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습니다. 중간에 포기할까 생각한 것도 최소 세 번이고요.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 나갔는데, 다 읽고 난 며칠 뒤에 노벨 물리학상 발표가 나더군요. 왜 중성미자(뉴트리노)의 무게를 검증한 것이 중요한 일인지 다는 몰라도 대강은 이해한다는 점에서 이 책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간단히 말해 천문학의 역사 전반과 현대 천문학, 그리고 물리학의 이야기를 함께 다른 책입니다. 원제가 How it began인데 이쪽이 훨씬 와닿지요. 고대 천문학에서 우주와 태양계를 어떻게 보았는지 그리고 우주의 지평이 언제 확장되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걸 넘어서 현대 천문학이 서기까지 어떤 기술적, 이론적인 발전이 뒷받침 되었는지, 현재(라고 해도 몇 년 전)의 천문학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밝힙니다. 책이 나온지 몇 년 되었기 때문에 최신 이론을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단적으로, 힉스입자를 두고 발견이 코앞이라고 하고 있거든요.'ㅅ' 그러니 이 책도 최신 현대물리학을 다루고 있다기엔 조금 묵은 책이지요.



저자가 글을 맛깔나게 쓴데다가 대체적으로 재미있습니다. 여러 과학자들의 괴팍한 모습이나 일화들을 섞어서 덜 지루하게 만든 것은 좋은데 그래도 안 졸리다는 건 아닙니다. 포기할 뻔했던 앞부분의 내용은 상당히 졸리거든요. 그래서인지 오타도 많이 나옵니다. 시공사에서 낸 책을 보며 이렇게 오타를 많이 확인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번역이 이상한 부분과 오타를 짚어보자면..


p.054 중간쯤

Ort Cloud는 오르트라고 읽는다고 기억했는데, 사전을 봐도 그렇네요. 전 오르트 구름이 맞나 했더니 사전에서는 오르트 성단이라고 나옵니다. 책에서는 오오트 구름이라고 적었습니다.


P.102 셋째줄

아리스토텔레스고 플라톤인데, 왜 프톨레미는 프톨레미라고 했나요? 그 뒤에 339쪽에서도 한 번 더 프톨레미가 등장합니다.


P.138

하늘에서 최고의 보물이 무엇인가 신들이 논쟁합니다. 그런데, 138쪽. 하데스가 걸어나오는 데 그 옆에 있는 개 이름이 세레부르스랍니다.


p.224

칼텍의 천문학자들은 월터 바데와 루돌프 민코프스키는 백조자리 A가 부서진 은하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주어가 두 번 나옵니다.


p.235 하단

전파 탐사는 가시광선 탐사로 발견된 퀘이사 중에서 90퍼센트를 찾지 못했고, 가지광선 탐사는 X선 탐사로 발견된 퀘이사 중에서 75퍼센트를 찾지 못했다.

가지광선...


p.238

수집품들 중의 절반은 내가 방문한 지 5년 후에 잃어난 방화로 소실되었다

잃어난.ㅠ_ㅠ


p.243

우리은하는 평범함 블랙홀을 가지고 있고

평범함.ㅠ_ㅠ


p.347

전체적으로 모든 원자들 중에서 대략 90퍼센트가 수소 원자이고 10퍼센트가 헬륨 원자이며, 헬륨 원자가 수소 원자보다 더 무겁기 때문에 헬륨의 질량에서 우주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그러니까 원자 수로 따지면 수소 9대 헬륨 1인데, 헬륨이 더 무겁기 때문에 '헬륨의 질량이 우주 질량의 25%를 차지한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리고 기억에 남았던 부분들.


p.107

우유 생산량의 급감으로 이웃 대학에 컨설팅 요청을 했더니 단장이 물리학자로 왔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리고 그 보고서의 시작은 "진공 상태에 있는 구형의 젖소를 가정하면……." 으으음. 이거 항의해도 될까요. 이게 문제를 단순하게 보기 위한 물리학자들의 방식이라고 해도 농장주가 첫 장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경악과 후회가 교차할 겁니다.


p.168

허블은 철자법을 제외하고는 만능맨이었군요. 천문학뿐만 아니라 몸쓰는 것도 상당히 잘했나봅니다. 권투도 프로급이었다고 하고, 투포환을 포함하여 여러 운동도 만능.=ㅁ=!


p.238

러시아, 정확히는 붕괴 후의 구 소련에서 망원경을 이용하는 동안 풀코보 천문대의 도서관을 이용했답니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와 갈릴레오의 원고를 보유한 좋은 도서관이었다는데, 방문 5년 뒤에 일어난 방화로 수집품의 반이 소실되었다네요. 도서관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상당히 자주 일어나나봅니다.


p.309

조르주 르메트르는 그런 거리낌이 없었다. 르메트르는 일반상대성 이론을 이용하여 팽창하는 우주의 실질적인 모형을 구현한 최초의 과학자이다.

그리고 그는 예수회 사제였습니다. 읽으면서 상당한 충격이. 그 뒤에는 바티칸 천문대에서 일하는 여섯 명의 과학자-사제에게 저자가 강의하러 간 이야기도 이어집니다. 갑자기 여기서 바티칸 기적조사관이 떠오르는데..(...)


p.322

"여러분 우리가 한 발 늦었습니다."

그러므로 연구는 타이밍입니다. 어쨌건 그 뒤에 이어진 이야기를 보면, 극초단파를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두 젊은 학자들의 상관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들은 똥을 찾다가 금을 발견했다. 우리들 대부분은 경험과 반대다."

음, 여기서 오타를 하나 더 추가할까요. 뒷문장에서는 은이 아니라 의가 맞는데.


p.329

갓 태어난 우주의 초단(음X)파 사진이라니! (헉후헉후!)

1989년에 발사된 우주배경복사탐사위성Cosmic Background Explorer satelite, COBE는 초단파 배경복사를 관측해서 온도 변화를 보여줬답니다. 그 뒤에 윌킨슨초단파비등방성탐사선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 WMAP를 발사해서 훨씬 더 좋은 성능으로 우주의 모양을 볼 수 있게 되었다나요. 근데 그 비유를 갓 태어난 우주에 대한 사진으로 비유해서 말입니다. 후후후.


p.405

저자가 런던의 물리학도 였던 때, 교수 중 한 명이 '박사과정 중인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 대학원생'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답니다. 브라이언 메이라는군요. 그 두 장 뒤에 정체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Q로 시작하는 모....




책 자체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맨 마지막 장은 물리학이 아니라 그걸 넘어선 무언가를 보는 듯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입증된 이론은 아닐 거라고 봅니다. 음, 제게는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운 세계입니다. 4차원도 어려운데 10차원, 11차원을 이야기 하면 힘들어요!

하여간 맨 마지막의 각주까지도 꼬박꼬박 읽으면 참 좋은데, 각주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결국 각주라서 안 보게 되는군요.

오타를 감수하고서라도 한 번쯤 읽어볼 책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걸 얼마나 이해하느냐는 별도의 이야기지요. 하하.



크리스 임피.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이강환 옮김. 시공사, 2013, 19000원.


진짜 저런 오타만 아니면...-_- 아니, 오타와 오기를 발견할 때마다 잠이 깼으니 도움은 된 건가요.


덧붙어 『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이 도로 읽고 싶어졌습니다. 집에 없는 것이 아쉽지만 도서관에서 찾아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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