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덧붙임 제목이 길지요. 하지만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라 생각해 넣었습니다. 기도문과 같기도 하지만 실제 라파엘레가 신에게 가장 간절함을 바라던 그 때 올린 기도였지요. 원래의 기도문과는 다른 모양이지만 그야말로 신에게 구원을 바라는 장면에서 가장 깊은 마음을 끌어 올려 담아낸 기도라, 뇌리에 깊게 남았습니다.


미리 키워드를 밝혀야겠네요. BL이고 19금입니다. 거기에 떡대수 미인공입니다. 개인적으로 떡대수는 취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건 괜찮더라고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작가의 떡대수는 괜찮습니다. 앞서 『Three days』도 무척 재미있게 보았으니까요. 아마 밸런스-균형의 문제일 겁니다.


글솜씨가 부족해서 그 균형이 무엇인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아르키유도 그렇지만 라파엘레도 소설 속에서 설정된 것과 다른 모습은 상상이 안됩니다. 둘 다 기사이며, 사선을 헤쳐나온 백전노장입니다. 노장이라기에는 나이가 어리지만 겪은 전투를 생각하면 실력자들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보통은 공이 되기 마련이지만 성격이 묘하게 내어주는 타입인데다, 라파엘레는 또 에단의 마음이 육욕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보니 에단이 공일수밖에 없지요.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에단이 공일거라 생각은 못하는 모양입니다만... 아는 사람은 또 아는 이야기입니다. 하여간 자발적 SM(...)은 아니며, 피학적 성격이 있긴 하지만 그게 성벽에서 연유한 것은 아닙니다. '꿈꿔왔던 나~의 소중한~' 그런 류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겁니다. 성장 환경 등에서 자아존중감이 낮거나, 지나치게 이타적인 성격으로 자라왔기에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당연한 상황인 겁니다.

그렇다보니 종종 BL에서 보이는 것처럼 수를 여성으로 대치해도 이야기가 통한다거나, 외모를 연약하게 또는 호리호리하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게 불가능한 소설, 그리고 그게 자연스러운 소설이라 떡대수라 해도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설명은 사족인가요. 흠흠.


소설의 시작은 제8성기사단장인 라파엘레와 에단의 일상적인 마물퇴치 원정에서 시작됩니다.

제8성기사단은 기사단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성기사단 중에서도 평민들이 주로 들어가 활동하는 기사단입니다. 주 임무는 마물퇴치. 마물퇴치 업무는 가장 지저분하고 하기 싫은 것이라, 8개의 성기사단 중 제8성기사단이 떠맡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귀족들은 여기 들어가는 것을 피했고, 자연스레 평민들이 주로 모인 겁니다. 마물퇴치를 하는 도중에 치욕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일도 많으니 그런 걸겁니다.

에단은 후작가의 차남임에도 제1성기사단이 아니라 제8성기사단에 들어가겠다고 자원합니다. 에단이 자원한 이유는 제8성기사단의 단장, 라파엘레를 경애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감정은 자연스럽게 에로스적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러한 에단에게, 라파엘레는 '그것은 육욕이다'라고 단정하며 육욕이 사라질 때까지 몸을 내주겠다고 대응합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뒤가 소설의 1장입니다.


성기사단의 존재나, 일곱 가지 죄악에 맞춰 나타나는 마물이나, 마물과의 상성 문제 등을 보면 잘 만든 판타지소설입니다. 그리고 그걸 이끌어 나가는 건 어떻게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가의 문제이지요.

마물들의 출현과 에단의 본가 이야기, 그리고 기사단을 둘러싼 여러 사건들은 라파엘레와 에단의 관계 발전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소설 전체는 에단의 일방적인 흠모와 애정이 어떻게 라파엘레를 일깨우느냐를 설명하는 걸로 보입니다. 에단의 감정은 일방적이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이미 젖은 상태였고, 매몰차게 쫓아냈지만 그 뒤에 거의 폐인 상태가 된 라파엘레나, 잃기 직전에서야 그 중요함을 깨달았다는 상황 설정은 클리셰와도 같지만 절정을 아주 잘 끌어냈습니다. 음. 뭐라해도 몸으로 확인하는 것이 빠르다는 것도 확실히 클리셰..=ㅁ=

그럼에도 7장 오만(Superbia)은 매우 좋아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습니다. 앞서도 몇 번 비슷한 상황이 나오지만 마물화가 던전 공략이라는 것도 상당히 흥미롭지요. 왠지 연재 도중 언급되었던 게임 『다키스트 던전』이 떠오르는군요.

하여간 사랑을 깨닫고 상대방을 구한다는 이야기가 더 나아가 자신을 던져 상대를 구한다는 것, 교리에 가장 절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해피엔딩이니 안심하고 보셔도 됩니다. 최강 힐러가 던전에 먼저 들어와 있었거든요.


결국 이 소설은 제목에서 말하듯, '당신이 머무는 곳이야 말로 내가 머물 성역이었습니다.', '이제껏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안에 나의 신이 깃들어 있음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기사단에서 자라고 그 안에서만 생활하고 강햔 성력을 가져 두 쌍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라파엘레는 분명 강하고, 가장 성기사다운 인물일지 모르지만, 성직자의 사랑이 꼭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에단이 가르쳐 준 셈입니다. 에단이 라파엘레에게 말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신이 깃들어 있다'면 사람 속의 신을 찾는 것도 성직자로서 잘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분이 에단에게 확신시켜주고 등을 떠밀었지요.....



초안보다는 외전이 줄었지만  이 모든 것은 후작의 탓입니다. 후작이 등장하는 외전이 문제였다 들었는데, 다른 외전도 더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는 어린아이가 된 누구씨의 이야기가 조아라에서 연재중입니다. 누구씨 참 귀엽습니다. .. 물론 지나치게 어른스럽다는 점은 문제지만.

이 다음에 어떤 높으신 분이 제8기사단에 와서 벌어진다는 대소동도 궁금합니다만 언젠가 나올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이미누. 『생츄어리 1-4』. 마녀, 2017, 전권 12000원.


분량 때문인지 권마다 가격이 다릅니다. 1-2권이 3천원, 3권이 2500원, 외전인 4권인 3500원. 외전만 보신다면 4권을 구입하시면 됩니다.

2권 끝이 에단의 던전탐사, 3권 처음이 말타고 달려가는 라파엘레입니다. 연재분 보신분이라면 아시겠지요.'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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