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영화를 먼저 알았고 소설이 나온 뒤에야 이게 원작 소설이 따로 있고 영화를 만들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매번 인터넷서점의 신간체크를 하면서 도서관에 신청할 책을 뽑다보니 눈이 안 갈 수 없었지요. 구입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도서관에 신청한 책이 마침 예약이 가능해서 빌려다 보았습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단팥 이야기만 해도 충분히 먹음직스럽습니다. 제목에 나온 앙은 한자로는 餡이라고 쓰고, 팥소나 팥앙금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빵이나 떡 등에 들어가는 소가 팥인 것(팥소)을 말하는 겁니다. 앙금은 또 다른 듯..?

하여간 그런 팥으로 그런 속재료를 만든 것인데, 이 책의 주요 소재가 도라야키이기 때문에 팥소는 빠질 수 없습니다. 도라야키는 핫케이크 같은 작은 원형의 빵 사이에 팥소를 집어 넣은 것이지요. 소는 앙금형태도 있고, 팥알이 살아 있는 형태도 있을 겁니다. 하여간 팥앙금도 주요 재료이긴 하지만 주인공은 대강 만들어서 대강 팝니다. 원래 자신의 가게도 아니었고 자신이 단 것을 좋아하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찾아와 아르바이트로 써달라고 합니다. 정중히 거절했지만 막무가내로 온 할머니는 안에 들어가 팥소, 즉 앙餡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중국산을 쓰던 팥도 나중에는 캐나다산으로 바꾸는 등 팥소 만드는 법을 바꿔가면서 도라야키의 판매고도 수직상승합니다. 원래 자신의 가게도 아니고 고용되어 만들던 터라 가끔 상황을 살피러 오는 이전 주인의 부인도 만족합니다. 다만 문제가 터진 건 할머니의 정체가 밝혀진 뒤입니다. 정체라고 하기도 그렇고 할머니가 처한 상황 때문에 도라야키 판매고가 급감하고, 장사는 더더욱 안되며, 전주인의 부인으로 실질적인 가게 주인은 주인공을 압박합니다. 그야, 남편이 죽은 뒤에 연고가 없던 남자를 받아준 건 부인이긴 했지요. 그리고 결론은 .... 제목에도 적었듯이 희망만 남고 현실은 암울합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그 아래에 희망이 남아 있다고 하던가요. 하지만 여기서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순간 가게는 몰락합니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에 남긴 희망은 있긴 합니다. 있지만 그리 밝지는 않지요.

무엇보다 주인공은 제대로 된 기술을 가졌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는 하나 의욕없이 대강대강 만들어왔기 때문에 제대로 몸에 익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에 매장에서 쫓겨났고, 다시 직장을 찾아야 하는 처지입니다. 노점에서 도라야키를 파는 것은 일본 특성상 무리일 것이고, 허가를 얻어야겠지요. 작은 매장이나마 찾으려고 하면 쉽지 않을 겁니다. 제과제빵도구는 있지만 도라야키에 그것만 필요한가요. 팥소를 만들 주방설비도 있어야 할 것이고, 빵을 구울 철판도 필요합니다. 필요한 것이 더 많지요.

그래도 의욕이 없던 주인공이 할머니와 만나면서 조금씩 변하고, 마지막에는 다른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주인공은 어떤 의미에서 사회의 가장 바닥에 위치한 사람이니까요. 어차피 바닥이니 도전했다가 실패한다고 해도, 그 희망 때문에 다시 견디고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결말이 암울해요.ㅠ_ㅠ


개인적으로 제일 싫었던 인물은 전주인의 부인. 일단 주인공의 회상을 보면 오히려 이전 주인이 은헤를 입은 상황인데 말입니다. 아내는 그 사실을 몰랐던 건가요. 인성이 덜 된 조카를 예뻐한다면서 남편이 하던 음식업 뒤엎고 새로 차려준다면, 얼마 안가 망할 것 같습니다만. 아니, 임대료가 안나가니 그럭저럭 선방하려나요. 허허허.


두리안 스케가와. 『앙: 단팥 인생 이야기』, 이수미 옮김. 은행나무, 2015, 12000원.


이 책을 읽다보니 이전에 본 『1평의 기적』이 떠오르더군요. 한쪽은 양갱, 소설은 도라야키지만 주연이 팥이라서 그런가봅니다.-ㅠ-


덧붙여; 3일 연속 팥 관련 글을 올리는데... 정말 주말에 팥죽 쒀야겠네요. 본가 냉동실에 괜찮은 팥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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