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신이 있었습니다. 신은 세계를 창조하고 계속해서 둘러보았습니다. 수많은 동식물들이 번성하고 그 안에 인간이 나타났습니다.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 등장하고, 대립하는 존재들이 나타날 때까지 신은 꾸준히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모형 정원 안에서 인간이 다른 존재들에게 밀려 멸종 직전까지 가자 신은 별을 내려 보냈습니다.

 “너희들이 가서 도와주거라.”

 신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너희들은 인간과 섞이지 못하고 분리되겠지. 너희와 인간을 연결할 길잡이들을 찾아라. 찾아서 너희의 짝으로 삼으면, 그 짝들도 마찬가지로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길잡이가 없는 별은 강한 힘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통제하기가 어렵겠지만, 길잡이가 있으면 원래의 힘을 다 발휘할 수 있을 것이고, 길잡이 역시 너희의 힘을 나눠 받을 수 있을 거란다.”

 신은 별들이 혹시라도 인간을 해치거나, 인간이 별을 해칠까 걱정하여 별에게 금제를 걸고 그 열쇠를 인간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려간 별들은 길잡이를 찾아 훌륭히 그 역할을 다했습니다. 신은 다시금 모형 정원의 진화를 감상했습니다.


-그림책, 『신과 별과 길잡이』에서.



 바는 적당히 어두웠다. 입구에 들어서며 세실 패러코트는 직원에게 겉옷을 맡기고 가장 안쪽을 향했다. 예상했던 대로 누나 엘렉트라는 먼저 와서 한 잔 마시고 있던 모양이다. 동생이 옆자리에 앉자 엘렉트라는 온더락잔을 들어 인사를 대신했다.
 세실은 같은 것으로 한 잔 주문하고는 잔을 비울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어떻게 됐어?”

 술기운을 빌려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묻자, 엘렉트라는 통과되었다고 답했다.

 “전출 사유 자체가 부적응인데다 마침 북부 기사단에도 맞는 자리가 있어서 이견 없이 발령 건이 통과되었어. 오늘 최종 결재까지 완료되었으니 내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통보될 거야. 근무는 다음 달부터고. 당장 내일부터 정리하고 준비하겠지.”

 가능하면 늦게 가기를 바랐지만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른 길잡이를 구할거야?”

 엘렉트라가 물었다. 세실은 고개를 젓고 술을 한 잔 더 주문하고는 대답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길잡이로 생각하니까.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가이딩을 부탁하거나 약으로 버티거나.”
 “약으로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잖아. 게다가 에이드리언은 종신 길잡이였으니, 에이드리언이 없으면 네 능력 발휘에도 문제가 생길거고.”

 엘렉트라의 지적은 날카로웠지만 세실은 단단히 결심을 한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나중에 에이드리언이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올 수 있게…….”

 말을 끝맺기 전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세실은 뒤통수에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아닌 게 아니라 바 안의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렉트라는 세실의 뒤통수를 갈긴 손을 털며 감정을 꾹 억누른 낮은 목소리로 충고했다.

 “이 미저리 같은 자식아. 네가 지금까지 한 짓을 생각해보고 입 열어. 넌, 에이드리언의 경력을 끊었어. 에이드리언은 저 바닥부터 올라와 특수기사단에 배속된 노력형 기사였고, 길잡이가 아니어도 뛰어난 인재야. 그런데, 네가 길잡이라며 과보호하며 위험한 프로젝트에서 배제하고, 복잡한 프로젝트에서도 제외하고, 그저 자신의 옆에 있는 것 외에 다른 일은 주지 않으려 했잖아. 그건 보호가 아니라 속박이고 압박이야. 특수기사단에서 부적응으로 타 기사단에 넘어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그래? 네 놈이 끊은 건 경력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실력도다.”

 에트와르, 또는 에스테르. 신에게 힘을 받았지만 핸디캡을 가진 별로서 길잡이를 만나고 그와 짝을 이룬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길잡이가 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서로를 서로의 짝으로 인정하여 각인하면 길잡이들도 별과 함께 상당한 능력 상승을 가지며, 그에 따라 자신의 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있다. 짝이 막 되었을 무렵의 세실과 에이드리언은 이상적인 파트너쉽을 보였으며 능력의 상승이나 발휘, 그리고 페어로서도 훌륭했다. 하지만 에이드리언을 보호하고자 하는 세실의 마음이 점차 강해지며 그게 속박이 되자 페어는 무너졌다.


 무너진 것은 에이드리언의 마음이었기에 초반에는 가이딩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연이어 박탈당하고 세실의 가이드로서만 보호받는 상황이 되자 에이드리언은 항의를 시작했다. 둘의 충돌은 곧 가이드 효과의 박탈로 나타났고 이는 세실의 능력 저하, 그리고 에이드리언에 대한 보호 강화로 나타났다. 악순환은 에이드리언이 특수기사단의 부적응을 이유로 전출 신청을 넣으면서 끊어지는 듯 보였다. 세실은 당연히 반대했지만 관련자인 기사단장 세실은 결재선에서 빠졌으며 다른 특수기사단원들의 동의를 얻어 상부로 올라갔다. 그리고 중간 결재권자인 행정부 인사처장 엘렉트라에게까지 닿았다. 엘렉트라의 결재가 끝나면 그 다음은 의례적인 결재권자인 행정부 장관의 결재만 남는다. 엘렉트라가 승인했다는 것은 에이드리언의 이동이 결정되었다는 것이었고, 최종결재마저 끝났다는 것은 둘의 결별만 남았다는 의미였다.


 엘렉트라는 속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린 온갖 말들을 한숨으로 모아 내뱉고 이번에는 가볍게 마실 한 잔을 주문했다. 술이 나올 때까지 세실은 아무 말 없이 빈 잔만 만지작 거렸다.


