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배경으로 한 BL입니다. 그리고, 읽고 나면 와인이 매우 마시고 싶으니 요즘 같은 날씨에는 글뤼바인이든 뱅쇼든 핫와인이든 뭐든 갖다 놓고 읽으시는 걸 추천합니다.-ㅠ-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지만 딱 내용 배치 자체가 상당히 빡빡하니 읽는데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게다가 배경이 배경인지라, 읽는 도중에 술이 당겨서 곤란했습니다. 업무 중 시간 있을 때마다 조금씩 읽어나갔거든요. 다행히 집에 들어가기 전에 다 읽을 수 있었던 덕분에 집에서 술판 벌이는 일은 없었습니다. .. 물론 집에 술이 맥주 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했군요. 이 책은 맥주가 아니라 와인, 또는 도수 더 높은 술을 마구 불러대는 무서운 소설입니다.
『보르도』는 화자인 민태윤의 1인칭 주인공 시점입니다. 그렇다보니 태윤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초반부터 매우 혈압이 오를 수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급하게 해야하는 상황이나 그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고 면접을 가면 곤란하다는 소리만 듣고 오다보니 심정적으로 매우 힘듭니다.
그러다가 길가다 만난 어느 레스토랑의 구인공고를 보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들어갔다가 면접을 보게 되었고, 거기서 레스토랑 사장이며 사람의 복장을 뒤집는데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이규형을 만납니다. 면접을 보면서 이상한 질문 받은 것은 둘째치고, 입에서 나오는 그 어떤 말도 사람의 속을 뒤집기 위한 말들이다보니 대화 자체가 매우 고역입니다. 그럼에도 돈은 절실하게 필요했고, 돈이 필요한 이유를 들은 레스토랑 사장님이 단번에 승락을 한 덕에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뒤에도 나오지만 두고두고 후회는 합니다. 면접 때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 나왔어야 했다고 말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이 둘이 소설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이 둘의 연애가 소설의 메인이기는 하나, 사장님은 들이대고 아르바이트는 도망가는 상황이라 쫓고 쫓기는 배틀호모라 해도 틀리진 않습니다. 어차피 이뤄질 사람들이니 이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면서 독자가 복장 뒤집어 지는 것은 둘째치고.....
중요한 건 술입니다. 레스토랑 이름이 보르도인 것부터 시작해, 왜 보르도가 되었고, 저 젊은 사장은 어쩌다가 레스토랑 사장이 되었는가라는 것, 그리고 그 뒷 이야기까지 모두 가 다 술로 통합니다. 규형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태윤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술을 매우 좋아하다보니 술만 나오면 쫓고 쫓기다가도 덥석 미끼를 무니까 이건 규형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미끼를 무는 태윤이 문제예요.
하지만 음식 잘하고 술에 잘 어울리는 음식 제공하고, 입맛에 맞춰 술과 그 음식을 제공하고, 맛있는 음식과 술이 있다며 꼬여낸다면 웬만한 사람은 다 넘어갑니다. 철벽을 치려 해도 저기서 미끼를 흔드는데 어떻게 도망가나요.
그러니 이 소설은 반드시 옆에 음주가무-가 아니라 음주반주를 장만하고 보아야합니다. 기왕이면 글뤼바인 1리터 정도는 마련해놓고 '알콜이 날아갔으니 이건 알콜이 아니야!'라는 정신 승리를 시전하면서 보아줘야 합니다.
제목부터가 그렇지요. 보르도는 포도주의 산지니까요.
라그돌. 『보르도 Bordeaus』. 블루코드, 2018, 2400원.
라그돌님의 전작을 지금까지 죽 읽어와서 그런지-아직 사두고 안 읽은 『캐슬링』은 제외하고;-익숙한 구도와 익숙한 인물이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배경이 그래서, 가능하면 크리스마스 전에 보시길 추천합니다. 크리스마스는 뭔가 음주가무의 시즌 같으니 그 전에 보시는 것이 이 책의 소재나 주제(..)와도 잘 어울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