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설명했지만 키는 아침은 두 번 먹는 것으로 호텔 예약을 잡았습니다. 마지막 날 항공기 탑승 시간을 고려하면 조식을 안 먹고 나가는 것이 맞거든요. 그럼에도 마지막날은 JR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고 두 건에 휘말려 아슬아슬하게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어쨌건 아침은 두 번 먹을 수 있고, 호텔의 아침밥은 뷔페식과 일식 두 종류가 있습니다. 양식파인 키는 뷔페식으로 두 번 다 먹으면 안될까 생각했지만 두 곳 모두 겪어보고 싶다는 일행의 의견을 존중해 둘째날은 일식집으로 갑니다.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육식파인 키에게는 조금 허전한 식사였다는 것 빼고요.
7시에 맞춰 내려가니 직원이 기모노를 입고 반가이 맞아줍니다. 그리고는 묻습니다. 죽과 밥이 있는데 어느 쪽으로 하시겠습니까? 의견을 묻고 전부 죽으로 주문합니다.
이것이 한 상차림입니다. 직접 가져다준 식사를 주면서 밥이나 죽은 더 먹을 수 있고,죽이지만 밥으로 더 달라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실제 먹어보니 양이 상당히 많습니다. 죽이라 금방 꺼졌지만요.
뚜껑으로 덮어 두었던 그릇에는 무조림이 있습니다. 맑은 장국에 조린 것인데 무가 아주 맛있습니다. 푹 익은데다 국물을 쏙 빨아들여서 그냥 먹어도 좋습니다. 그 아래 있는 것은 유바 무침이고 죽 옆에 보이는 시럽 같은 것은 죽에다 섞어 먹는 소스입니다. 맛은 가쓰오부시 같은 감칠맛 나는 국물에 간장으로 간을 한 것 같은, 그런 맛. 딱 일본 맛입니다. 아니, 교토맛인가요. 살짝 달달 짭짤하니 말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동산보다 더 북쪽에 있는 절로 갑니다. 교토에서 다닌 여러 건물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건 그 전날 간 동산의 절이건 마찬가지로 시간이 조금 지나면 사람이 많아 북적거립니다. 그러니 서둘러 움직이는 것이 좋지요. ... 그런데 생각해보니 키가 이런 설명을 일행들에게 한 기억이 별로 없...네요?;
절 입구입니다. 여기는 동산의 절처럼 산꼭대기에 있지는 않은데, 뒤에 산이 있습니다.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면....
동백나무로 만든 울타리가 나옵니다. 굉장히 위압적이네요. 하지만 그 입구를 벗어나면 별세계가 펼쳐지니 원래 그런 의미로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한 장씩 나눠준뒤 안으로 들어갑니다.
모래로 만든 정원. 이런 풍경을 보고는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된다는 일행들의 반응이 있었지만 키는 나름 이해할만 하다고도 생각합니다. 혼자서 친구들과 놀 수 있는-차를 즐기는 다실을 만들었으면 이래 저래 꾸미고 싶은 심정도 되지 않나요. 물론 한국은 그렇게 꾸미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만들고, 멀리 있는 풍경을 가져오는 방식을 선택하지만, 정원 안쪽에 아기자기하게 내 모형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쪽도 이해가 됩니다.
그 유명한 건물의 사진은 찍었지만 올리진 않습니다. 그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 둘이 함께 찍혔거든요.
키는 혼자 여행갈 때 가능하면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게 노력합니다. 일행이 있는 경우에는 감추기 어렵지만, 그럴 때도 가능한 조용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다니려고 노력합니다. 본인이 목소리 큰 것도 알고 있으니 눈총 받는 것은 질색이라 그렇습니다. 거기에 시끄럽게 떠들며 지나가는 그런 한국인과 같은 무리로 묶이는 것이 불쾌하기도 하니까요. 이전 글에는 적지 않았지만 동쪽산의 절에서 삼년 언덕을 내려올 때, 아주 시끌벅적하게 길 중앙을 차지하고 셀피를 찍는 한국인들을 보았습니다. 차마 육두문자를 적지는 못하지만 그 때 느낌 불쾌한 감정은 잊기 어렵습니다. 저 버릇없고 예의 모르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분노하며 지나쳐 놓고는 후회합니다. 사진 한 장 찍어 줄 것을요.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날은 늦지 않게 사진을 찍습니다. 이 아가씨들은 절을 도는 내내 사진 잘 나오게 찍어, 뒷배경이 나와야지, 저 건물까지 포함해서 나와야해 라면서 핸드폰으로 SNS용 화보를 찍고 있었습니다. 시끄럽게 떠들면서, 시간 걸려 사진 찍어서 다른 사람들이 사진 찍는데 방해되게 하면서 그러는 걸 보니... 아니, 그래도 아침 일찍 와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사람 많은데 그러는 것보다는 나은가요.
곳곳의 이끼사진도 찍고, 샘물 사진도 찍습니다.
그리고 길을 따라 뒷산으로 올라가 절의 전체 풍경을 다시 한 번 찍고요. 멋집니다.
내려와서는 다른 방향에서 전각 사진을 찍습니다. 집 앞에 이런 곳이 있다면 날마다 산책오고 싶은데, 입장료가 만만치 않지요. 500엔이던가요.
나오는 쪽 입구에는 전각의 일부를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여 전시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2층 처마쪽에도 색을 입혔다고 합니다. 그걸 보여주는데...
