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매우 멀쩡해보이는 약 1만원 어치의 식사지만, 하나씩 뜯어보면 어딘가 이상한 메뉴. 쫄면은 처음에는 맛있었지만 매우 소금맛이 돌았으며, 나중에서야 그게 소금맛이 아니라 과다한 글루타민한'나트륨'에 의한 짠맛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김밥은 그럭저럭. 만두는 오랫동안 쪄서 아랫부분이 축축하게 젖어 있더군요. 거기에 느끼한 맛이었으니, 먹다가 도중에 분리수거를 했습니다. 하하하.


차라리 마트에서 레토르트 식품을 사오는 것이 가격적으로도, 맛으로도 훨씬 만족도가 높았을 겁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겪으면서 아는 것은 음식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람도 그렇다고 하잖아요. 사실 책도 그렇습니다. 시놉시스만 보면 매우 클리셰적이고 멀쩡한 소설이지만 그걸 어떻게 뽑아내느냐에 따라 극심한 호불호를 자아냅니다.


어제 읽은 소설이 그랬습니다. 가능하면 소설의 정보를 특정짓지 않기 위해 소설의 정보에는 일부러 진실과 거짓을 섞어서 감상을 쓰겠습니다. 전부 진실일 수도 있고 전부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낯선 출판사의 책이라 고민하다가 조아라가 아닌 타 연재처에서 굉장한 찬사를 들은 소설이라기에 궁금해서 샀습니다. 제가 알고 있을 정도면 상당히 유명한 플랫폼이겠지요. 그래서 어느 정도는 안심하고 샀습니다. 그리고 다 읽은 뒤의 감상은, 그 플랫폼 전반에 대한 불신, 출판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하기야 로판은 그 격차가 매우 크지요. ... 아니, BL도 그렇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BL은 리뷰를 쓰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이유는 짐작하실 겁니다.



시놉시스는 상당히 고전적인 클리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안심하고 보았지만 읽다가 전개 앞부분에서 더 읽는 것을 포기하고는 절정부로 넘어갔습니다. 절정을 확인하면서 중간 부분을 안 읽기 잘했다고 생각했고, 분노했습니다. 취침시간을 넘겨가며 읽은 책이었는데, 앞부분 읽으면서 긴가민가 했지만 이런 소설에 쓰인 제 시간이 아깝고, 책을 찍어낸 나무가 불쌍했습니다. 그리하여 『노르웨이의 나무』를 다시 읽겠다 결심하며..(하략)



이 소설은 판타지 배경의 로맨스입니다. 내용을 축약하면 불우한 환경의 주인공들이 만나 세계를 변혁한다는 것쯤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매우 작위적입니다. 주인공들의 불우한 환경은 뒤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카타르시스를 만들기 위해 세계관 자체가 매우 후진적입니다. 전근대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상황이며, 주인공의 움직임이 그 계기를 만드는 겁니다.

악당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으나 그들이 벌이는 짓은 전근대적이고 범죄이며 파렴치합니다. 폭력과 강간이 빈번하기 때문에 관련 트라우마가 있다면 책 앞부분에서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은 그런 세계니까-랍니다. 그런 세계가 주인공 한 둘에 의해 바뀌는 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라고 해도, 그것이 왕이라 해도 불가능합니다. 왕 한 사람이 움직여 사회 제대로 바꾸려고 한다면 귀족들 전체가 들고 일어날 것이며, 그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일을 진행하려면 왕권이 매우 강해야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확신이 없는 건 중간 부분을 건너 뛰고 보았기 때문이고요.



정리하면 이 소설에 분노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1.전반부의 폭력, 강간, 인권유린은 후반부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것으로 보임. 카타르시스계보다는 힐링계를 더 선호하는 입장에서 이 소설은 초반부터 사람 속을 뒤집었음.


2.주인공들의 성격이 잘 이해되지 않음. 아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음. 얘가 왜 이러지? 싶은 부분이 상당히 많음.


3.사회변혁을 소재로 하나, 그 사회변혁이 주인공들과 다른 등장인물 몇몇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음. 영국의 사례와, 프랑스의 사례를 보았을 때 불가능함. 왕권강화 같은 시스템의 유지보수는 장기적으로 보아 가능하나, 여기서 소재로 삼은 사회변혁은 시스템의 유지보수나 시스템의 교체가 아니라 시스템의 언어 변경 수준으로 생각함. 그러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되어야 하나, 왕의 의지와 몇몇 귀족의 행동만으로 변화함. 개별적으로 겪은 사건들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하나, 이런 사건만으로는 시스템이 변할 수 없다고 봄. 즉,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사건들은 사회 시스템 변혁의 당위를 이해시키지 못함.

(물론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4.적으려다보니 이거 내용이 꽤 많아서 일단 접음. 하여간 등장인물 중에서 감정이입이 가능하거나, 이 인물 마음에 든다는 인물이 단 한 명도 없었음.


거기에 글 자체의 완성도도 떨어집니다. 덕분에 모 플랫폼의 인기작이라는 광고가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 출판사 책은 일단 안사고요, 이 플랫폼 연재작도 일단 안 살 겁니다. 불매한다 해놓고 가끔 충동구매로 마담드디키나 디앤씨북스 책을 구입하는 일이 있지만 여기는 그럴 일이 없지 않을까요. 딱 잘라 안한다고 하면 꼭 제 선언을 꺾는 일이 발생하여 확언은 못하지만 한동안은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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