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조아라 연재작으로, 연재 후 투고하여 작년 말에 리디북스 출간. ePub에는 2월에 나왔습니다. 엊그제 나온 것을 확인하고는 잽싸게 구입해 읽었습니다. 모두 BL이지만 한쪽은 가이드버스 세계관이고 다른 한 쪽은 현대배경입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배경의 이야기이고, 한쪽은 제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어두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읽고 나니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몇 가지 이유 때문일 겁니다.



조아라 작가들 중에 매번 찾아서 선작하거나 출간하는대로 구입해 보는 작가가 몇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취향이 맞아서 계속 보거나 아니거나 하는데, 그런 작가들 중에서도 소재는 서로 다르고 방향도 다르고, 가끔은 대자연의 영향(...)으로 굉장히 주인공을 괴롭히는 내용을 다루기도 하지만 꼬박꼬박 챙겨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묘하죠. 분명 강간소재를 비롯해 주인공이 매우 구르는데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챙겨보게 된다는 건 말입니다. 제가 소설을 읽는 것은 딱 두 가지 목적이며 하나는 정보 수집, 다른 하나는 기분 전환입니다. BL이나 로맨스소설은 대부분 후자입니다. 그러니 소재가 취향에 맞지 않으면 던져 버리는 것이 당연함에도 챙겨봅니다.

희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들여다보면 또 다릅니다. 밤바담의 『느린 봄 기대어』도 그렇지만 집단따돌림이나 폭력 등도 그 소재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더군요. 어떤 소설에서는 같은 소재가 등장해도 괜찮고, 어떤 경우는 아닌 것이 왜인가 곰곰히 따진 다음 내린 결론입니다. 어떤 소설에서는 주인공에게 트라우마를 부여하고 시련을 주기 위해 강력한 소재를 사용하면서 그 장면을 매우 꼼꼼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어떤 소설에서는 같은 소재를 사용하더라도 간접적으로 보여주거나 하여 일종의 필터링을 거칩니다. 윌브라이트의 『역지사지』가 다른 후회/복수물과 같은 소재를 사용하더라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봅니다. 고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그 고생을 통해 상처와 강력한 힘 양쪽을 얻은 주인공이며, 그 주인공은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오롯이 홀로 섭니다. 고통 받았던 과거를 자세히 묘사하는 건 지금의 주인공이 가진 트라우마를 설명하는 한 방법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독자들이 상상하게 놔두는 것도 하나의 소설적 장치일 겁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눈가리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내용이 길지 않으니 가볍게 다루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고, 망가진 사람이 왜 망가졌는가에 대한 묘사를 줄여 그럴 수도 있습니다.

권해원은 어느 날 귀갓길에 이상한 사람을 마주합니다. 자신을 아빠라 부르며 반갑게 따라오는 사람은 옷 차림새나 말투로 유추하건대 정신이 온전하지 않습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와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해원은 이 낯선 청년을 집에 들이고 '보살핍니다'. 정신연령이 매우 낮은데다 학대의 흔적있는 이 청년은 이모저모 종합해볼 때 최근 그 도시로 도망쳐 행방이 묘연하다는 연쇄살인마 이정윤으로 추정됩니다. 평소 타인과의 교류가 없는 해원이지만 이 청년만큼은 자신의 영역 안에 들이고는 그 뒤의 일을 생각합니다.

읽다보면 해원 역시 매우 망가져 있으며, 정윤도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지속된 학대가 정신적 미성숙을 가속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이런 정윤이 연쇄살인을 벌이고 그걸 은폐할 수 있을만한 지적 능력이 없다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요.

단편보다는 조금 더 긴 이 이야기는 그렇게 해원이 정윤을 받아 들이고 무언가를 행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행한 뒤에도 짧은 이야기가 더 있고 에필로그도 있지만 그 이야기는 접어 둡니다.