 “보내 보고 도저히 안 되면 그 때는 그 다음에 생각할거야. 일단 한 달을 버티고, 두 달을 버티고, 반 년을 버티고, 일 년을 버티고. 그 다음은 그 다음에 생각할래. 일단 버티는 것이 목표야.”
 “길잡이 자리는 비울 거라고?”
 “응.”


 엘렉트라는 잠시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효과가 어느 정도 있을지 모르지만 형제가 둘 다 에트와르라면 길잡이 파장이 어느 정도 공유된다니까 집으로 들어올래?”


 뭐라 해도 형제다. 나이 차이도 적지 않아 둘의 사회 경험 차이도 상당했다. 엘렉트라는 에트와르로 태어나 일찍부터 길잡이를 만났으며 그 길잡이와 결혼해서 아이 둘을 두었다가 사별했고 현재는 새로운 길잡이와 짝을 이루고 있다. 이제 마흔을 갓 넘겼지만 그간 겪은 사회 경험은 웬만한 사람들보다 더 길고 깊었다. 그렇기에 길잡이를 잃거나 떠나보낸, 다시 말해 물리적이나 심정적으로 거리가 멀어진 길잡이를 둔 별들이 보이는 행태도 파악하고 있었다. 세실이 어느 쪽일지는 알 수 없지만 에트와르에 대한 연구에서는 배우자를 잃은 사람의 스트레스와 비슷하거나 더 하다는 내용이 많았다. 만일의 일을 대비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엘렉트라에게 자식이 있기 때문에 작위 계승권은 낮아질 예정이지만 아직 자식들이 성인이 아니며, 성인이 되어야 정식 후계자로 지명이 되므로 아직 계승 1위는 세실이다. 또한 엘렉트라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차기 후계자의 후견인이 되는 것 또한 세실이므로 가주인 엘렉트라는 세실의 상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길잡이를 떠나 보내지만 그러한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는 세실 역시도 상황을 받아 들였다. 어차피 정신적으로 몰려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안정된 환경을 찾는 것이 좋다. 조카들이 있고 완벽히 맞지는 않지만 상성이 평균 이상일 길잡이, 프레데릭이 있을 옛 집, 누나의 집이 좋다.


 “응. 대강 정리하고 가능한 빨리 들어갈게.”


 그리고 가능한 빨리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에이드리언을 떠나 보낸 뒤의 허전함을 견디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견디고 다시 잃어 서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쫓아갈 수 있을까.


 ‘그건 그 다음에.’


 세실은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삼키며 우울한 얼굴로 그 이상 생각하기를 멈췄다.



 남쪽 성벽 위에 서면 하염없이 그곳을 바라보게 된다. 남쪽 저편, 수도가 있는 그 어딘가. 에이드리언은 남쪽에 있을 누군가를 잠시 떠올렸다. 형이나 형수가 알면 서운하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이해는 할 것이다. 그가 수도에서의 생활을 모두 손에서 놓고 떠나온 것은 그 때문이니까.


 “또 보냐.”


 뒤에서 제랄드가 등짝을 후려갈기며 말을 걸어왔다. 잠시 우울한 분위기에 젖어보려 했더니 방해하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물론 그 심정은 이해한다. 에이드리언이 그렇게 아련한 얼굴로 바라보는 것이, 마치 우울한 곳으로 빠져 들 것 같으니 어서 빨리 나오라고 그러는 것이고. 그런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은 별개. 일단 맞았으니 그에 상응하여 갚는 것이 도리다.
 잽싸게 제랄드의 다리를 걸어 기우뚱 휘청거리게 만들고는 에이드리언은 씩 웃었다. 하지만 그렇게 심통 부려봐야 기사다 보니 제랄드도 금방 무너진 몸의 균형을 되찾았다.


 “걱정 안해도 돼.”


 제랄드는 그 곳에서의 사정을 대강이나마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 곳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에이드리언, 브리앙, 그리고 세실. 형수인 도로테아는 아마 브리앙에게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 부부가 이혼했다. 왜 이혼했는지는 모르지만, 단 둘이던 형제는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나뉘었다. 형은 아버지에게, 동생은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이혼이 성립되자마자 북쪽 저 끝 지방에 전출 신청을 하고 형을 데리고 가버렸다. 아주 살가운 형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칼로 무 썰 듯이 갈라질만한 사이도 아니었다.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았던 형제는 가끔 서로를 떠올렸지만 그 둘이 다시 만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다. 그것은 변경지역으로 전출했다가 몇 년 뒤에야 수도로 돌아온 아버지와 형의 사정 때문이기도 하고, 이혼한 뒤 타국 사람과 재혼하면서 아이를 떠난 어머니 때문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재혼 소식에 아이는 다른 나라로 가고 싶지 않다며 제 발로 보육원에 걸어 들어갔다. 자기 스스로 가족을 버리는 것이 버림 받는 것이나, 타국에서 외면 당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라 생각하며.


 ‘같이 갔다가 학대 받는 것보다는 어쩌면 고아원에서 지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


 보육원에 머무는 언젠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지만 이건 자기 위안이자 자기 위로였다. 그 뒤 어머니에 대한 소식은 들은 적이 없고 그 뒤에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미 타국으로 떠나버린 혈육을 일부러 찾아서 무엇할까. 그것도 스스로 끊어낸 혈연인데.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옮긴 직장에서 형을 만났을 때도 담담했다. 형은 긴가민가했던 모양이지만 동생, 에이드리언은 브리앙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보았다. 하지만 일부러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둘 다 실력으로 이 곳, 특수기사단에 들어왔고, 혈연을 강조하며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었다. 아니, 그건 핑계이고 아는 척 했다가 또 외면당할까봐 두려웠는지도 몰랐다.


 특수기사단은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기사단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가능했다. 평범한 생활을 해왔다면 들어오기 더 어려웠을 텐데, 버림받았기 때문에 더욱 미친 듯이 공부에 매달렸던 것도 있고 보육원에서 나와 하루라도 빨리 홀로 서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그 덕에 아카데미에 장학금을 받으며 진학하고, 장학금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 노력했다. 그 덕분에 노력파 수재라는 평가를 받으며 아카데미를 예정보다 더 일찍 졸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사단에서 1년 근무한 뒤 특수기사단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전출 신청으로 북쪽 레사비크로 넘어온 것은 2년 전, 특수기사단에서 3년간 근무를 마친 뒤였다.


