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누군가 하겠지 하는 일 중에는 이런 역사 정리가 있습니다. 순정만화의 역사를 논하기에는 제가 너무 어리지만, 슬슬 정리하지 않으면 홀랑 잊고 넘어갈 일들이라,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고, 기대대로 나왔습니다. 참고한 자료가 어마어마하다보니 그냥 만화사 위에 배 띄워 놓고 읽기만 했던 독자는 미처 몰랐던, 여러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가장 반가웠던 이야기는 김진의 만화사였습니다. 설마하니 거기서, 『바람의 나라』도 아니고 『야간비행』이 등장할 줄은 몰랐거든요. 그 사건이 파라과이위키에도 나와 있는지의 여부는 확인 안했지만, 어쨌건. 오랜만에 듣는 제목에 아련함이 떠올랐습니다. 훗.

 

 

순정만화의 SF 계보는 작품 순서대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주에 대한, 그러나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하기에는 지극히 과학적이고 공학적인 만화(『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도 등장하고요, SF의 주요 소재가 되는 여성과 페미니즘과 차별도 나옵니다. 또한 인간의 권리와, 종말과 시작, 투쟁, 그리고 대체역사와 시간여행까지 흡족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따져보니 반반쯤? 최근작 중에는 외려 모르는 소설이 많습니다. 웹소설은 읽지만 웹툰은 읽지 않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최근 만화는 손에 꼽을 정도로만 보고 있다보니 모르는 만화도 상당하더군요. 그리고 제 취향은 이미 어릴 적 그 때에 굳어졌고, 소나무와도 같이 변함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옛 기억을 들여다보기에 매우 좋은 책이었습니다.

 

 

다만 왜 이은혜가 등장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습니다. 중간에 『BLUE』가 등장하여 언급은 되지만, 이은혜의 SF작은 언급이 없더라고요. 출간문제인가 싶다가도, 김진은 매우 오래전 작품부터 언급하고 있으니 또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이은혜의 SF작은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아련한 분위기는 여전히 기억합니다. 르네상스에서 출간했던 『댄싱러버』의 뒷부분에 실렸다고 기억합니다. 그 책은 아마도 본가 베란다 서가의 안쪽에 있을 것이니, 꺼내려면 작업이 필요합니다. 아니.. 그 책 꺼내기 전에 일단 집에 있는 웅진세계전래동화를 꺼내 오는 것이 먼저이긴 할 건데, 하여간. 그걸 꺼내려면 그 아래 놓아 둔 구관 상자도 같이 꺼내야 하고요 또.... (하략)

 

 

본론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며 갈라질 수밖에 없는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이었습니다. 아마 그 외에 몇 편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열어본지 하도 오래라 확신이 없습니다. 다만 그 이야기만큼은 이미지가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요. 김진의 다른 연재작에도 SF 분위기를 띈 것이 여럿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그 중 야구선수가 주인공인, 그리고 아마도 로봇이었던 이야기가 있었을 거고요. 그리고 판타지에 속하지만, 구운몽의 적자라고 단언하는 『꿈속의 기사』도 있지요. 문계주나 김숙희도 SF 소재 단편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가물가물. 확인하려면 집에 가서 더 읽어 봐야합니다.

 

 

모든 작가와 모든 작품을 언급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겁니다. 특히 책은 지면의 제한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작가님이 후속으로 어딘가에 기고든 연재든 하고, 그걸 속편으로 다시 묶어 내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그 때를 위해 아마 많은 방구석독자들이 TAKE MY REFERENCE!를 외칠 거라 믿어봅니다.

 

 

전혜진.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구픽, 2020,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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