해원이 정윤을 왜 들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모로 생각할 수 있지만 처음에는 호기심, 그 다음은 동질감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물론 지적능력은 매우 다르지만 망가진 모양새를 감추고 그럭저럭 사회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그 근간에는 뭔가 부족함을 느꼈을 것이고, 그 부족함을 채워준 것이 정윤이었을 거라고요. 정윤은 기본적으로 순수하고 의심을 모르는 인물입니다. 뭔가 다르다 생각하면 의심하게 마련이지만 정윤은 다르니까요. 의심하기 보다는 그냥 스스로 그러려니 납득하고 받아 들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또 믿더군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순수하면서도 곧은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해원이 기댈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세계가 무너지기 일주일 전』은 훨씬 전에 나온 단편입니다. 최근에 출간된 『우평인』의 스핀오프에 가깝습니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며 스치듯이 이야기가 지나치기도 합니다. 가이드 버스 세계관으로, 센트릴은 특수한 능력을 가지지만 가이드가 없이는 그 능력이 자신을 갉아먹어 폭주하거나 일찍 단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가이드는 보통의 사람이지만 파장이 맞는 센트릴에게는 더없는 구세주이자 구원자입니다. 거기에, 센트릴은 자신이 각인한 가이드가 사망하면 함께 죽지만, 가이드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우평인』에서 나온 것처럼 센트릴와 가이드의 사이는 의무적인 관계에서 반려와도 같은 관계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가이드가 받는 타격은 그 관계에 좌우될 겁니다. 둘 사이 관계의 형태가 어느 쪽이건, 센트릴의 목숨줄이 가이드에게 달려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백승연은 배우입니다. 다른 많은 센트릴이 그러는 것처럼 군대에 가지는 않았고 배우로서 매우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백승연의 가이드 정우민은 타인들의 기준에서는 잘난 것 하나 없지만 센트릴을 잘 만난 그런 가이드입니다. 그리고 그 정우민은 불치병에 걸려 지금 죽어갑니다.

제목 그대로 이 이야기는 정우민이 불치병에 걸려 죽는, 그 일주일 간의 이야기를 센트릴인 백승연의 입장에서 다룹니다. 백승연에게는 가이드인 우민이 자신의 세계이고, 그런 세계가 무너지기 일주일 전부터 승연은 그 옆에 붙어 숙식을 함께 하며 세계가 무너지는 시간을 기다립니다.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언론이 뭐라하든, 가족이 뭐라하든 상관없이 세계의 종말을 기다립니다. 그저 자신의 가이드가 마지막으로 정신이 들어 있을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것을 슬퍼하며, 하지만 마지막에는 혼자 보내지 않는다는 걸 안심할 따름입니다.

분명 세계가 무너지는 이야기이니 해피엔딩이 아님에도 읽고 나면 이건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까운 인재가 죽고, 가족이 죽는 일이더라도 당사자는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담담히 받아 들였고, 그리고 맨 마지막의 이야기를 보면, 적어도 그것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겁니다. 센트릴과 가이드로서 함께했고 많은 것을 공유했던 만큼 틀릴, 틀리게 짐작할 속내는 아니었던 걸까요.



가이드버스의 근미래SF와 현대 배경 소설을 차례로 읽고 나니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경은 다르지만, 전작들도 그렇듯 주인공들이 서로 손을 마주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광경이 그려지거든요. 그 앞에 놓인 것이 어떤 길이든,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주인공들은 괜찮을 겁니다. 서로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차분한 메시지를 받아 들고 오늘도 담담히 걸어갑니다.:)




이미누. 『세계가 무너지기 일주일 전』. 시크노블, 2017, 2500.

이미누. 『눈가리기』. 시크노블, 2017, 600원.


위에 적은 것과 알라딘에 등록된 출간연도가 다른 것은 리디북스 독점 때문에 2017년에 출간되었다 이펍에는 2018년 2월에 풀렸기 때문입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책에는 2017년으로 언급되어 일단 2017.... 음. 그냥 2018로 적을 걸 그랬나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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