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이 책은 수컷의 육아를 다룹니다. 인간 수컷은 초반에 조금 나오지만 진화생물학적인 입장에서 언급됩니다. 그러니까 왜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었는가, 일부일처제와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난혼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등등을 읽기 쉽고 어렵지 않게 다룹니다. 실제 이야기는 이보다 더 깊고 깊겠지만 개념을 잡는데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하여간 인간수컷의 육아기보다는 동물의 육아기가 많습니다.



읽다가 깨달았는데 책에 소개된 것도 진화계통 수순입니다. 어류 수컷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이 양서류, 조류의 순입니다. 어류는 상당히 특이한 형태도 많더군요. 기억에 남는 건 역시 흰동가리입니다.


흰동가리는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말미잘 주변에 서식하는 물고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비스리움에서도 자주 보았군요. 하여간 흰동가리는 날 때는 모두 수컷이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번식기가 되면 무리 중 가장 큰 녀석이 암컷이 된답니다. 아무래도 암컷은 알을 만들어야 하니까 자원 소비가 많고, 그래서 가장 큰 녀석이 변화하나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큰 녀석이 번식력을 획득(!)해서 둘이 번식한답니다. 만약 암컷이 사망하면 번식력을 획득했던 두 번째로 큰 녀석이 이제 가장 크니까, 암컷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큰 흰동가리가 번식력을 획득하지요. 아... .. ... 이걸 BL 소재로 써도 재미있겠다는 망상이 잠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만, 거기까지.


어류는 체외수정을 하니 따지자면 난혼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그렇다보니 수컷은 열성적으로 암컷을 꼬시고 알을 받아오며, 그 뒤에도 추가적인 관리를 하는 종이 여럿 있습니다. 유명한 건 역시 가시고가와 해마지요. 해마는 둘이 짝을 이뤄 계속적으로 수컷이 임신을 반복하며(...) 번식한답니다. 의외로 산란 후 지속적으로 보살피는 물고기도 있긴 하네요.


양서류는 그보다 적답니다. 없는 건 아닌데 꽤 독특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전 양서류는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훌훌 넘겼습니다.


파충류는 없고요. 조류는 흰머리수리가 먼저 나옵니다. 그 앞에 서문에서 원앙 이야기가 잠시 언급되는데, 원앙은 암컷이 알을 낳아 번식 성공을 확인하면 미련없이 떠난답니다. 알낳기 전에는 스토킹에 가깝게 붙어다니지만 낳고 나면 돌아서는게... 원앙같은 부부라고 하면 그리 좋은 이미지가 아니로군요. 흰머리수리는 부부해로하는 새랍니다. 특히 외도를 하려고 하면 동료들까지 나서서 뜯어 말린(...)다는군요.

백조의 번식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유아 사망율이 매우 높은데, 가장 큰 이유는 철새라 아주 먼 거리를 날아 다니기 때문이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기를 잘 키우려면 부부간의 화합이 중요하고... 가 아니라. 먼거리를 날아다니기 때문에 번식 상대를 찾을 시간이 매우 부족해서 원래 짝했던 애랑 또 짝짓는답니다. 로망이 팍삭 부서지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립니다...

비둘기는 수컷도 우유를 낸답니다. 암수 모두 피존밀크를 낼 수 있어서 그렇다는데. 비둘기유라니까 우유가 아니라 기름이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군요.

에뮤나 펭귄의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만. 맨 마지막의 수컷 이야기는 음... 미묘하네요. 동물들에 대한 기술은 나쁘지 않은데 개인 의견이 들어가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부분이 좀 있습니다. 수컷은 새끼와 암컷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라고 언급하는 거나, 다른 동물도 그렇게 살아간다고 하는 부분이나. 왜 강조하시나요. 인간은 달라야 하지 않나요. 공동육아하는 다른 동물들 이야기도 여럿 적었으면서 왜 꼭 그런 부분만 강조하시나요.


하여간 가볍게 볼만한 동물 이야기책입니다.



이나가키 히데히로. 『수컷들의 육아분투기』, 김수정 옮김. 윌컴퍼니, 2017,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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