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갑자기 피해의식이랄까, 그런 것이 엄습(급습)해와서 저녁 내내 방바닥을 긁고 있었습니다. 피해의식이라고 하기는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혼자 근무하다보니-소속 부서는 있지만 근무지는 별도라-같은 부서 사람들도 저를 챙기는 걸 잊기도 하고, 그 안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거든요.
집에 들어왔다가 운동하러 나가서는 한 시간 넘게 걸어다니면서 머릿속을 떠다니는 망상을 뿌리치느라 꽤 힘들었습니다. 운동 자체보다 정신적인 탈력감이 심했던 것이지요. 주말 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던 것도 문제였을 것이고, 일요일에는 선본남을, 월요일에는 소개팅남을-둘다 올해 만난 사람들-떠올려야 했던 것도 있습니다. 일요일은 사촌오빠 결혼식이라, 사돈뻘이 되는 선본남을 만날 수 밖에 없었고, 어제는 소개해주신 분이 "후배가 미안하기도 해서 한 번 더 만나자고 연락했는데 전화 안받았다는데?"라는 말을 들어서 변명하기 급급했습니다. 둘다 좋은 기억은 아니었으니 뭐, 떠올린다고 기분 좋은 상황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랬는데, 집에 들어와서 씻고 좀 쉴까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십니다. 어머니 친구분이로군요. 근데 들려오는 대화가 심상치 않습니다. 분명 선본남 건 이후에는 올해는 이것으로 끝이다, 두 번 다시 선보지 않겠다고 선포하고 어머니도 동의하셨는데 대화 내용이 분명 선입니다. 공기업 비스무리한 곳에 다니는 남자에 차남이고 어쩌고 하는 꼴이 딱 그렇군요. 점점 제 얼굴이 굳어가고 이젠 탈력감으로 뻗기 일보 직전인데 전화를 끊으신 어머니가 서두를 꺼내십니다. 어디어디에 근무하는 남자인데~.
도중에 토막냈지요. 기분 굉장히 안 좋고, 지금 힘드니까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요.

결국 가족들에게, 대학원 공부할 생각이고 지금은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다, 결혼은 나중이다라고 했던 것도 어머니 귀엔 마이동풍에 지나지 않았던 겁니다. 스물 아홉 먹은 딸래미는 치워야할 두엄더미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그냥 놔두면 주변에 냄새만 피우니 빨리 해치워야하는 겁니다.

자기 관리하는 것도 힘듭니다. 그럴진대 남편 관리에 자식 관리에 시댁 관리에 남편 친구와 동료 관리에 가정 관리까지 하라고요? 지금 자기 관리하는 것도 어려워서 뻗어 있는걸요. 자기 감정 하나 조절 못해서 바닥에서 허우적 대는 꼴이 어머니 눈에는 안 보이시나봅니다. 그러니 저렇게 남한테 치워버리려 하시는거죠.


다음에 한 번 더 그런 소리 나오면 엄포를 놓아야 겠습니다. 결혼하라 하면 일 그만두고 일본으로 날라버릴겁니다. 그게 안된다면, 휴직하고 석박사 코스 밟아버릴겁니다. 비용도 무진장 들어가겠지만 대학원 비용은 대주신다 했으니 그거 대주시다 보면 결혼하라는 소리는 들어가겠지요. 최소 5년이니 나이도 훨씬 먹을테고요. 제 전공에 석박사 동시에 밟는 코스가 없으면 전공을 바꿔서라도 갈겁니다.(빠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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