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울 뻔했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는데, 감정 기복이 심한 때, 울고 싶은 때 펴들었다가는 굵은 눈물방물을 뚝뚝뚝 흘릴 겁니다.


매번 소개할 때마다 미리 적어두지만, BL입니다. 그리고 판타지입니다. 조아라에서 연재되었다가 완결된 뒤 타 플랫폼에서 연재되었고 종이책으로 나왔습니다. 전자책 발행 예정도 있으니 전자책으로 보실 분은 조금 더 기다리시면 됩니다. 19금 외전은 별도로 나올 모양이고요.

이 이야기의 시작은 어쩌면 전작인 『개 한 마리와 두 남자』인지도 모릅니다. 거기도 영물 고양이 한 마리가 나오니까요. 이 판타지 세계도 그런 고양이들이 존재합니다.



시작은 어느 꼬마를 주운 할아버지가 엽니다. 눈꽃마을에서 오동나무 책방을 운영하는 벤자민은 어쩌면 제페토라고 해도 잘 어울렸을지 모릅니다. 벤, 벤지라는 별칭의 할아버지는 몸이 약한 손자와 살다가 어느 해 손자마저도 잃습니다. 아들도 일찍 보내고 남은 가족이라고는 손자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잃습니다. 그러다 그 해 겨울, 저 편으로 간 손자의 인도로 또 다른 손자를 얻습니다.

꼬마는 처음부터 가족이 없었습니다. 이름도 없던 고아 소년이었고 어떻게 흘러 흘러 눈꽃 마을에 들어왔다가 골목 저 편에서 눈과 함께 죽어가던 찰나였습니다. 벤자민 할아버지가 반쯤은 충동적으로 아이를 들어 구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고아소년을 극진히 간호하고 살려냅니다. 따뜻한 불가라는 것을 처음으로 누리고 가져본 그 때의 묘사를 보고는 울먹울먹했고요.... (1차)


소년은 스엔이라는 이름을 받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할아버지와 가족이 됩니다. 스엔도 몸이 약해 겨울만 되면 고생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의 친손자보다는 건강 상태가 좋았던 모양입니다. 고서 수리도 배우고 책 관리도 배우고 여러가지의 모든 것들을 배워 나가며 할아버지의 헌책방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책방에서 만납니다.

고양이가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할아버지가 들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썩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스엔을 웃게 만드는 고양이를 쫓아낼 만큼 박정하진 않았고, 고양이는 또 제 임무를 다하는 똑똑한 녀석이었습니다. 책방 여기저기에 숨어 있던 쥐구멍을 발견하고 쥐를 해치웠으니까요. 그렇게 고양이가 한 가족이 됩니다. 워낙 말을 잘 알아듣는 녀석이라 할아버지는 첫 번째 삶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벤 할아버지가 그 할머니에게 들었듯, 고양이는 아홉 번을 산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물론 진짜인지 아닌지 모를 그럴 전설입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마차에 치일 뻔한 스엔 대신 죽습니다. 심부름을 다녀오던 그 날, 얼음낀 길에서 미끄러진 마차는 스엔과 고양이를 덮칩니다. 그 직전 고양이는 노란 눈, 검은 머리칼의 청년이 되어 스엔을 밀쳐냅니다. 자리에 남은 것은 고양이었지만, 스엔은 그 낯선 청년이 '기다려'라고 말하는 입모양을 분명 보았습니다. 그 상황이 어찌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고양이는 죽었고, 스엔은 마차에 치일뻔한 충격까지 겹쳐 오랫동안 앓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덩달아 같이 울고....(2차)


할아버지도 천수를 다하고 편히 눈을 감은 뒤, 스엔은 혼자서 오동나무 책방을 꾸려갑니다. 여러 책들을 받아 수리하기도 하고, 판매하기도 하고. 작은 마을이지만 그래도 외부에서 고서 수리를 종종 맡겨오는 덕에 일감은 이어집니다. 할아버지가 해오던 일이었지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나고 그 고양이가 스엔의 뒤를 쫓아 옵니다. 그것도 인간으로 변해서 말입니다.



