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이 책 말고 다른 과학책을 읽은 적이 있던가요. 올해 읽은 책이 워낙 적다보니 올해 결산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 같은데 뚜껑을 열어 봐야 알겠지요. 이러면 안되는데.;ㅂ;



하여간 올해의 과학책으로 뽑는 이유는 이 책의 후기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초반에는 이 사람, 백신 반대론자인가 싶었는데 아닙니다. 아기를 낳고, 출산 과정에서 고생하고, 그리고 아기를 키우면서 백신과 관련한 여러 조언과 충고를 듣고. 그 조언과 충고에는 백신에 들어 있는 여러 성분의 문제와, 백신의 부작용 등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런 수많은 조언과 지식 사이에서 어떤 것이 올바른 길인지 키를 잡기 위해 선택한 건 공부입니다.(...) 정말로 공부. 그러니까 그 결과 이런 책이 나온 겁니다.

원래 논픽션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었고 백신에 대한 자신의 경험에다 질병과 백신의 역사, 면역기제, 감염, 백신의 제조, 백신 회피, 백신을 둘러싼 논쟁 등을 다양하게 다룹니다. 이렇게 보면 과학에세이로 보이지만 과학에세이만은 아닙니다. 과학을 둘러싼 논쟁은 철학적 논쟁으로도 볼 수 있으니 범위가 훨씬 넓지요.


하드커버지만 책은 두껍지 않으며, 한 권 다 읽고 나면 이 책 사야겠다 싶습니다. 각주가 아니라 미주이기 때문에 확인하기 불편하지만 오히려 책을 다 읽고 나서 미주를 훑어 보면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도 읽기 쉽고, 경험과 역사적 사실, 의견이 적절히 뒤섞여서 좋습니다. 그런 고로 읽고 나면 경건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에게 추천하게 됩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붙이다보니 한도 끝도 없어서 무조건 추천을 외치고는 중간에 멈췄습니다.



p.38

집단 지성의 예시. 2003년에 있었던 호흡기 질병의 유행 당시 WHO는 10개국 연구소의 협동 작업을 추진하여 원인을 밝히고 4월에 바이러스 분리에 성공했다 합니다. SARS 이야기더군요.



p.45

두어바흐는 영국의 백신 반대 운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백신 반대자들은 노예 혹은 식민지 아프리카인의 정치적, 감정적, 수사적 가치를 끌어다 쓰는 데 서슴없었다. 그러나 영국 백인 시민들의 고통이 다른 곳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고통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하는 데는 그보다 더 서슴없었다.> 달리 말해, 반대자들의 주된 관심은 자기들 같은 사람들이었다.


영국 백신 반대 운동에는 강제적 백신 접종에 대한 반대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도 의무접종은 아니라고 했지요.



p.58

백신은 어떤 종류건 주사 후 실신과 근육통이 나타날 수 있다는데 그 이유는 주사 행위 자체 때문이랍니다. 과연. 바늘로 쿡 찔러 약을 주입하는 건데 놀랄 가능성이 높죠.



p.63

어떤 물질이든 과용하면 독이됩니다. 용량이 많으면 물도 독이 된다는 거죠. 그 이야기 뒤에, 슬로빅의 주장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독성에 대해 전염의 법칙을 적용하는 건지도 모르며, 그 법칙은 화학물질에 아주 조금만 노출되더라도 몸이 영구적으로 오염된다고 가정한다는 내용이랍니다. 그 뒤의 인용문구도 인상적이네요. '오염된 상태는 모 아니면 도의 성질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장의 마무리는 "우리는 자연이 전적으로 선하다고 믿는 듯하다."

그럴리가요.=ㅁ= 당근을 야생에서 강하게 키우면 독당근이 된답니다. 선한게 아니라 자기 중심적이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자연의 자연에 대한 투쟁.



p.70

DDT는 레이첼 카슨 덕분에 악마의 물질로 명명되었습니다. 음, 거기까지는 아닌가요. 하지만 그 대가는 무엇이냐. DDT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아프리카 등지에서 말라리아 사망자가 증가했답니다. 20명당 1명꼴. 1년에 한 번 집 벽에다가 DDT를 도포하면 말라리아 사망을 확 줄일 수 있는데 DDT를 생산하는 회사가 워낙 드문데다가 생산 자체가 '환경적대적'인 행위로 인식되니 안하려고 한다나요. 그와 관련한 다른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세요.




그다음에 등장한 것이 스타트렉. 스타트렉의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여 비유했는데 나올 줄 몰랐어요! 하기야 드라큘라도 예시로 나왔지요. 그런 점이 반가웠습니다. SF의 다른 예시도 몇몇 있었고요. 그래서 더 즐겁게 읽었을 겁니다.




율라 비스. 『면역에 관하여』,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2016, 15000원.


과학책은 김명남씨가 번역한 것을 보면 대체적으로 문제 없습니다. 안심하고 볼 수 있는 번역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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