 ‘그러고 보면 열여섯 아슬아슬하게 졸업해서 열일곱은 기사단에, 스물까지는 특수기사단에. 아직 내가 어린애 취급 받는 것은 당연한 건가.’


 옆에서 장난을 걸어오는 제랄드를 밀어내며 에이드리언은 성벽 아래로 걸어 내려왔다. 이제 슬슬 순찰을 나가야 할 시간이다.



 형은 무난한 길을 걸어왔다고 들었다. 물론 본인의 말이니 100% 신뢰할 수는 없다. 특수기사단 2팀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배 기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여섯 살 위의 형 역시 비슷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모양이었다. 같은 아카데미에 있지는 않아서 풍문으로만 들었지만 형은 몸 쓰는 일보다는 머리 쓰는 일에 익숙해 주로 교섭이나 외교와 관련된 업무를 맡고 있었다. 교섭 능력이 상당히 뛰어났기 때문에 특수기사단에 파견되었지만, 원래는 외교부 소속 공채 인원이었다고 했다. 은테 안경 때문에 더 무섭고 차갑고 이지적인 인물로 보인다는데, 다른 안경으로 바꾸라 해도 부득불 말을 듣지 않았다. 기사단 내에서 그런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일부러 쓰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도로테아 누나의 옆에서는 안경을 벗거나 무테 안경을 쓰고 있는 일이 많았다. 누나는 무테 안경 쪽이 더 좋다고 하는데 업무할 때만 은테를 고집하는 것을 보면 그 차가운 이미지를 업무용으로 고정하기 위해서라는 변명이 틀리진 않는 모양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형이 없었다면 특수기사단에서의 마지막 생활을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형이 그런 상황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 이미 세실과 자신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할 시점이었다. 애초에 틀어졌다고 표현할만한 관계도 아니었지만.


 “그렇다면 어떤 관계였는데?”


 사과술이 담긴 유리잔을 가볍게 흔들며 제랄드가 물었다.


 “별과 길잡이와의 관계는 보통 연애 감정이라고 하잖아. 서로 좋아하는 것 아니었나?”


 어쩌면 제랄드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좋아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는 아직, 동경과 선망과 존경이라는 감정을 호감이나 사랑 같은 감정과 분리해서 보지 못했다. 우정은 알았지만 그 이상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부러 선을 긋고 대했다. 그렇기에 좋은 집안 출신으로 특수기사단 2팀의 팀장인 에트와르가 자신을 가이드라며 손을 내밀었을 때 들었던 감정이 선망하고 동경한 인물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 대한 우쭐함 혹은 보람이었을지, 아니면 그 이상의 좋아한다는 감정이었을지 나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그걸 분리하는 것은 어려웠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


 제랄드도 이런 대답이 나올 건 알고 있을 것이다. 두 살 연상이지만 졸업 동기로,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왔으니까. 다만 제랄드는 고향이 레사비크, 정확히는 현 근무지에서 4km 가량 떨어진 산골 마을이라 졸업한 뒤에는 바로 이곳으로 돌아왔다. 아카데미 시절 같이 친하게 지냈던 다른 친구들 역시 대부분이 지방 출신이었기 때문에 학교를 나온 뒤에는 제대로 만난 적이 없었다. 다들 고향으로 돌아가고 없다.


 “그래도 여자친구는 있었잖아.”
 “여자친구도, 남자친구도 있었지만 내가 먼저 좋아해서 사귀자고 한 적은 없지.”


 제랄드는 에이드리언의 대답에 곰곰이 그 간의 연애 사정을 곰씹어 보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에서 에이드리언이 사귀었던 사람은 총 넷. 그 중 셋은 여자였고, 한 명은 남자였다. 남자는 제랄드보다 한 기수 위의 선배였으나 에이드리언과의 관계는 그리 길게 가진 않았다. 여자 둘은 그 선배 전, 한 명은 그 선배 후였는데 어느 쪽이건 간에 모두 상대방이 먼저 에이드리언에게 사귀자고 제의하여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넷 모두 에트와르는 아니었다. 애초에 길잡이로 지목된 것은 세실이 처음이었다. 에트와르와 길잡이의 관계가 모두 다 연인 관계는 아니므로 그 결연과 연애를 분리하지 못하는 것도, 사회경험이 많지 않은 세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런 속내를 숨긴 채 제랄드는 가볍게 말을 이었다.


 “그 왜, 전형적인 바람둥이 아냐?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막지 않는다?”


 결혼할 준비를 하고 있는 새신랑, 제랄드가 입을 삐죽이자 에이드리언은 피식 웃었다. 고향 마을에서 기다린다던 제랄드의 애인은 끝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더니 아카데미 생활 마지막 해에는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졸업 직전에 청혼도 했다고 한다. 다만 예비 배우자의 나이가 어려, 자리를 잡고 또 돈을 모으기까지의 몇 년 간을 더 기다린 셈이었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을 날은 그리 머지않았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땠는데.”


 제랄드는 지금까지 세실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론한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듣는 귀가 많았고 에이드리언의 상처는 컸다. 현재 기사단 내에서는 특수기사단의 업무가 과중했던 데다 마지막 임무에서의 부상이 커서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 신청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은 기사단장과 제랄드뿐이다. 이렇게 소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당사자의 신분이 높은 것도 한 몫했다.


