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 프린스-휴즈, <고릴라 왕국에서 온 아이>, 북폴리오, 2006
자폐아 판정을 뒤늦게 받은 어떤 박사가 쓴 책이라길래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주변에 정말로 아까운 아이가 있어서 자폐라는 증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겼고(귀엽고), 몸도 늘씬하고 피부도 뽀얗고. 그러니까 자폐가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왕자님이었을텐데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읽게 된 이 책. 하지만 읽다가 몇 번이고 던지고 싶은 심정을 참았습니다. 하하.
작가인 던 프린스-휴즈는 서른 여섯에 자폐(정확히는 자폐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 판정을 받습니다.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던 것이 자폐라는 증세가 하나가 아니더군요. 진작에 알 수 있었을 건데-대부분의 병들도 증세가 여러가지지 않습니까-뒤늦게야, 정상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 판정을 내리면 자폐라는 거죠. 뭐랄까, 자폐인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세상을 보고 인식하는 시선이 다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의 경우도 사회 생활은 가능하지만 그것은 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피나는 노력을 하여 사람들과 어울리려 하기 때문이랍니다.
유전적인 요인도 어느 정도 있는 모양입니다. 작가의 부모님이나 친가, 외가모두 조금 독특하더군요. 실제 사촌 중에도 아스퍼거 증후군 판정을 받은 아이가 있습니다. 이쪽은 작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말입니다. 좀더 폭력적이랄까, 분노폭발형이랄까 이런 성향을 가졌더군요.
그런 정보를 얻는 것은 좋은데...;
자신의 성장 기록을 적어나가면서 리얼하게 묘사한건 꽤 당황했습니다. 거기에 앞부분에서 아이의 출산을 경험했다고 했으니 결혼했나보다 했더니 그런게 아니었어요! 돌려 말하자면 백합. 아니아니, 이렇게 표현하면 그분들께 미안하지요. 서로 사랑해서 가정을 이뤘고 그래서 한 쪽이 임신해 아들을 낳았으니, 분명 출산을 경험한 것이고 프린스-휴즈의 아들인겁니다. 뒷부분에서 자기 아들에 대한 사랑을 여러 번 이야기 할 때는 좀 당황스러웠고,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제게 또 놀랐습니다. 담담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런 고로 이 책을 추천할 때는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이런 부분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안되겠지요.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상적인 가정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저자 본인에게는 사랑하는 삶의 동반자와, 사랑하는 아들이 함께하는 가정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다른 역경을 딛고, 제대로 된 학교 교육 라인-고교 중퇴 후 대학 졸업, 석박사 진행-을 밟지 않았음에도 연구자로서 설 수 있었던 것이고요.
아, 제목에 등장하는 고릴라는 저자의 연구 분야 이야기입니다. 동물원에 가서 고릴라에게 반하고, 동물원에 직업을 얻어서 본격적으로 고릴라의 생태와 습관, 생활방식 등에 대해 보고서를 쓰게 되는데 이것이 굉장히 세밀하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고릴라를 연구합니다. 저자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동 떨어진 일종의 외계인(?)이라고 여기고 있어서 인지 고릴라를 연구하는데도 굉장히 친숙하게 다가갑니다. 동화된다고 할까요. 인간 대 유인원이 아니라 같은 고릴라로 여긴다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그런 교감이 저자가 연구에 몰두하고, 사회에 조금 익숙해지는 계기가 되더군요.
그러니까 반은 제인구달계(...), 반은 자전적 수필인거죠.
고릴라 왕국에서.......
2007. 6. 22. 0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