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동안 먹는 걸로 동행과 다투는 일은 없었습니다. 둘다 뭘 먹을지 딱히 정하지 않았다보니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했거든요. 이것이 n-3년지기의 여행법입니다.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을 순서대로 처리(..)해야한다면 그 1순위에 오를 인물이 저 동행이었거든요.

 

가기 전부터 이번 여행은 무조건 카페가 메인이며, 다른 음식은 현지에 가서 적당히 결정하자고 합의해뒀습니다. 한 번 가고 말 곳도 아니고, 자주 갈 곳이니 이번에 못가면 다음에 가면 되지요. 여행 기회는 많고 갈만한 음식점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나 동행의 위장은 매우 약하니 잘 달래가며 하루 한 끼 정도 잘 먹으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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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와 위장이 맞으면 그럭저럭 여행은 되더군요. 투덜대도 죽이 맞고, 생활습관도 그럭저럭 봐줄 수 있으니 여행할 때 자주 챙겨가는 일행 답습니다.

이쯤 되면 동행이 누군지 짐작하실지도..-_-a

 

 

n-3년지기라 해도 한계는 있습니다. 동행은 제가 물회 좋아한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답니다. 몇 번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먹는 걸 봤지만, 맛있는 물회집을 나서서 찾지는 않다보니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답니다. 하기야 조개도 잘 안먹고 게도 썩 즐기지 않는 인간이 물회를 좋아한다면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게 당연하죠. 저도 원래 물회는 안 먹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물회라는 음식이 있다는 것만 알지, 양념한 회에다가 물 부어서 먹는게 뭔 맛이냐 생각했더랬지요.

 

모 내륙지방에 업무차 들렀다가, 물회 한 사발 먹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내륙지방이었는데, 편으로 썬 문어 다리 숙회에 오징어 등등이 아주 맛깔납니다. 적당히 새콤하고 약간의 단맛이 도는 맛깔난 물회 한 사발이었지요. 그 뒤로는 물회를 종종 찾게 되는데 그 날 먹었던 물회 만큼 맛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직접 찾아가서 먹으면 안되냐고 하실지 모르나, 물리적 거리가 너무 멉니다. 물회 먹으러 거기까지 일부러 가는 건 미친짓이예요. 정말로요.

 

그래서 카페 진정성 종점에서 점심식사를 근처 어디서 할 것인가 고민할 때, 후보로 올렸던 곳에 순옥이네 명가라는 음식점이 나왔을 때 귀가 솔깃했습니다. 전복죽하고 물회가 메인이라더군요. 두 번째 후보로는 근처의 중국집을 하나 올려두고, 만약 자리가 없으면 두 번째로 가자고 해뒀습니다.

 

물회는 순옥이네 물회와 전복 물회의 두 종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순옥이네는 전복 대신 소라가 들어가더군요. 다른 재료는 같습니다. 물회를 주문하면 기본 반찬이 깔리고, 거기에 삶은 소면과 밥이 함께 나옵니다. 바다 냄새가 가득한 한 그릇......... 을 받아 들고 깨닫습니다. 아. 나 바다 비린내를 썩 좋아하진 않았지. 게다가 해삼의 물컹 딱딱함은 음.(먼산) 그래요, 제가 좋아한 건 물회에 들어간 채소들이 새콤달콤한 맛을 내어 오징어나 문어처럼 쫄깃쫄깃 적당히 고기 같은(...) 씹는 맛을 주는, 그 조화였습니다. 바다의 내음이 물씬 묻어나는, 바다의 맛은 취향이 아니었던 겁니다.

 

 

말은 그리해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취향에 안 맞아도 괜찮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군요. 서늘하고 음산한 제주 겨울바다를 보다가 찬 음식을 먹으니 그게 조금 아쉬웠지만 선택은 제가 했으니까요. 하하하. 여름에는 사람이 더 붐비지 않을까 했지만 이날도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여름이 아니니 느긋하게 먹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자고요.'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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