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권의 BL입니다. 만, 분량이 적지는 않습니다. 쫓아가기 쉽지 않은 이야기더군요. 제목인 카르마는 한국에서는 보통 업이라 번역됩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업보다는 운명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쫓아가기 쉽지 않은 건 배경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요.



마테오 벨리니는 여행 중 지친 몸을 끌고 카페에서 쉬려할 때, 카페 주인의 배려로 작은 방에서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정신이 들어보니 이곳은 이탈리아가 맞지만 시간이 다릅니다. 로마네요.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가 아니라 고대 제국 로마입니다. 그나마도 자루에 담겨 바다에 빠졌다가 누군가의 충동으로 건져져 목숨만 간신히 부지한 노예랍니다.

자신의 본래 몸이 어찌 되었는지, 지금의 몸이 죽으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지, 이 몸의 주인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끌려가, 자신을 주운 아일리우스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죽이려 버린 노예를 주워왔다는 이야기는 이미 파다했고, 그 정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알게 됩니다. 모 귀족가에서 귀부인의 총애를 받던 젊은 노예 하나를 자루에 넣어 던져버렸다는 이야기가 돌았거든요. 그 정체가 지금 마테오의 몸 주인이랍니다.


이야기는 크게 보자면 현대의 지식과 상식을 가진 노예 마테오와, 그를 주운 로마 귀족 아일리우스의 연애담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고, 뒷 이야기가 더 있으니 그 부분은 슬쩍 뺍니다. 중요한 것은 노예로서의 삶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마테오나, 노예답지 못한 마테오를 두고 계속 손이 간다며 신기해하는 아일리우스의 관계입니다. 귀족가 차남으로 형에게 열등감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으며 그걸 못 견뎌 로마가 아닌 먼 휴양지에서 한량의 삶을 보내는 아일리우스 입장에서는 마테오는 장난감과도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주워온 장난감이었지만, 자세히 보고 있노라니 좀 귀여워 보이고, 더 보고 있노라니 재미있어서 계속 옆에 두고 쿡쿡 찌르는 겁니다. 마테오는 자신이 노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현대인으로서의 자아가 워낙 크다보니 그걸 희롱으로 받아 들이지요. 거기에 다른 이들과 쉽게 섞이지 못하다보니 아일리우스의 집에서도 붕 뜬 존재나 다름없습니다.



로마시대의 삶이 세세하게 드러나는데다, 어쩌면 그 자체도 함정입니다. 소설의 1차 결말과 2차 결말을 보고 있노라면 어찌 흘러갈지 알고 있음에도 속이 끓습니다. 아니, 이 작가님은 절대로 해피엔딩이니까 소설이 행복한 결말로 갈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과연...! 싶은 부분이 몇 있단 말입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은...(생략)

그래도 꽉 닫힌 해피엔딩이니 그 점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읽고 나니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다른 작품들이 도로 읽고 싶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차원이동이 아니라 시대이동이 맞겠지만 여튼 역사물 좋아하신다면 추천합니다. 아일리우스가 매우 귀엽습니다.(....)



김모래. 『카르마』. 연필, 개정판, 2018, 4천원.



출판사와의 계약 종료 후 재발매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정판이고요.+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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