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나올 즈음, 발레를 소재로 한 소설이 또 한 권 있었습니다. 앞서 독서기를 올린 오승호의 『스완』. 두 책을 비슷한 시기에 보았다고 기억하는데, 단체 대화방에 이 책 두 권을 추천했고, 그 중 『영원의 밤』은 다른 분이 먼저 읽겠다고 하여 도서관에만 신청하고 넘겼습니다. 『스완』은 진짜 발레 관련 이야기인지 아닌지 제가 먼저 확인하겠다며 구입해 읽었고요. 둘 다 추리소설인 것은 맞지만,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아니, 사뭇 다르지 않고, 매우 많이 다릅니다. 같지만, 달라요. 두 소설 모두 발레리나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갖지만 다루는 소재와 방향이 다릅니다.

 

 

aladin.kr/p/4NBwc

 

영원의 밤

제3회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 어느 예술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가는 이야기로 미스터리 대상 심사에서 흡입력이 있는 구성과 안정감 있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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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은 특정 상황에서 발생한 누군가의 죽음을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더 정확히는, 쇼핑몰에서의 무차별테러로 사망한 누군가가, 왜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여러 정황들이 하나씩 밝혀지지요.

 

『영원의 밤』도 압축해서 보면 같습니다. 여동생의 사고에 얽힌 사건을 조사하며 예고에서 일어난 여러 죽음을 파헤치니까요.

조은호는 기자 특파원으로 영국에 머물고 있는 중에, 여동생의 입원소식을 접합니다. 예고에서 발레전공 교사로 일하는 여동생 조은지가, 갑자기 쓰러진 뒤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 겁니다. 환각과 환청을 포함한 정신불안을 보이는 거죠. 귀신이 있다고, 저주 받을거라고 하는 말을 하는군요. 여동생의 사고에 어떤 뒷 이야기가 있나 파헤치려 하지만, 예술고등학교는 사립학교고 폐쇄적인 공간이기도 하니 외부인인 자신이 접근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은호는 기사라는 직업을 십분 활용해 기획기사를 쓰기 위한 취재요청으로 교내에 머무르는 걸 허락받습니다.

 

만.

그렇죠. 이 소설은 추리소설입니다. 적은 단서만 갖고 학교에 들어간 기자님은 고등학교 내에서 매우 불합리한 상황들을 접합니다. 취재를 허락받은 기간은 예술제에 지젤 전막 공연이 올라갈 때까지고, 기자님은 '발레의 길을 걷는 학생들의 여러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공연 작품 속 처녀귀신, 윌리 역할을 맡은 여러 학생들과 차례로 개별 인터뷰를 가집니다. 폐쇄된 공간은 아니지만 예고라는 특수성에 발레라는 전공 특수성까지 더해지니, 마치 클로즈드서클에서의 살인사건 탐색과도 같은 효과를 냅니다. 게다가 다들 비밀이 많다고요. 아니, 클로즈드서클보다는, 여학생 기숙학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조사하러 간 느낌?

 

그러나 결말을 맞이하면 진짜, 뒤통수를 후드려 맞고 얼얼해서... 지금도 뒤통수를 쓰다듬고 있습니다. 이 소설, 오늘 낮에 붙들고 읽기 시작했는지만 퇴근할 때도 다른데 신경써야하는 시기 빼고는 내내, 정말로 길을 걷는 동안에도 손에 이 책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정신 놓고 몰입해 읽어서 결말까지 달렸습니다.

결말을 확인하고, 감상 쓰겠다며 책 앞부분의 몇 장을 확인하는데.. 우아아. 모든 대사가, 모든 문장이 달리 읽힙니다. 이 소설은 절대로 내용 폭로 없이 보아야 하는 소설입니다. 절대로요. 지금은 뒤통수뿐만 아니라 앞통수도 아려옵니다.

 

 

『스완』과 다른 이야기라는 언급을 했지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스완』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배경이 되는 연목이 백조의 호수입니다. 『영원의 밤』은, 지젤이고요. 연목을 더 깊게 다루어 발레의 이야기를 끝까지 끌어내는 쪽은 『영원의 밤』입니다. 저야 지젤의 내용을 1막, 2막 모두 다 알고 있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거기 등장하는 견자(犬子)가 누구인지 알고 있어 수월하게 보았습니다. 그럼 지젤을 모르는 사람은? 문제 없습니다. 화자이자 탐정인 은호 역시, 지젤을 잘 모릅니다. 동생이 발레리나였고 사정이 있어 무대를 포기했기에 얼핏 들은 정도입니다. 발레 연습을 보면서도 꾸벅꾸벅 졸 정도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초반의 이야기는, 예고에서 벌어지는 여러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건들을 다루며, 거기에 초자연적인 이야기의 양념을 칩니다. 지젤의 내용은 분명 소설 속의 사건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지만, 다 읽고 나면 이 또한 함정이었으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완』 속 백조의 호수는 계기가 되는 작은 스위치, 아니면 그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재였다고 치면, 『영원의 밤』 속 지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합니다. 읽어보시면 알아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또 다른 면에서 보자면 『스완』은 와이더닛whydonit에 중점을 둡니다. 왜 그 상황이 발생했는가? 누가 그 상황으로 끌고 갔는가도 들어가긴 하지만, 왜 그 자리에 그 사람이 있었는가를 풀어내는 것이 주요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곁가지로, 누가 했는가도 중요한 상황이 발생하지만 뒷부분의 이야기입니다.

『영원의 밤』은 반대로 후더닛whodonit이 중점입니다. 누가 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울새를 죽였나? 나! 하고 참새가 말했지."의 저 참새가 중요합니다. 읽기에 따라서는 '왜 그 사람을 몰고 가는가?'로도 볼 수 있지만, 책 전체를 끌고 가는 건 저 동요의 가사라니까요.

집중하는 방향이 다르고, 맨 마지막에는 모순과 아이러니가 다함께 폭발합니다. 하. 진짜. 뭐라 할 말이 없는게,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너는?"이라는 질문을 대놓고 던지는군요. 그렇기 때문에 은호의 시점에서 기술된 맨 마지막 챕터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 챕터 자체가 조은호의 독백과도 같은 부분이라 그런 겁니다. 그렇게 흘러가기를, 조은호가 바라는 듯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조은호의 생각에 더더욱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또한 보면 아실겁니다.

 

 

하여간 소설 읽다가 과몰입하는 하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마지막은 소설 읽고난 제 심정을 대변하는 하트 여왕님으로 마무리.

 

 

읽는 중간중간의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저거였습니다.

 

 

 

종이책.

이소민. 영원의 밤. 엘릭시르, 2020, 15000원.

 

 

 

덧붙임.

제목은 예언과도 같지요. 그리고 저는 저 문장 뒤에 붙이고 싶은 말이 있지만, 눌러 참습니다. 읽고 나면 제 심정 이해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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