 세실 패러코트. 그 당시에는 특수기사단 2팀의 팀장이었지만 지금은 특수기사단의 부단장을 맡고 있다. 좋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누나가 집안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입장에 있는 사람. 에이드리언보다는 열 살 위로 훨씬 경력도 길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 자신과는 달리 노력형 수재가 아니라 타고난 천재인 사람. 그런 사람과 자신이 별과 길잡이로 엮일 줄은 몰랐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 굉장히 들떴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위험한 업무에서 배제하는 것을 배려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 업무 배제뿐만 아니라 동료들과 자신을 떼어 놓고, 견제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프로젝트의 실행 업무가 아니라 보조 업무로 돌렸을 때는 당황했다. 그리고 길잡이기 때문에 동거하고, 연인이라는 공표를 들었을 때는 더욱 힘들었다. 학당시절 에이드리언과 사귀었던 사람들에 대한 질투, 그리고 개인 신변에 대한 강한 집착과 훼방, 직장 내에서의 의도적인 고립으로까지 이어진 상황에서 3년이나 버틸 수 있었던 것이 대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나마도 오랜 세월을 홀로 버텨온 에트와르고, 자신은 그런 에트와르에게 유일한 나침반이 될 수 있는 길잡이이기 때문에 더욱 인내하려 했다. 하지만 인내도 한계가 있었다. 더 많은 경험을 쌓겠다며 전출 신청을 내고 이곳으로 넘어왔을 때는 이미 대인기피가 일어나기 일보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형이나 예비형수가 없었다면 그런 자신에게 갇혀 삶을 놓았을지도 모른다.


 꾸준하게 제랄드와 편지를 주고 받은 것은 어떻게 보면 세실과의 관계를 악화시켰고, 어떻게 보면 세실과의 관계를 끝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제랄드의 편지는 세실에게는 질투의 대상이었으며 에이드리언에게는 피난처였으니까.


 “학당 졸업 전엔 너 철벽으로 소문 나 있잖아. 오는 사람 자체를 철저하게 막아버리는. 애초에 인간관계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너 은근 인기 많았다?”


 반은 농담, 반은 진담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그리 반가운 소리는 아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 사이에 묻혀서 얌전히 생활하기를 바랬거늘, 그렇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상관은 없다. 이미 예전 일이고 지금은 전혀 관계가 없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왜 그 사람 이야기를 꺼내는 거지? 지금까지는 꺼낸 적 별로 없었잖아. 이렇게 술안주로 삼은 적도 없고. 이제 괜찮아진 거야?”


 직설적으로 물어본다는 것은 제랄드의 단점이기도 했지만 장점이기도 했다. 말을 쉬이 꺼낼 수 있었으니까. 에이드리언은 조금 망설이다가 이번에는 따뜻하게 데운 사과주를 한 잔 주문하고 입을 열었다.


 “온대.”
 “…어?”


 주어는 없지만 지금까지 화젯거리가 된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주어가 누가 될지는 뻔했다. 제랄드는 어제 아침에 있었던 전체 기사단 회의에서도 별 말이 없었다는 걸 떠올렸다. 다음 전체 회의는 일주일 뒤. 그리고 기사단장 회의는 어제 전체 회의 후에 있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특별한 전달 회의는 없었다.


 “단장님이 개인적으로 말씀해주시더군.”


 회의에서의 공식 발표만 생각했는데, 단장님께 따로 들은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정보를 듣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에이드리언은 기사단의 임시 부단장이자 현 단장의 비서 겸 보좌관이니까. 인원이 적은 기사단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는 일이 많았지만, 특히 에이드리언은 현 단장의 보좌관으로서 비서 역할도 맡고 있다가, 부단장이 출산휴가를 간 사이 부단장 업무도 맡고 있었다. 부단장 업무라고 해봤자 단장이 하는 일을 분담하는 것이니 실제로는 보좌관이나 비서 역하고도 겹친다. 하여간 그렇다보니 그 사람이 온다는 사실을 소문이 퍼지기도 전에 알았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아직 결연은 그대로지?”
 “응.”


 에트와르와 길잡이간의 결연이 끊어지면 둘 다 알아차릴 수 있다. 매번 성벽 멀리를 바라보는 것도 그 결연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그 3년간 세실은 결연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에트와르 세실의 길잡이는 여전히 에이드리언이었다. 에트와르와 길잡이가 멀리 떨어져 만나지 못할 때의 결연은 심리적 상황의 영향을 받지만 거꾸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심리적 관계가 굳어져 결연이 유지된다는 연구도 있었다. 하여간 특수기사단에 근무하는 동안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학당 다닐 때 못지 않게 열심히 공부한 덕에 아직도 그런 연구 내용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달짝지근하게 입에 붙는 술을 홀짝이며 에이드리언은 말을 이었다.


 “단장님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미로 전해주신 거라더군. 그리고 결연을 끊을 거라면 확실하게 하는 것도 좋을 거라며. 3년이 되었으니 그 뒤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것도 괜찮지 않냐고.”
 “괜찮아?”


 제랄드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에이드리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아. 특수기사단과 여기는 소속도 다르니 뭐라 훼방도 못 놓을 테고. 그걸 허용할 단장님도 아니고. 솔직히 다시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 그 때의 감정이 연애 감정이 맞았나 궁금하기도 하고, 어떻게 바뀌었을까 생각도 하고.”


 제랄드는 한숨과 함께 손을 뻗어 에이드리언의 머리를 부들고는 마사지를 해주었다.


 “나랑 크기는 비슷한 이 머리통에 뭘 그렇게 많이 담고 돌리냐.”
 “뭔 소리야, 내가 더 작지.”


 에이드리언의 대꾸에 둘은 마주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잦아들 때쯤 에이드리언은 생각난 듯이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올 때쯤이면 부단장도 복귀할 테니까 나보고 방문하는 동안 임시로 그 사람의 부관을 맡으라더군. 이번 방문은 공식적인 방문이라기보다는 업무 교류 차원이라 전속부관이 안 따라 온대.”
 “그럼 말이 부관이지 뒤치닥… 그렇다면 그 사람이랑 계속 마주쳐야 한다는 거 아냐.”


 군사 기밀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이야기다보니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그런 거지.”
 “그렇다보니 괜히 감상에 잠겨서 탑에 올라 저 멀리를 바라보고 있었던 거고.”
 “내가 한 감수성 하잖냐.”


