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이 많이 밀려 있다는 핑계를 대며 시작부터 완성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달린 수궁가입니다. 제본 방식은 요즘 상당히 많이 붙잡았던 콥틱 바인딩이었고요. 보통때면 그정도로 디자인이 확확 떠오르진 않는데, 이번에는 희한하게도 어떤 책을 제출할 건지 생각하니 책 제본방식부터 표지디자인까지 바로 떠오르더군요. 물론 공방 선생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아이디어도 더 잘 나온 것이겠지요. 만드는 내내 조언 많이 받았습니다.



하여간 책의 여러 의도들을 하나 하나 짚고 넘어가지요.'ㅂ'






손댄 책이 『수궁가』였습니다. 그러니까 토끼전, 별주부전이라 부르는 그 토끼 간 빼려다가 실패한 이야기 말입니다. 그리하여 안쪽의 면지는 바다 아니면 토끼로 하려 생각했습니다. 파도를 닮은 파랑 면지를 쓸까 하다가 막판에 토끼 화지(和紙)로 골랐습니다.






맨 왼쪽이 앞표지. 가운데가 뒷표지. 맨 오른쪽은 혹시 몰라서 예비용으로 만들었던 뒷표지 여분입니다. 뒷표지는 동판을 만들어서 찍어왔던 터라, 혹시 제대로 안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나 여유분도 만들어 갔습니다. 두 판의 색박을 미묘하게 다른 걸로 찍은 터라 두 개를 비교하고 마음에 드는 쪽으로 최종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맨 왼쪽의 토끼는 엠보싱이라고, 표지 겉면에 두꺼운 종이의 그림을 붙여 요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이 매우 익숙하실 건데 말입니다. 플레이보이 로고인 그 토끼입니다. 토끼의 리본만 슬쩍 고름으로 고쳐 넣었지요.


수궁가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토끼는 상당히 영리하고 잽쌉니다. 그리고 언변이 좋아 별주부, 자라를 제외한 다른 이들을 홀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플레이보이의 토끼 로고가 잘 어울린다 생각했지요.







표지에는 나중에 저 눈부분을 뭘로 채우는 것이 덜 허전할 것이라고 하여 한참 고민하다가 한자 그림이 들어간 화지가 있어서 꺼내 들었습니다. 거기서 목숨 수(壽)를 골라 오려서는 눈에 채워 넣었지요.


용왕은 토끼의 간을 얻어 자신의 목숨을 늘리려 했지만 결국 실패합니다. 그런 의미를 담아서 壽를 거꾸로 넣었고요. 여러 모로 의미는 많이 담았습니다. 흠흠흠.






콥틱 바인딩이지만 한국 전통제본은 구멍이 다섯 개니까 그것에 맞춰서 여기도 구멍 다섯 개. 오침안정법입니다.






뒤표지에는 수궁가를 여러 언어로 적었습니다. 한글로, 한자로, 그리고 영어와 라틴어와 ... 또 뭐 적었더라? 프랑스어? 맨 마지막의 흰 글씨는 수궁가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 적었습니다.







이쪽은 뒤표지입니다. 눈토끼 문양이 귀엽지요.





후다닥 정신없이 만들었지만 재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자아. 이제 가죽 열심히 가는 고전제본으로 돌아갈 시간이군요. 현대제본들은 한동안 안녕!

Tag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