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최근에 나온 『마안갑의 살인』 광고를 보고, 전작이 궁금해서 함께 구입해 읽었습니다. 그래요, 전작의 평가는 전혀 보지 않고 신작 나온 김에 전작까지 같이 구입한 게 답이었습니다. 확인했다면 구입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읽고 나서 내가 왜 이 소설을 읽고 이렇게 불쾌한지 글로 적을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분석적 사고를 도왔다는 점에서는 매우 좋은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 저 많은 상들을 탔다고 하니 한 마디, 아니 한 문장 적겠습니다. 하.... 이제 저 상 탄 소설들은 전혀 못 믿겠다. 신뢰파쇄의 멋진 책입니다. 파괴도 아니고 파쇄. 1미리의 폭으로 갈갈이 파쇄되는 저 상들에 대한 신뢰성이라니.

 

 

이하 내용들은 저 소설의 내용폭로가 있을 것이니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접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건너 뛰시길. 불쾌한 소설이고, 저런 상을 탈만한 책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흡입력은 있습니다. 앞부분의 시작은 3장 넘어가놓고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 이틀 묵혔지만, 다 읽고 나니 순식간이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느낀 여러 위화감도 잘 풀어냈고요. 다만, 흡입력의 방식이 추리소설로서의 흡입력이라기 보다는 라노베에서의 흡입력과 유사합니다. 여러 클리셰를 섞어 잘 풀어냈지만 그래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사람을 끌어 들이는 필력이 좋다거나, 문장이 괜찮다거나 하는 소설이 절대 아닙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하지만 속에 내포한 그 어떤 정신머리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소설의 감상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제게는 그랬습니다. 일본소설을 종종 읽는 청소년들에게는 추천하지만 미스터리를 좋아하고 추리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추천하지 않을 책. 제 타임라인에 올려 두면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분해될 책입니다. 하하하하하.

 

서론이 길었습니다. 자. 그럼 들어가보죠.

 

 

 

 

http://aladin.kr/p/wKLe2

 

시인장의 살인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 신인 작가 이마무라 마사히로 소설. 대학 동아리 합숙에서 예기치 못한 사태로 펜션에 갇히고 만 대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

www.aladin.co.kr

내용 소개는 넘어갑니다. 알라딘의 내용 소개를 보면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난다는 건 이해하실 겁니다.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해 클로즈드서클이 된 별장에 이들이 갇히고, 그 안에서 살인이 발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저도 보고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맨 앞부분에 시작으로 이상한 기관 하나가 언급되는데, 그게 이렇게 들어갈 줄은 저도 몰랐으니까요.

 

 

소설을 다 읽은지 약 2시간 경과 후, 오늘치 블로그 글을 뭘로 쓸까 고민하다가 이 책 감상으로 적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다시 내용을 반추하다보니 문득 궁금해지는 겁니다.

 

"아니 왜. 작가는 그런 설정을 여기에 집어 넣었지?"

"아니 왜, 작가는 그런 대사를 화자인 '나'의 입으로 말하도록 한거지?"

 

그리고 작가 이름을 확인합니다. 이마무라 마사히로. 작가가 자신의 성별을 속인게 아니라면 이 이름은 보통은 남자이름입니다. 남자로 확정하면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이 이해됩니다.

 

 

1.남성향 라이트노벨 혹은 그런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캐릭터와 인물 설정.

등장인물의 묘사가 그렇습니다. 특히 여성에 대한 미인 묘사가 많은 소설입니다. 아예 대놓고 말하지요. 모임에 참가한 이들이 모두 다 미인이라고. 그렇게 된 이유가 따로 있긴 하지만,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화자남성인 '나'를 별도로 두면서 당연하게 묘사됩니다. 묘사 전반적으로 라노베나 그 쪽의 애니를 보는 느낌이 들더군요.

아. 빙과계는 아닙니다. 쿄애니쪽 묘사는 아닌 걸로.

 

 

2.몸매 묘사

한 곳에서이긴 하지만, 매우 뜬금없는 묘사가 등장합니다. 특정 상황을 재연하기 위한 시도에서, A가 화자를 뒤에서 끌어 안습니다. 그 때의 묘사. 청초한 미인인줄 알았는데 가슴에 히말라야를 숨겨놓고 있었다고.

그거, 가능한가요? 보통 여성스러운 복장을 입고 다니는, 청순하지만 성숙한 이미지의 20대 초반 여성이, 원피스를 입고 있었을 때 가슴크기가 드러나지 않는 일 말입니다. 몸매묘사는 특별히 기억나지 않지만, 딱 이부분에서 이상하게 튀었습니다. 아, 그래. 나 이런 묘사 라노베에서 봤어.-_-

 

 

위의 이야기는 이 소설이 본격미스터리니 어쩌니 하는 말에 대한 비꼬인 반응입니다. 뭐, 저런 소설도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런 소설은 있어선 안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3,"악당에게도 사정이 있다." "악당도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다."

