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에 이것저것 쓰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일단 눌러 참았습니다.


시간적 배경은 근미래이며 세계관이 독특합니다. 거기에 BL이고요. 알라딘ebook 트위터 계정에서 정보를 보고는 호기심이 생겨서 덥석 물었습니다.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엊그제 G의 요청으로 도라에몽 사은품 구입에 맞춰 담다가 추가 구입했지요. 충동구매였지만 다른 책들에 비해 만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모형정원』을 9월의 도서로 올린다면, 『로스 오호스』는 10월 초에 읽었음에도 당당히 10월의 도서로 올려도 되겠다 싶은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양쪽 다 SF 계열이군요.

 

독특한 세계관은 운명적 만남이라는 데서 비롯합니다. 운명의 반려 이름이 몸에 새겨졌다는 네임버스와 비슷하게, 이쪽은 눈을 보면 바로 안다고 합니다. 운명은 눈이 같다는군요. 그래서 운명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우 많이 등장합니다. 라디오 사연 소개 코너의 단골 이야기도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하지만 테렌스 레트, 테리는 좀 다릅니다. 선천적 시각장애로,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운명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센트럴이라 불리는 이 지역에서 시각장애는 운명을 비켜간 존재, 운이 없는 존재, 더 나아가 불운을 가져오는 존재로 받아 들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테리는 공공교육을 받는 동안애도 내내 따돌림을 당하고 고생합니다. 그의 악몽 주제도 여기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래도 부모님과 동생 조나단은 테리를 매우 아낍니다. 맞벌이인데다 조나단도 유명 향수회사의 조향사로 일하고 있어 집을 비우는 일이 많지만, 테리가 가족들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는다는 건 빈번히 나옵니다. 그게 오히려 테리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짐이 되기도 하고요.

 

선천적 시각장애는 안구를 포함한 복합적 문제이긴 하지만 의학과 과학이 발달하면서 기계안구의 이식도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테리도 오랫동안 다녀온 병원에서 이식 제안을 받습니다. 그와 비슷한 시점에, 테리는 낯선 사람을 만납니다. 그레고리. 테리에게 자상하게 대하는 사람으로, 항상 그의 곁에 맴돌면서 다가옵니다. 이상하게 자주 만난다 싶었더니, 이웃이 되어 더 빈번하게 보는군요. 자상하고  친절한 그레고리와는 달리, 안구이식 문제로 새로 담당의가 된 닥터 라파엘은 매우 직설적이며, 독선적입니다. 테리의 주변인물들을 비난하는 모습에 더더욱 반감만 듭니다.


그러던 와중, 검사를 위해 마취를 하던 테리는 발작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발작이 일어난 뒤, 테리의 주변에는 큰 변화가 생깁니다.


 

까지만.

이 이상 언급하면 심각한 내용 폭로가 되니까요.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접어 두겠습니다.

 

알라딘의 책 소개에는 공이 둘로 소개됩니다. 하지만 구입하고 읽기 시작한 시점에서는 이미 책소개 기억이 휘발된 터라, 닥터 라파엘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시작합니다. 등장할 때부터 건방지고 독선적인 인물로 그려져 그렇습니다. 하지만 테리가 검사 도중 발작을 일으킨 이후의 라파엘은 굉장히 다릅니다. 어떻게 보면 기억이 날아간 환자에게 찰싹 달라 붙어, 역전이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의 행동이 이어집니다. 결말까지 가기 전, 날아간 기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테리가 여러 사람을 만나는 와중에서 점점 그 괴리는 커지고, 결국에는 뒤통수를 맞고 뻗습니다.

 

아놔. 나 왜 그랬던 거야! 아무리 실마리가 부족했다지만 그럴 줄은! ;ㅁ; 정말로 생각도 못했단 말이닷!


근미래SF로서의 여러 장치를 충분히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우겨봅니다.

 

 

 

독특한 시점이란 건 그래서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테리고, 따라서 이야기의 흐름도 테리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고, 테리가 묘사하는 것은 시각적인 상태가 아닌 청각적인 모습들입니다. 그 때문에 독자가 갖는 정보는 매우 한정되어 있지만, 소설을 읽을 때는 아무래도 방심하기 쉽지요. 그 때문에 막판의 함정에 걸리게 됩니다.

그리고 함정은 하나가 아닙니다. 시점에서 발생하는 함정도 그렇지만, 설마하고 예상했던 것과 비슷한 함정이 하나 더 등장합니다. 이 두 가지 함정은 또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상세하게 설명이 나옵니다. 결말은 매우 달달하고 포근포근하니 안심하고 보셔도 됩니다. 애초에 결말이 제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면 10월의 소설이라고 당당하게 외칠 일은 없었을 거니까요.



pamelo. 『로스 오호스(Los ojos) 1-2』. 문라이트북스, 2018, 합권 6200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여러 SF적 장치입니다. 테리의 시각장애는 이 세계에서 상당히 보완됩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자동차는 시각장애를 가진 테리도 무리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도우며, 손목의 스마트워치도 테리가 혼자 돌아다닐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집에는 가사노동을 대신하는 로봇이 있고 스마트기기들이 청소뿐만 아니라 조리 등도 모두 돕습니다. 가벼운 대인기피증이 있는 테리가 혼자 집에 있어도 가족들이 덜 걱정하는 것은 이러한 장치 덕분이지요. 현재도 존재하지만 그것이 더 발전되면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한결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걸 테리의 시점에서 잘 전해줍니다. 그래서 더 좋았고요.:)




덧붙여. 읽은 직후의 트위터 감상에 적은 것처럼, 매우 좋은 소설이지만 두 건의 의료법 위반은 지적하고 넘어갑시다.

1.개인정보 및 개인의 의료정보 무단 유출

2.의료행위 당사자(황자)에게 의료 행위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고 끝까지 감추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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