한국의 단청하고 느낌이 상당히 비슷합니다. 재미있네요. 하지만 지금의 그리스조각이 그러하듯, 없는 쪽도 괜찮아 보입니다. 채색 잘못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지니까요.
다시 걸어서 절 앞길로 나갑니다. 어느 교수님의 산책로는 이번에는 뺍니다. 어차피 수로를 따라 걷는 거라 빼도 되고요. 산책로를 건너뛴 이유는 그 전날 저녁에 나눈 두부 대화 때문입니다.
키는 숙소에 돌아오면 일단 TV를 켭니다. 조용한 것이 싫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일본 방송은 내용이 들리지 않아도 꽤 재미있거든요. 이틀째도 그렇게 TV를 틀었는데 마침 교토의 맛있는 집들을 찾아 다니는 프로그램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일행이 묻더군요.
"그러고 보니 우리 두부 먹는다고 하지 않았어? 두부 먹자, 두부."
육식파인 키는 두부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양념맛으로 먹는 두부 조림 정도? 그렇기 때문에 교토에 와서도 두부를 먹은 적은 없습니다. 물론 호텔 아침 식사로 먹는 것은 예외입니다. 아니, 그럴 때도 일부러 두부를 찾아 먹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뭐, 두부를 즐기지 않는 이유에는 어머니가 두부를 만드시는 것도 포함됩니다. 집에서 갓 만든 따끈한 두부를 먹을 수 있는데 나가서 두부를 먹는 건 내키지 않아요. .. 아니, 콩은 맛있는데 두부는 덜 맛있습니다. 그게 더 정확한 이유일 겁니다.
원래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남산에 괜찮은 두부음식점이 있다길래 거길 갈까했는데, 첫날 일정이 여우네집으로 꼬인 터라 두부집도 안가려고 했지요. 그랬는데 일정이 대강 잡힌 상황에서 갑자기 두부집 이야기를 꺼내니 속이 울컥 뒤집힙니다. 하지만 키는 집사. 집사는 성심성의껏 모셔야 합니다. 울컥 올라오는 것을 눌러 담으며 다시 검색을 해보니 역시 남산의 그집이 괜찮다는 글이 나오네요. 그냥 남산으로 가기로 합니다. 다만 속이 뒤집힌 것은 두고두고 담아두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셋째날은 절을 갔다가 남산으로 이동합니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한 번에 가는 방법은 없지만, 절에서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달려가면 전차 역이 나옵니다. 그러고 보니 키는 노면전차를 타본 적이 없습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번 기회에 한 번 타보자 싶어, 전차역까지 버스로 가고, 다시 전차를 타기로 합니다. 코스를 그리 잡아 놓고 보니 중간에 기독교 대학도 있네요. 거기 내려서 구경하고, 다시 버스로 이동할 생각입니다.
기독교대학은 붉은 벽돌 건물입니다. 엉뚱하게 같은 재단의 옆 구획-학교 쪽을 들어간 터라 잠시 헤맸지만 곧 다시 대학을 찾아 캠퍼스 안으로 들어옵니다. 시간이 벌써 11시 가까이라 남산에 가면 12시, 점심 시간이 될 것 같군요. 유명한 집이라면 기다려야 할 것 같아 11시 45분까지는 도착하고 싶은데 마음만 급하지 일행은 도와주지 않습니다.
날이 쌀쌀하니 햇빛 잘드는 벤치에 앉아 쉬고 싶다며 덜컥 앉습니다. 그러려니 해야지요. 집사는 그저 기다릴 따름입니다.
근데 분명 앞서 여행 정보에도 이 대학을 방문하는 목적을 '시비 보기'라고 적어두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보셨다면서 시비 이야기는 못 읽으신건가요. 여긴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한국 시인 둘의 시비가 있어서 그걸 보러 온겁니다. 읽으셨다면 '시비가 있었어?'라고 하시면 안되죠. 일정표를 작성한 키는 또 한 번 심장에 스크래치가 납니다. 오늘도 수면 부족이었는데, 저녁도 먹어서 몸도 부었는데, 그래서 더더욱 여린 가슴이 되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허탈합니다.
나란히 있는 시비 두 개를 찍고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근데 꽃도 많고, 은근히 한국돈도 많이 놓여 있습니다. 관리비용에 보태라며 그런 걸까요. 왜 한국돈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시지만 집사는 모르니 답을 할 수 없습니다.
초행길이라 이래저래 헤매면서 버스 정류장을 찾아,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이번 목표는 전차 출발역. 키는 두 사람을 안내해 무사히 정류장에 내립니다. 어디로 가야하나 구글 지도로 보니 조금만 걸어가면 되네요. 오오. 다행히 전차역은 금방 찾았습니다. 그리고 금방 탈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타고 알았는데, 이건 B라인이더군요. 남산까지 가는 것은 A라인이라 도중에 한 번 갈아탑니다.
전차도 재미있지만 저런 작은 배려도 재미있더군요. 저 굵은 줄무늬 천은 추울 때 덮으로가 마련한 담요입니다. 한국에 저런 것을 마련했다면 누군가 들고 가고 안남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선진국과 아닌 곳의 차이는, 그런 곳에서 오지 않을까요.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질서와 법규를 지키는데서 말입니다.
(계속)
덧붙임.
다음에 혹시 이렇게 인솔해서 갈 일이 있다면-절대 없게 하고 싶지만-일정표를 인쇄해서 배부하는 것도 고려해야겠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요. 하지만 그러느니 아예 여행 계획 안세우고 말지요. 너무 피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