당히 괜찮은데 아주 익숙한 맛이 나더랍니다. 이야아아, 이거 오후의 홍차 진한 맛이야!(...) 녹차라떼도 진하고 달달하더라고요.'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