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은 아니고, 그렇다고 퇴마록 같은 책도 아니지만 읽으면서 양쪽이 떠오른 건 소재 때문일 겁니다. 지박령이나 일본의 쓰쿠모가미(츠쿠모가미) 같은 느낌의 이형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특이하지요. 무협이 떠오른 것은 주인공이 이리깨지고 저리깨지면서 성장하여 결국 손에 들어온 기연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고, 퇴마록 스타일이라는 건 앞부분 초반이 뫼신 사냥꾼이라는 점에서 퇴마와 비슷해 보여 그럴 겁니다.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주 주인공은 세희입니다. 한세희. 세희는 여자에게 더 많이 쓰는 이름이기도 하고 꽤 익숙하다 생각해서 왜인가 곰곰이 따졌는데 4권 쯤에서 깨달았습니다.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난봉꾼, 한세건. 난봉꾼이라 붙이는 건 『월야환담채월야』 기준입니다. 광월야는 구입은 했는데 마지막 권 결말만 확인하고 내려 놓았거든요. 광월야의 주인공은 다른 인물이다보니 거기서는 좀 취급이..(하략) 하여간 월야채월의 한세건은 뫼신사냥꾼의 한세희와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여튼 배경 자체도 다르지요. 『뫼신사냥꾼』의 세계는 동혜라는 왕정국가를 중심으로 한 동양풍 판타지 세계관입니다. 읽다보면 동혜가 한국의 다른 모습이란 건 쉽게 깨달을 수 있겠더라고요. 물론 이웃국가도 나옵니다.


세계는 그렇고, 전체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뫼신사냥꾼이었던 한세희가 뫼신지기가 되고, 그리하여 사태를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한 뫼신잔치를 벌이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뫼신이 뭔가 하면 산신령으로도 종종 호칭하는 영물을 말합니다. 소설 속의 도깨비는 장난을 좋아하는 쓰쿠모가미에 가깝고, 뫼신은 뫼신적 특징을 타고나지 않으면 될 수 없습니다. 뫼신은 유전되지 않으며 뫼신의 자식은 평범한 동물입니다. 드물게 뫼신의 자식이 뫼신인 경우도 있지만 책 속에서도 한 손에 꼽을 정도만 등장합니다. 나오는 뫼신은 훨씬 많지요. 애초에 자식을 보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뫼신사냥꾼, 뫼신지기, 뫼신잔치가 차례로 1, 2, 3부의 제목입니다. 하지만 안심하시면 안됩니다. 세희가 완전히 성장하는 것은 결말에 가까울 때입니다. 1권 책 뒷면에 소개가 나와 있어 기대했던 버들은 의외로 성격 안 좋고 나쁘고 성장이 더 필요한 인물이더군요. 특히 과거나 초반 부분까지는 헛다리를 잘 짚어서 읽는 사람의 감정이입이 매우 어렵습니다. 세희도 성장에 시간이 걸리고, 버들도 그렇고. 네 편 내 편을 가리지 않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완성형이지 않으며, 완성형인 인물은 방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마지막에 한 방을 날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 한 방을 날리기 위해, 평범한 10명의 선수들은 미친듯이 뛰어 어시스트를 하는 거죠. 그러고 보니 축구와 닮았네요. 스트라이커는 완성형, 미드필더들은 성장하고는 있으나 능력부족, 그리고 능력은 있으나 그에 미치지 못하는 다른 선수들. 물론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피상적으로 가진 축구에 대한 정보로만 생각하는 겁니다.


등장인물은 내 편과 네 편을 합해 스물이 넘을 겁니다. 중간에 죽은 인물도 많고요. 죽음이 아쉬운 등장인물이 여럿 있지만 누군지는 입 다물겠습니다. 하지만 주연은 죽지 않으니 그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야기가 그물망처럼 퍼져 있고 등장인물들이 성장하는데 시간이 걸리며, 단독으로 대단한 힘을 가지는 것은 세희 한 명이고, 그나마도 완벽한 존재는 아닙니다. 초 절정 기재를 가지고 그걸 사용하는 것은 무협지에서처럼 맨 마지막의 결전에서만 입니다. 따라서 속 시원하고 가벼운 판타지소설을 원하신다면 도중에 포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조연들이 감칠맛을 더하고 특히 마음에 드는 등장인물이 여럿 있어 즐겁게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꼽는 장면은 용오름, 5권의 호랑이 관련 에피소드, 6권의 절규 장면입니다. 그래서인지 반농반진으로 이 소설 자체를 **과 &&이 사랑을 깨닫는 이야기로 보는 감상도 있더군요.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닐 겁니다. 게다가 충분히 여기저기에 밑밥을 깔았고요. **만큼이나 뛰어난 형제의 존재나, 그 형제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는 점도 그렇고요. 그리고 앞서 누군가는 다른 이들을 대상으로 말한 것이지만 '수컷끼리의 관계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고 했지요. 그러고 보면 이 소설은 종족을 초월한 사랑, 성별을 초월한 사랑이 여럿 나옵니다. 서로를 위해 희생만 하다가 무너진, 또는 무너질뻔한 사랑, 외사랑, 짝사랑, 자기애, 지켜주는 사랑 등등도 있고요. 곰씹어 볼수록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결말이 조금 아쉽습니다. 세희가 깨달음을 얻은 것은 좋지만 다른 리뷰에서 말한 것처럼 『하얀 늑대들』의 연장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보다 더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각각의 인물이 살아 있기는 하지만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네요. 그런 점에서 『하얀 늑대들』을 안 보고 본다면 만족도가 더 높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일부 인물들만 살아 있는 다른 소설과는 달리, 소설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붙어 있고 또 살아 있는 판타지소설은 오랜만에 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그런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매우 많으니까요.


마음에 들었던 장면 몇을 적어봅니다. 그 용오름과 5권, 6권의 대화들입니다. 쪽 수 표기를 했고 내용 폭로가 될 수 있으므로 읽으실 예정이라면 안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참, 꽉 닫힌 행복한 결말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제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각 장의 제목은 속담과 동요 가사 등을 살짝 변형했습니다. 예를 들어 4권 마지막 장의 제목은 '끝맺는 이야기. 동쪽에서 부는 바람 불길한 바람'입니다. '하~늘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의 패러디죠.



윤현승. 『뫼신사냥꾼』 1-6.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2013.



그리하여 결론. 책이 두꺼워 여섯 권 읽어내는 것이 시간은 걸리지만 읽은 보람이 있는 책. 좋아하는 것은 역시 호랑이입니다. 호랑이도 귀엽고 뒤에 나오는 강치도 좋아요! 게다가 바다표범이 아니라 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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