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병팔, <늙은 여우를 단칼에 베다>, 더불어책, 2003
이 책의 내용은 단 한 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一瞬電光刺老狐 한 순간에 번개같이 늙은 여우를 베었다
늙은 여우라니까 구미호라든지 아니면 추한 여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지요? 이 한문 구절은 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 시해의 주역이었던 도오 가츠아키(藤勝顯)가, 명성황후를 시해할 때 쓴 칼집에 새겨져 있습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실테니 넘어갑니다.
이 책은 저자가 일본 지역 중에서도 큐슈를 중심으로 하여 한국의 역사가 남아 있는 동해안쪽 지역의 여러 도시를 돌아보며 한국 역사의 발자취를 사진과 글로 모은 책입니다. 어느 블로거의 글에서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에 명성황후를 시해할 때 썼던 검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때 언급된 이 책을 도서관에 주문했습니다. 어제 단숨에 다 읽었고요.
불편한 책입니다.
역사의식이랄까, 그런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주로 쇼핑(...)에 몰두하여 도쿄만 여러 차례 다녀왔는데, 다음에 일본에 간다면 오사카나 교토보다 이쪽을 먼저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것고 이 책 때문입니다. 검 뿐만아니라 명성황후를 모델로 만들었다는 관음상도 보고 싶습니다. 검은 일반 공개가 안된다 하지만 관음상은-처음 도오 가츠아키가 만든 것은 구리로 되어 있었으나 전쟁 당시 징발되었고 이후 일찍 죽은 딸을 위로하기 위해 어느 부부가 시주한 돌관음상이 남아 있습니다-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거기에 윤동주 시인이 죽었다는 그 후쿠오카 형무소도 꼭 가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이전한데다 구치소로 변경되어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같은 것이니까요. 한 번도 이런 곳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부끄럽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불편한 책입니다.
후쿠오카 외에도 백제시대부터의 일본 교류와 관련된 지역, 조선통신사 행렬과 관련된 지역,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 등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일본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이라면 가기 전에 한 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