 그런 감상에 잠긴 것만은 아니었지만 가볍게 대꾸하는 에이드리언을 보고, 제랄드는 저리 치우라면서 에이드리언의 머리를 저 멀리로 밀어냈다. 장난과도 같은 손놀림에 에이드리언은 힘없이 쓰러지는 척하며 바에 엎어져 웃었다.


 “그래서 이렇게 술 마시는 거고?”
 “그래 봐야 취하지도 않아.”
 “술이 아깝다 야.”


 제랄드는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술고래에 말술인 친구를 보고 불평했다. 하지만 술고래에 말술이기 때문에 매번 기사단 회식 때마다 뒤처리를 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저 아까보다는 조금 분위기가 밝아졌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래도 말야. 지금 생각하면 별로,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긴 해. 만나 봐야 알겠지만. 또 결연이 어떻게 영향을 줄지도 봐야 아는 거고.”
 “난 이번에 처음 만나는 거니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걸.”


 제랄드는 잔에 남은 술을 마저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두 달 뒤, 제랄드는 말로만 듣던 중앙군 소속 특수기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세실 패러코트를 볼 수 있었다. 주변에서 소리 없이 속닥이는 것처럼 패러코트 단장은 상당한 미인이었다. 어깨선에 찰랑 거리게 닿는 검은 머리칼은 살짝 갈색 빛이 돌았고, 눈은 그것보다 조금 밝았다. 피부색은 특별히 하얗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런 평범한 색들이 평범한 외모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색은 평범하지만 외모는 굉장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면서도 얼핏 보기에는 여리기도 한,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인이었다.


 북부군 소속 기사들은 특수기사단을 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인 사람도 많다보니 단장인 세실 패러코트를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어서, 다들 직함에 놀라고, 나이가 생각 외로 어린 것에 놀라며, 외모를 보고 놀랐다. 하지만 패러코트의 2년 후배라고 하는 부단장 마리 비블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경례를 하며 패러코트를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단장님.”
 “오랜만이군. 졸업 이후로는 처음이던가?”
 “그럴 겁니다.”


 약간의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뒤에 비블린은 뒤에 서 있던 기사, 에이드리언을 소개했다. 에이드리언은 무덤덤한 얼굴로 경례를 하고 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앞으로 옮겨 안았다. 이번 방문 동안의 일정과 관련된 브리핑 자료였다.


 “에이드리언은 설마 기억하시겠지요?”


 약간 웃음기 어린 말투에 세실은 아주 조금, 옅게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은 거의 눈치 채지 못할 정도지만 자주 보았던 얼굴이 그렇게 변했다는 점에 에이드리언은 아주 조금 서운했고 조금 안도했다. 시간은 사람이 바뀌는 데 충분한 이유가 되는 모양이다.



 “술이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그것도 좋군. 하지만 술 잘하는 편은 아니라고 기억하는데.”


 세실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에이드리언은 가볍게 웃었다.


 “집에서라면 괜찮습니다. 밖에서는 취하기 싫어서 별로 마시지 않았으니까요.”
 “집으로?”


 술집이 아니라 집으로 초대했다는 것에 놀란 모양이다. 하지만 별 의미는 없다.


 “밖에 나와서 술 마시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임시 전속부관이라지만 일개 평기사인 제가 단장님과 같이 술 마시는 모습을 보여 구설수에 오르는 것도 내키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제가 단장님의 길잡이라는 것을 모르니까요. 거기에 집에 술도 있고 술안주 거리도 그럭저럭 있으니 편하게 마시는 것이 좋지요. 술에 취해도 집까지 더 찾아갈 필요도 없고요.”


 그래서 더 빨리 취한다고 덧붙이자 세실이 피식 웃었다. 결연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 웃는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술렁거렸다. 답은 대강 나왔다. 다시 보면 알 것 같았지만 지금의 얼굴을 보면서 더욱 확실하게 깨달았다.


 “예전보다 감정 표현이 많아지신 것 같군요.”
 “그런가.”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예전보다 표정이 더 없어졌다고 들었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그 자세한 의미는 다음에 물어보면 된다고 미뤄두고, 에이드리언은 앞장서서 집으로 향했다.



 종종 생각하지만, 집은 소중하다. 안식처이자 피난처인 공간이다. 그건 어머니와 헤어져 복지시설에 있는 동안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자신을 위한 작은 공간 하나 얻지 못하던 그 때는 정말로 힘들었다. 아카데미에 들어가 기숙사 생활을 하는 동안은 그래도 자신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곳이 있었지만, 정주할 곳은 아니었다.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순간 그곳을 나와야 한다. 그 때문에 에이드리언은 졸업하자마자 취직하면서 집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다. 수도의 집값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어서 절약하고 또 절약했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더 이상 수도에서 지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람일이란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니, 여유자금은 떼어놓고 적당한 가격으로 집을 구입했다. 이것이 첫 집이라 생각하니 더 애틋한 마음에 신경 써 고른 곳이 여기였다. 무엇보다 욕실 하나, 침실 두 개, 거실 겸 식당 하나, 부엌 하나가 있는 집이 이 정도 가격이라면 수도에서는 꿈꿀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전출 온 지 반년 만에 마련한 집은 이제는 익숙하고 또 아늑했다.


 “의외로군.”
 “어떤 부분이요?”


 혼잣말 같았지만 무심코 이유를 물었다. 에이드리언은 괜히 물었나 싶었지만 잠시 말을 고르던 세실은 예상했던 것보다 깔끔하고 온기가 돈다고 대답했다.


 “같이 살 때도 이정도로 정리는 하고 살았는 걸요.”
 “하긴.”


