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받을 때 표지와 대강의 내용을 보고는 홀려서 벼르고 있다 주문했습니다.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도쿄 사이드 키친이라는 작은 공간을 중심으로 그 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연작 단편소설입니다. 각 편의 주인공은 다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은 사이드 키친이고 맨 마지막에서는 그 이야기들이 하나의 고리로 묶입니다.


사이드 키친은 회원을 중심으로 꾸려 나가는 작은 공동주방입니다. 회비는 한 달에 1천엔. 그리고 재료비는 매번 3백엔이고, 그걸로 장을 봐서는 사이드 키친의 레시피북 대로 음식을 만들어 같이 먹습니다. 만드는 사람은 제비로 뽑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맛이 조금씩 다릅니다. 음식 솜씨가 좋지 않은 사람이 걸리면 난감하지요. 그래도 그 원칙은 내내 유지합니다.


첫 편의 주인공은 카에라는 학생입니다. 반에서 사소한 일로 따돌림을 당하지만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습니다. 부모님은 안계시고 할아버지와 지내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할아버지와도 소원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사이드 키친에 들어갔고, 얼결에 휘말려 음식을 만들게 됩니다. 할아버지와 같이 있기 어색하니 사이드 키친으로 매번 오지만 그것도 학교에서의 따돌림이 점차 학교 폭력으로 바뀌면서 상황은 악화되고, 급기야는 할아버지와도 크게 싸웁니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정규직이지만 매번 파견사원에게 밀린다고 생각하는 나오입니다. 사내커플이었던 남자친구는 결혼할 생각 없는데 재촉한다는 말을 하며 돌아섰고, 같이 지내는 파견사원들은 이런 저런 컴플렉스를 자극하며 나오가 꿈꾸는 결혼으로 돌진합니다. 사이드 키친에는 자주 오지만 음식 솜씨가 늘지 않아 당번이 될 때마다 위축되고요. 그러다가 사이드 키친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야기 흐름이 바뀝니다.



그 뒤의 이야기도 대개 이런 이야기입니다. 사이드 키친의 사람들이 돕기도 하지만 자극을 주기도 하고 또 스트레스 원인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건 갈등은 해당 편안에서 해결됩니다.

그렇지만 읽는 내내 상당히 불쾌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나 두 번째 이야기나, 학교의 따돌림이건 직장내의 알력이건 별다를 것이 없는데 왜 그랬을까 싶었다가 지금 감상문 쓰면서 깨달았습니다. 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이지 않아서 말입니다. 첫 이야기 읽을 때도 지나치게 답답한 카에와 소통 부재의 상황은 어디서 많이 보았다 했더니 조아라에서 보았군요. 그러니까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일부러 갈등 상황을 만드는 소설 말입니다. 상황을 한 번에 정리하기 위해 일부러 갈등을 극대화합니다. 그리고 첫 편이나 두 번째 편이나 갈등 상황을 조장하는 것은 모두 여성입니다. 따돌림을 주도하고 카에에게 언어 폭력과 신체 폭력을 가하는 것은 같은 반의 여학생이며, 조장하는 방식이나 폭력 방식도 그렇습니다.

정규직이지만 파견사원에게 외모나 나이 등등으로 밀린다는 희한한 컴플렉스를 가진 나오도 그렇고요. 결혼해야 하지 않냐며 압박을 주는 것은 사이드 키친의 다른 회원의 중년 여성이며, 나오의 컴플렉스를 자극하고 그걸 놀림거리나 뒷담화로 삼는 것도 모두 여성입니다. 남성이 주역인 편도 있긴 하지만 그 방식이 사뭇 다릅니다.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의 '여자' 싸움에서 질린 나머지 이 책은 읽는 도중에 포기할 뻔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읽긴 했는데 좋아할 수는 없네요. 소설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먹는 이야기와 먹을 것을 만드는 이야기를 담은 『따끈따끈 밥 한 공기』와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나리타 나리코. 『도쿄 사이드 키친』, 이지연 옮김. 영상출판미디어, 2017, 1만원.



음식관련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실만 하나, 저처럼 엉뚱한 곳에서 스위치가 눌릴 가능성 있다면 조심하시어요. 그래도 읽는데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고 가볍게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의 반전은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이고.....


그러고 보니 나쁜 건 다 여자다!라는 건 아닙니다. 첫 편에서 등장하는 이상한 아저씨, 떫은 감이라는 별명의 카키야마는 처음부터 나쁜 놈입니다. .. 만 이 아저씨는 중간부터 바뀌었지요. 알고 보니 좋은 놈으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