 

일전에, 트위터에서 한 번 언급된적 있습니다. 어느 분이더라. 장르소설가였나, 비평가였나. 그런 분이 적었던 트윗 중에 '악당에게도 사정을 만들어 주면 악한 쪽에도 감정이입하게 되어 문제가 된다'고요. 복합적이고 두툼한 인물상을 만들기 위해 악당에게도 나름의 사정을 만들어 주는 일이 종종 발생해서 나온 이야기였을 겁니다. 영화 「조커」에 대한 반응이었을라나요.

조커는 악당입니다.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그에 대한 죄책감도 가지지 않는 빌런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물에게 뒷 이야기를 붙여서 '얘에게도 나름의 고충과 사정은 있어'라고 하는 순간 그 인물의 범죄 또한 정당화 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두고 불쌍하다고, 가련하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요.

'시인장의 살인'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도 화자의 목소리를 빌어 대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추리소설의 클리셰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 아예 와이더닛, 후더닛, 하우더닛을 말합니다. 추리소설의 주요 요소인 동기, 범인, 방법이지요. 중요한 저 동기는 초반부터 언급이 됩니다. 이 별장에서의 모임은 여러 해 동안 반복이 되었고, 작년에는 참석자가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살 원인은, 별장을 제공한 장본인이자 물주에 해당하는 세 남자에게 참여자들이 농락당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방식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참여했던 이들 중 둘이 물주 셋 중 둘과 각각 사귀었으며, 그 중 한 명은 학교를 그만두었고 다른 한 명은 자살했습니다. 별장주인의 변호사가 찾아와서 돈으로 사건을 덮었고요.

 

저 놈팽이들 중 한 놈과 화자가 대화한 뒤, 놈팽이가 상당히 남자답고 멋있지만 나쁜남자가 될 수밖에 없는 가정환경을 소개하며 작가는 말합니다. 저 남자, 나쁘지만 참 괜찮은 남자다, 안타깝다.

다른 놈 하나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화자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심약하고도 나쁜 짓을 한 사람이긴 하지만, 맨 마지막의 그 순정적인 모습을 보면 사랑도 나쁘지 않아.

 

 

...

 

와.

 

넵, 그렇습니다. 적는 저도 분노가 불타오르네요.>ㅁ<와, FIRE!!!!!!

 

 

순정적인 모습을 이야기하려면 차라리 그 옆의 백합을 끌고 오지. 아니, 초반부터 백합 분위기 폴폴 풍겨 놓고는? 물론 반전이라면 반전이지만, 절절하게 죽은 이에 대한 폭로를 벌이고 있는 중에 '아니 그 사람도 참 괜찮은 사람인데, 참...'과도 비슷한 반응을 화자가 보이고 있으니. 읽고 있는 독자들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는 갑자기 혈압이 확 올라서 알라딘에 책 평가를 보러 갔습니다. 10점 만점에 6.6점. 오오오. 저만 분노한게 아니었네요. 확인하고는 마음 편히 이 감상글을 작성하는 거랍니다.

 

그래요. 리뷰 쓰기 전에 책 날개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남자 맞겠거니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글세요, 여성 작가도 저런 이야기 쓸 수 있겠지만, 남성작가일 가능성이 더 높겠죠. 책만 덥석 집어 들어 다 읽고 나서, 읽은 내용 반추하며 떠올린 단어 첫 번째가 작가한테 대고 '너 남자냐?'였으니. 하하하하하하.

 

참 묘한 책인데.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 나만 화낼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도 읽고 나랑 같이 화내자! 아니 진짜. 다른 사람-일본사람들은 이걸 문제로 생각 안한거야? 그래서 저런 상들도 마구 안겨준거야? 그런거야?

 

 

 

여러 추리소설의 클리셰를 깨고 있다는 점에서 메타 구조도 보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미스터리 애호가고, 탐정은 그런 쪽에 대해 전혀 몰라서 생긴 상황들. 그런 구조나 인물 설정은 마음에 들지만, 라노베적 묘사와 저런 망할 생각에 마음이 차게 식었습니다.

 

마안갑은 일단 구입했으니 읽을 예정입니다. 읽고 나서 또 분노할 가능성이 높지만, 작가에 대한 평가가 바뀔지도 조금 궁금하네요.

 

 

 

이마무라 마사히로. 시인장의 살인. 김은모 옮김. 엘릭시르, 2018, 13500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