여기까지가 딱 50쪽까지의 이야기군요. 앞 이야기가 긴 것은 그 뒤의 이야기는 스엔이 이름을 준 고양이, 노이와 함께 하며 일어난 일상적인 이야기라 그렇습니다. 책 표지의 고양이는 노이입니다. 처음 만났던 검은 고양이가 아니라, 다시 돌아온 두 번째 고양이. 노이란 이름을 받은 것도 두 번째 고양이로 만난 뒤였습니다. 그 전에는 특별히 이름이 없었고요. 짙은 회색의 풍성한 털에, 검은색이 퍼지듯한, 하지만 발은 흰색인. 두터운 꼬리를 가진 고양이. 머릿속에서 그려내다보면 괜히 회색 털 빛의 빌헬름님이 떠오르지만 제쳐둡니다. 노이의 성격은 그분과 전혀 다르니까요.

하여간 표지의 분위기는 책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았습니다. 크흑. 전자책의 BL소설 표지만 보다가 이런 표지를 보니 진짜 감격의 눈물이 넘쳐 흐르는게... 딱 취향입니다. 살짝 보일듯 말듯하게 책 상단 면에 양각으로 올라온 눈결정까지도 말입니다. 확실히 시크노벨(Chic Novel)의 표지가 좋아요. 시크노벨 표지 중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아마 없었던 것 같은 기억이..? 그러고 보면 살라후딘을 비롯해 상당히 많은 책이 시크노벨 책입니다. 이것도 언제 따로 모아서 찍어보죠.


본론으로 돌아가 스엔은 노이와 함께 살면서 다른 고양이들도 차근히 만납니다. 노이 때문에 하르펜이라는 이름의 전령 고양이도 알게 되었고, 그 하르펜덕에 고양이들이 오동나무 책방에 모입니다. 여러 번 삶을 살면서 말을 할 줄 아는 고양이는 생각보다 많았고, 그런 고양이들은 책방에서 스엔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책 읽는 밤을 통해 고양이들은 점차 성장하고, 그리고 정체되었던 고양이들의 세계 자체가 바뀝니다. 움직이기 시작하지요. 고양이 한 마리를 사랑했을 뿐이지만 그 때문에 다른 고양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주고 그걸 통해 또 새로운 것을 가르치며 고양이들에게 앎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 결과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는 직접 보시면 됩니다.



독특한 소설입니다. 동화와도 같은 잔잔한 판타지소설이지만 노이와 스엔의 관계는 분명 BL소설답습니다. 그게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흘러갈뿐입니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삶을 스엔과 함께 보낸 노이는 그 다음의 삶도 스엔과 함께 할 것을 결정합니다. 노이의 여덟 번째 삶은 의도치 않았지만 정말로 스엔으로 가득찼고, 그게 아마 노이 삶의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아홉 번째 삶을 보면 더 그렇고요. 나중에 누가 이어받을지는 알지 못하지만 지금 스엔과 함께 지내는 다른 고양이 중 누군가가, 그리고 다른 고양이들이 대대로, 그게 아니라면 어떤 인간이 오동나무 책방을 이어 가며 고양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그러니까 고양이와 고양이와 고양이로 가득 찬 잔잔한 판타지소설이고, 씬은 나중에 전자책으로만 발행된다 했으니 안심하고 읽으셔도 됩니다. 이걸 도서관에 신청했을 때 제대로 들어올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하지만 으으음.. 넣어볼까요......



밤바담. 『고양이는 아홉 번을 산다』. 시크노블(동아), 2017, 12800원.


3차로 어디서 울었는지는 일부러 적지 않았습니다. 14장에서 울뻔 했고 이유를 적으면 내용폭로가 되거든요. 하여간 눈물샘 약하시면 미리 손수건 준비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조아라에서 연재할 때부터 출간 기다렸는데 종이책 붙들고는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음훗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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