 동거하던 당시에는 같이 근무를 하지만 업무 시간은 에이드리언이 조금 더 길었다. 회의 등으로 초과근무를 하는 일이 많아 에이드리언이 집안일을 조금 더 많이 했다. 어차피 에이드리언도 혼자서 집안일을 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하고 전문가를 써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청소와 음식 등을 맡겼기 때문에 일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하기야 일하는 다른 사람이 있으니 단정한 집안을 유지하는 것은 그 덕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에이드리언은 생각을 거기서 끊었다. 오랜만의 인연이고 끊어지지 않은 사람을 만나다보니 계속 생각만 많다.


 “곧 준비하겠습니다.”


 손님을 거실로 안내하고 침실로 들어간 에이드리언은 제복을 벗어 걸어두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무래도 손님이다 보니 평소 입는 것처럼 잠옷을 입고 나올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으시겠습니까?”


 거실로 도로 나오니 세실은 거실에 연결된 베란다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높은 층이라 야경이 좋은 편이었다.


 “갈아 입을 만한 옷이 있나?”
 “형이 두고 간 옷도 있고, 제랄드가 두고 간 옷도 있고, 제 옷도 있습니다. 사이즈는 아마 제 옷이 제일 잘 맞을 겁니다.”


 에이드리언이나 세실이나 체격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세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에이드리언은 갈아입을 평상복과 제복을 걸어둘 옷걸이를 건넸다. 그리고 자신은 부엌으로 들어가 술안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세실이 옷을 갈아입고 제복을 잘 정리해서 거실 한 쪽의 옷걸이에 걸어 두었을 때, 에이드리언이 맥주와 마른 안주, 그 외 안주 거리를 이것저것 들고 왔다. 부엌에서 소리가 계속 들린다 싶었더니 고구마전과 애호박전, 두부김치가 함께 나왔다.


 “맥주에는 안 어울리는 안주 아닌가?”
 “뭐든 배를 채울 수 있으면 상관 없지요.”


 주로 독한 술을 마실 때 어울리는 안주들이었지만 에이드리언은 그리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차갑게 식힌 맥주의 뚜껑을 열고 건배를 한 뒤 한 모금 마시자, 싸한 기포들이 목구멍을 자극했다.


 “역시 북쪽이군. 보리나 밀은 남쪽보다는 북쪽에서 주로 생산되니까.”


 세실의 말대로 레사비크 근처에는 유명한 맥주 양조장들이 많았다. 수도에 있을 때는 술을 자주 마시진 않았지만 여기 와서는 일주일에 몇 번씩 맥주를 마시다보니 안 그래도 말술인 주량이 더 늘었다. 제랄드랑 마시는 일은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정도고, 회식도 근무를 핑계로 자주 빠졌다. 그래도 몇 번에 한 번 정도는 회식을 하지만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는 아니라 그렇게 힘들지 않다. 대신 아침형 인간이라 아침 근무가 많다는 이유로 늦게까지 남아 있는 일은 드물었다. 술이 약하다는 핑계로 예전에는 자주 회식을 빠지거나 일찌감치 구석에서 잠들었지만 술이 약하다기보다는 생활습관의 문제였고, 제랄드와 마음 놓고 마실 때는 술고래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여간 회식 때는 술을 잘 안마시고 버티다보니 빠르게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는 종종 뒤처리를 맡기도 했다. 회식이 늦으면 대개 한 구석에서 잠이 들었다가 나중에 누군가가 깨우면 뒷정리를 도와주고 집으로 들어가곤 했으니.


 이런 세세한 이야기까지 세실 앞에서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예전에는 존경하는 상관, 그 다음은 무서운 상관, 그리고 에트와르. 그 다음은… 아니, 거기까지 생각할 것 없이 굉장히 어려운 존재였다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볼 때는 길잡이를 보호하겠다며 실력 있는 부하의 그 앞길을 막아버린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으니, 험악한 관계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또 그게 아주 틀린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그렇지.”


 에이드리언의 말에 세실이 수긍했다.


 “길잡이를 보호하겠다는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에 휘둘려 더 많은 경험을 얻어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기사의 손발을 꽁꽁 묶어 놓은 셈이니까.”


 그런 집착이 별과 길잡이의 관계에서인지, 아니면 연인관계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당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동거를 하고 이미 육체적인 관계까지 넘어선 관계였고, 길잡이는 아직 초보였던 데다 사회경험도 적었다. 사회경험이 많았다면 관계를 돌이키거나 바꿀 수 있는 방안을 떠올렸겠지만 에이드리언은 일방적인 감정을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것이 잘못된 방식이고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은 동료들과의 관계가 거의 끊어지고 고립된 뒤에야 깨달았다. 극단적으로 상황이 흘러 간 건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길잡이와, 관계에 미숙했던 에트와르의 문제였다.


 ‘그리고 사실상 그런 사태를 방관한 팀원들의 문제도 있었고.’


 사태가 불거진 것은 에이드리언의 친형이자 파견 팀원인 브리앙의 강력한 항의 때문이었다. 브리앙이 직무연수를 받느라 외교부로 복귀한 사이에 에이드리언은 업무에서 지속적으로 배제되었고 다른 팀원들과의 대화도 거의 차단되다시피 했다. 브리앙은 재파견 후 상황을 파악하고는 앞선 업무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1차로 당사자들 앞에서 지적했으며 팀원과 에트와르 팀장, 길잡이의 동의를 얻어 상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길잡이도 전출을 신청했다.


 “그래서 형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건가요.”


 상황이 종료되고 1년이 채 되기 전, 세실은 브리앙에게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고 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도 함께 전해달라고 했다고. 브리앙과 에이드리언이 형제지간인 건 문제제기 하던 그 날에야 다들 알았을 것이니 둘 사이의 기묘한 친밀감도 그 때서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에이드리언의 질문에 세실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하지. 만약 거기서 제동을 걸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니까. 너를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최악의 상황도 생각해봤고.”
 “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지요. 형이 없었다면 진짜로 놓았을 거라고 가끔 생각하니까요.”


 에이드리언의 대답에 세실이 움찔거렸다. 상상하는 것과 그걸 직접적으로 말로 듣는 것은 다른 모양이다.


