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이 매우 뚜렷하기 때문에 취향 또한 뚜렷합니다. 둘이 관련이 있냐고요? 아니, 없습니다. 주관과 취향은 별개입니다. 술도 마시지 않았지만, 이 글은 음주블로깅과 유사한 형태로 흘러갑니다. 흠흠흠.

 

 

저 내용을 글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동인: 입문차는 무난한 얼그레이

서인: 입문차에서 얼그레이는 빼야지!

 

얼그레이를 둔 둘의 논쟁은 타당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얼그레이가 누구에게나 무난한 맛이냐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차를 시작할 때 정통이 아닌 편법으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홍차를 시작할 때는 '홍차맛'으로 시작해야지, 얼그레이로 시작하면 사도邪道라는 겁니다. 올바른 길正道이 아니고요. 그런 의견도 있기 때문에 얼그레이를 둔 동인과 서인의 주장은 타당합니다.

 

제 첫 차는 립톤 노란딱지였습니다. 맛없었고요, 그 다음에 추천받아 마신 것이 해로즈 14번이었나. 그렇기 때문에 홍차가 어떤 맛인지 궁금하다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여즉 해로즈 14번을 추천합니다. 고급으로 가면 40번 .. .맞나; 하여간 고급버전도 있지만, 제게 홍차의 기준은 저 해로즈 14번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홍차 베스트는 트와이닝 얼그레이입니다.

 

남인: 얼그레이는 그 자체로 훌륭하다
북인: 얼그레이는 다른것과 섞여야 제맛

 

얼그레이 밀크티가 말이 되냐면서 분노했던 일은 옛말입니다. 지금은 얼그레이는 무조건 밀크티입니다. 그것도, 밀크티, 로열 밀크티, 차이 모두 트와이닝 얼그레이로 만들어 마십니다.

 

대북: 얼그레이는 밀크티랑 제일 잘어울려
소북: 얼그레이는 다채로운 블랜딩이 훌륭해

 

북인의 논쟁은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나뉘는데, 따라서 저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를 외칩니다.

 

 

(예송논쟁)은 원래는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느냐는 문제로 싸움이 시작되었다는데, 그것만은 아니겠지요. 어쨌건 다시 한 번 파벌이 심각하게 갈리는 논쟁입니다.

 

남인: 제일 흔히 접할 수 있는 가향차의 원조로 차의 풀맛을 꺼리는 사람에게 영업용으로 좋은데 무난하지!
서인: 호불호가 큰 가향차인데 어찌 초보자에게 입문으로 권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하다!!!

 

이 둘은 얼그레이의 효용에 대해 논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둘 다 옳은 말일 수 있습니다. 얼그레이가 한 종만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는 않거든요. 대부분의 차 메이커에서 얼그레이를 내니까요. 원조 얼그레이는 중국홍차인 기문에다 베르가못의 향을 입힌겁니다. 그게 랍상소총을 흉내내려했다던가요.

옛날 옛적에, 한창 티앙팡을 다니던 때. 일본에서 홍차 사올 때 참고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얼그레이를 돌아가며 마셨습니다. 없는 용돈을 쥐어짜(...) 시도했던 건데 말입니다. 아주 다행스럽게 제 입에는 트와이닝이 제일 잘 맞았습니다. 왜 다행이냐면, 매우 싸거든요. 일본에서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200g 한 캔에 대략 1.7만 정도에 구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 저렴하게도 구입할 수 있고요. 일본에서는 캔당 700엔 아래에서도 구해봤습니다.

그러한데, 포트넘 & 메이슨 얼그레이는 좀 다릅니다. 이쪽은 트와이닝의 범용성에 비하자면, 조금 더 정중합니다. 묵직하고요. 그 외에도 더 얼그레이를 마셨던 기억이 있지만, 나머지는 홍차 맛 자체가 별로라던가, 향과 홍차가 매우 안 어울리거나 하더랍니다.

직설적으로, 얼그레이 향을 정말로 싫어하는 모 소설 주인공이 이야기한 적 있습니다. 『키친』. 거기서 얼그레이를 두고 '비누냄새'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어디었더라.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어떤 브랜드의 홍차를 마시고 나서 '이게 비누맛이구나'라고 감탄했던 적이 있습니다. 정말, 비누향에 비누맛이었습니다. 크흡.

 

소론: 얼 빼고는 괜찮으니 다른 가향차를 입문자에게 권해야
노론: 리스크가 큰 가향보단 클래식티로 차의 참맛을 익혀야

 

소론에서 말하는 다른 가향차는 루피시아나 마리아주 플레르가 아닐까 합니다. 이 둘이 접근성 좋은 가향차니까요. 하지만 다른 가향차의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또한 가향차는 종종 향과 맛의 괴리가 일어납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웨지우드 스트로베리입니다. 우리면 매우 달큰한, 딸기맛 사탕 같은 향이 올라옵니다. 기대를 가득 품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 홍차맛입니다. 단맛, 딸기맛 모두 사라지고 맛은 홍차맛입니다.

루피시아나 마리아주 플레르는 질이 높지만 가향차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취향이 극단적입니다. 사람의 취향이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입맛에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향홍차를 찾는, 가향차를 찾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다가 지쳐서 홍차를 떠납니다. 크흡.

 

티앙팡 덕에 다양한 홍차를 만날 수 있었고, 여기저기 다니면서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그 덕에 만난 홍차들 중에 기억에 남는 건 마리아주 프레르의 웨딩 임페리얼(풍선껌향), 루피시아의 다테 이치고(딸기우유), 로네펠트 그레이프후르츠(자몽). 그래도 취향이 확실해서 딱 집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은 좋네요.

 

 

 

실학: 얼그레이면 어떻고 무가향이면 어떻고 블랜드면 어떠냐. 차는 먹어야 보배
서학: 서구에서 온 커피를 마시자

 

하지만 진실로, 저는 이 두 의견이 매우 좋습니다. 남이야 뭐라하건.-ㅁ-

 

 

탕평책: (레이디그레이) 이 차는 얼이 싫은 사람도 좋은 사람도 마실 수 있는 중간지대로 모두 이거 마시자

 

레이디 그레이도 좋아하지만 일부러 사마실 정도는 아니고, 있으면 마신다 정도입니다. 얼그레이는 홍차지만 레이디그레이는 그보다는 허브티 섞은 홍차 느낌이라 가볍게 마실 수 있긴 하지요. 하지만 이 역시 클래식을 옹호하는 이에게는 사도일뿐입니다.-ㅁ-

 

 

 

강경파는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예전에 시험해본적이 있습니다. 대상인원은 100명 가까이? 풀냄새 나는 고오급 아삼과 퀸앤, 트와이닝 얼그레이, 그리고 다른 하나를 더 우려서 시음을 했습니다. 이 때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게 얼그레이였습니다. 그러니, 이건 초심자를 대상으로 연구해보면 될 일입니다.

 

... 결론이 왜이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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