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입한 지는 좀 되었습니다. 그간 네 번쯤 돌려 보았던 가. 보면서 감상 써야지 하고 미루고 있다가 이제야 적습니다. 하루에 최소 두 건씩은 꼬박꼬박 써야 밀리지 않을 수 있을 건데요. 이 모든 것은 게으름이 문제입니다.


앞서 짤막감상에서 적었던 것처럼 조아라에서 연재되었던 소설입니다. 본편 연재 뒤 프리미엄으로 들어갔다가 전자책으로 출간되었고요. BL이며 판타지, 환생, 회귀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며 주인공은 제국의 황자 자이비드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첫 머리는 황자가 아니라 황제가 되었지만 마물의 침공으로 제국뿐 아니라 세계 자체가 멸망하며 함께 종말을 맞는 모습이 자이비드의 입으로 아주 담담하게 기술됩니다.

사망했지만 그 시점에서 회귀. 신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자기가 회귀한 것인지 아니면 미래를 미리 본 것인지 잠시 고민합니다. 하지만 멸망하는 미래의 기억이 생생하고, 사망 시점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어 마지막으로 되돌릴 수 있는 시점, 그것도 신전의 기도실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감안하면 회귀가 아닐까 추정합니다.


기도실을 나와 기억을 곰씹고 있는 사이, 자이비드는 멸망의 주역이었던 그 마물을 마주합니다. 정확히는 마물과 융합한 인간. 그리고 이전에 자신의 시종이었으며 아주 참혹하게 내침을 당한 한 살 어린 제타크를 말입니다. 하지만 나이상 19여야 할 제타크는 아직도 어린아이입니다. 마물의 모습이 발현하여 얼굴과 몸에도 마물의 증거가 나타났지만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네요. 일단 죽는 것은 싫으니 저 꼬마를 챙겨가자 싶어 신전을 무시하고는 챙겨갑니다. 그리고 아버지인 황제의 호출. 황태자가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연락을 받고는 바로 호출당한 것이라, 그 자리에서 황태자를 폐해달라 하고는 아카데미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제타크의 마음을 돌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황자님의 노력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보면 굉장히 음울하거나 진지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아닙니다. 이 소설이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것은 이 황자님의 정체 때문입니다. 이 사람, 제목에서 나온 것처럼 전생을 기억합니다. 문제는 그 전생이 마물이었다는 것이고요. 마계와 인간계는 몇몇 게이트를 통해 이어졌지만 교류는 없습니다. 특히 인간계에서 마계로 넘어가는 것은 쉽지만 마계는 약육강식이 극도로 강화된 세계라 살아남아서 다른 게이트를 찾아 돌아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돌아온 인간은 드물며, 돌아온 인간 자체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러한 마계의 주민은 마물이며, 마물들 역시 10년까지는 본능만 가지고 있지만 그게 넘어서면 이지를 가지며, 80년을 넘게 살아 남으면 이지를 넘어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군요. 황자님의 전생은 지네괴물이었고 50년은 훨씬 넘게 살았지만 감정을 가질 정도로 오래 살지는 못했습니다. 이 때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굉장히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기본 표정은 무표정, 감정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나마 회귀 전에는 황제와 황후 사이의 맏이라 황태자의 직을 그대로 이어서 황제가 되었지만, 회귀 후에는 제타크를 챙기면서 황태자 자리를 걷어차고 배다른 형제에게 넘깁니다.



이러한 설정 자체는 읽다보면 그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물의 기억을 가진 황자님이 툭툭 내뱉는 여러 말과 직접 보이는 행동이며, 제타크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거기에 욕하고 휘둘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갑니다. 그리고 새로운 황태자인 바파로스도 휘둘리고, 황자의 스토커인 누구씨도 휘둘리고, 제타크는 붙어 있는 나날 자체가 고행입니다. 이쯤 고행을 하다보면 이것은 득도를 위한 무슨 수련길인가 싶은 정도입니다. 연민이 들 정도니까요.


결말은 해피엔딩이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본편보다도 그 외전의 이야기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던 터라 외전 이야기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동전반지. 『마물의 환생기록 1-3』. 연필, 2017, 각 3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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