 “그럼 그 뒤에는 어떻게 가이딩 받으셨나요?”


 의외로 스스럼없이 질문이 나왔다. 입 밖에 내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술기운을 빌리니 생각보다 쉬웠다. 대답하는 세실 역시 별다른 동요 없이 답했다.


 “본가로 들어갔어. 누나 길잡이가 상성은 그럭저럭 맞으니까, 100%는 아니더라도 얼마간은 도움이 되었지. 나머지는 약으로.”


 세실의 누나가 엘렉트라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북부 기사단으로 발령 내는 것을 허가한 당사자라는 것도 들은 적 있다. 업무 인수인계를 마치고 가기 전, 형의 소개로 만났고 그 때 그런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것 같다.


 “프레데릭이라고, 현 인사처 부부장이야. 누나 바로 아래. 같은 사무실을 쓰고만 있어도 가이딩에는 문제가 없다는 걸 증명하더군.”


 긴장도가 높은 직종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낮은 업무담당자는 직접적인 가이딩이 없어도 괜찮다는 걸 실제 연구 결과로도 발표하도록 도와준 이가 엘렉트라였다. 동생인 세실이 오랫동안 길잡이가 없어 고생했기 때문인지, 엘렉트라는 에트와르와 길잡이의 관계에 대한 양적 질적 연구를 지원하는 펀드를 꾸려왔다. 가문에서 운영하는 재단을 통하기도 하고, 제국내 공적 연구 재단을 통해 지원하기도 했다. 사적 재단으로 시작해 공직에 올라서는 강력하게 공적 연구를 주장하여 에트와르와 길잡이들의 처우를 개선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내일은 근무가 없나?”


 상 위에 놓인 것은 빈 맥주병 여섯 개. 사이좋게 반씩 나눠 마셨으니 충분히 들어간 셈이다. 거기에 강도를 높인다며 집에 보관하고 있던 위스키도 살짝 섞었으니 도수는 꽤 높았다.


 “정상 출근입니다. 슬슬 정리해야겠군요. 침대는 하나지만 주무시고 가시겠습니까?”


 절대로 저 입에서 자고 가라는 말이 나올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세실은 병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에이드리언을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던 에이드리언은 그 시선을 느끼고 마주 보았다. 그러다가 왜 세실이 자신을 쳐다보는지 알아채고는 웃었다.


 “제게는 이미 늦은 시간이라 그렇게 말씀 드렸는데. 편한 대로 하셔도 됩니다. 바닥에서 주무시기에는 허리가 아플 테고, 침대가 작긴 하지만 같이 잔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마지막은 거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말이었다.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 같은 톤에 세실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마지막 잔에 남아 있던 위스키를 왕창 부은 탓일까. 자리에서 일어나면 시찰단 숙소까지 제대로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거기에 쐐기를 박듯 에이드리언이 한 마디 덧붙였다.


 “가이딩도 해드립니다.”


 선택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일어난다면 가기 전 약을 먹어야 하던 터라 가이딩도 해준다는 말에 생각하기도 전에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럼 여기서 자고 가지.”
 “칫솔을 챙겨 드리지요.”


 에이드리언은 씩 웃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전광석화처럼 양치질을 하고 나온 그의 손에는 새 칫솔이 들려 있었다. 그걸 받아 들고 욕실로 들어가자, 그 사이 술상을 빠른 속도로 치우는 것이 보였다. 느긋하게 양치를 하고, 세수까지 마치고 나오자 이미 거실은 아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고 설거지도 모두 끝낸 뒤였다. 정리하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생각했는데 거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뒤에는 침실에서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이는 잠옷을 건네주었다.


 “편한 옷이라 해도 잠옷으로 갈아 입으시는 것이 편할 겁니다.”


 자기 전에 어떤 모습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모를 리가 없다. 바른 생활 사나이인 세실은 에이드리언과 관계를 가지고 난 뒤에도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잠이 들었으니까. 세실은 묵묵히 잠옷을 받아들고 에이드리언이 자리를 비켜주기를 기다렸지만 에이드리언은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창문을 도로 닫고 커튼을 친 뒤, 아무렇지도 않게 상의를 벗었다. 당황해서 눈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르겠다며 허둥대는 사이에 에이드리언은 잠옷 상의를 입고, 마찬가지로 바지도 벗고 난 뒤 잠옷 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옷을 들고 거실의 옷걸이에 걸어 놓았다.


 “부끄러워 하지 마시고 갈아 입으시고요.”


 놀리는 말투에 울컥 화가 난 세실은 평상심을 가장하고 잠옷으로 갈아 입고는 마찬가지로 옷을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그리고 이것은 2년 만의 동침이었다. 단어 그대로 같은 잠자리에 들었던 것뿐이지만, 실낱같은 기대감을 품고 머나먼 북쪽 땅 끝자락까지 찾아온 세실에게는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시절, 그리고 연애를 시작하려던 그 때처럼 세실은 에이드리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침대 길이가 아슬아슬해서 몸은 구부려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 세실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평온한 가이딩 속에서 잠들었다.


 후임들을 위해서, 그리고 자원자가 없는 레사비크의 북부 방위사령부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세실 패러코트가 북부 방위사령부로 전출 신청을 넣었다는 이야기는 수도 내에 파다하게 소문이 퍼졌다. 일설에 의하면 어느 유부녀와의 관계가 남편 때문에 파탄이 났기 때문에 전출하는 것이라 하고, 또 다른 설에 의하면 그 직전에 벌어진 극비 작전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현직에서 물러나 북쪽에 요양 가는 형태가 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파고 들면 둘 다 해당되지 않는 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특수기사단의 패러코트 부단장이 목석에 망부석이라는 것은 군내에서 정설로 굳어져 있었으며, 최근에 입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겨울이 긴 북쪽이 아니라 수도 남부 쪽으로 가거나 아예 휴직을 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실상 부상이라는 것도 아주 심하지는 않았으며, 옆구리를 조금 깊게 베이긴 했지만 정양만 잘 하면 후유증은 없을 것이라 했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왜 패러코트가 북쪽으로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입막음 당할 터이니까.



 “그래서 저한테 허락을 받으러 온 겁니까.”


 무슨 일인지, 세실이 긴히 할 말이 있어 집에 찾아오겠다고 하기에 허락했더니만 나주산 배를 한 상자 들고 왔다. 무언가를 사들고 올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사들고 와서 하는 말이 에이드리언에게 다시 한 번 결연을 신청하러 가겠다는 거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도로테아는 뱃속의 아기가 염려될 정도로 폭소를 터뜨렸고, 브리앙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치솟는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말을 건넸다. 세실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라기보다는 통보로 들리는데.”


 같은 부서에, 상관과 부하 관계이지만 사석에서는 앙숙지간이었다. 아니, 앙숙이라면 볼 때마다 서로 물어 뜯으려 하는 관계이니 조금 다르다. 현재 둘의 사이는 서로를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관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에이드리언의 특수기사단 발령 초기에 세실이 에이드리언과 브리앙이 깊은 관계라고 의심한데서 비롯되었으며, 에이드리언과 브리앙이 사이좋은 형제관계를 회복한데서 1차로 강화되었고, 에이드리언에 대한 세실의 태도가 비뚤어지면서는 2차로 강화되었으며, 에이드리언이 전출신청을 낸 3년 반 전에는 최악의 상태로 악화되었다. 그럼에도 브리앙이 세실의 방문을 허락한 것은 최근에 에이드리언이 보낸 편지에서 세실이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다는 것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용이 없었다면 아무리 같은 부서에서 오래 근무했고, 브리앙이 아주 가끔 세실의 별지기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관계라 하더라도 사적인 방문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통보라고는 해도 결정권을 쥐고 있는 건 레몽이잖아요.”


 에이드리언을 레몽이라 불러도 되는지 어떤지, 하여간 도로테아는 에이드리언을 레몽이라 부르고 있었고 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도로테아만 쓰는 별칭이었다.


 “일단 관사로 들어가긴 하겠지만, 가능하다면 에이드리언의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한숨을 내쉬며 세실이 말했다. 그 얼굴이 참으로 우울해 보이는 것이, 브리앙은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꾹꾹 눌러 참았다. 사이가 안 좋은 만큼 저런 모습을 보니 더욱 더 고소하다.


 “그래서 허락할거야?”


 동갑내기 부부는 앞에 있는 손님에게 다 들리게 속닥거렸다.


 “아니, 뭐. 내가 허락하고 말고 자시고, 본인이 좋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냐?”
 “의외네. 난 반대할 거라 생각했는데.”
 “본인의 의지라니까. 본인이 좋다고 하면 반대할 생각 없어. 다만, 이 일로 에이드가 상처를 받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기사단 서열 3위답게 서늘한 표정을 하는 순간 주변의 기온이 10도쯤 내려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싹해지는 기분에 도로테아는 소름이 돋은 팔위를 열심히 문질렀다. 그걸 눈치챘는지 브리앙은 미안한 얼굴로 아내의 팔 위를 살살 쓸어 주었다. 그 눈꼴신 모습을 직격으로 보고 있던 세실은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눈앞의 커플은 그런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다는 이야기까지는 들었는데 용서는 받으셨습니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용서를 빌었다면 용서를 받아야 결연을 하든 말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고 도로테아가 세실을 바라보자 세실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흔히 볼 수 없는, 아니 드물다 못해 보기가 아주 어려운 모습에 도로테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편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이미 브리앙 역시 침울해하는 세실의 모습에 아주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세실은 마치, 소금을 팍팍 뿌려 절인 파처럼 풀이 팍 죽어있었다. 한창 나이의 부단장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이딩을 받지 않아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신경질적이거나 날 선 모습을 보였지 저렇게 늘어진 모습이지는 않았다. 희귀한 반응을 보고 놀란 마음이 가라앉자 그 다음에는 폭소가 치고 올라오려는 탓에 부부는 억지로 눌러 가라앉혔다.


 “부단장은 포커페이스는 되지만 연기는 안 돼. 그건 내가 알아.”


 결정하는 것은 에이드리언이니 받아줄 때까지 알아서 빌고 열심히 깨지라며 세실을 돌려보낸 뒤, 세실이 들고 온 배를 잘라 깎으며 브리앙이 말했다.


 “안 돼?”
 “아니, 못하는 거지. 얼굴 표정 감추는 거야 평소 표정대로 굳히고 있으면 되지만, 자신의 감정을 바꿔서 표현한다거나 하는 건 안 되는 모양이더라고. 그리고 오래 같이 근무하면 그럭저럭 얼굴 표정도 읽을 수 있는데, 특수기사단은 오래 근무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읽을 수 있는 사람도 몇 안 돼.”


 예쁘게 깎은 배를 포크로 찍어 건네주나 도로테아가 고맙다면서 한 입 덥석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다른 쪽을 브리앙의 입 가까이 대어 베어 물게 도왔다.


 “맛있다.”


 평소에 사이좋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북쪽으로 간다면 한동안은 볼 일이 많지 않을 테고, 업무적으로 만나 데면데면하던 사이가 확 틀어진 것은 에트와르와 길잡이의 보호자라는 사적 관계와, 뒤 이어진 업무적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니 사적으로 시작해 공적으로도 에트와르와 길잡이의 관계가 개선된다면 에트와르와 길잡이의 형이라는 관계도 보통 수준까지는 올라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에이드리언이 세실을 용서하고 다시 받아준다, 즉 다시 결연한다는 전제하의 이야기다. 맨 앞의 전제인 용서한다는 관문을 넘지 못한다면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인 관계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도로테아와 브리앙의 대화는 그런 결론으로 끝맺었다.
 다행히 그 얼마 뒤에 에이드리언은 평소와 같은 안부편지에 슬쩍 세실과 동거한다는 내용을 흘려 적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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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분석 글은 이후에.'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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