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이런 책만 골라 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평소라면 손 안 댈 책인데, 랜드스케이프를 언급했다기에 호기심이 들어 구입했습니다. 실제로는 랜드스케이프 자체보다는 마을의 중심부를 어떻게 설계하고 꾸며야 마을 스스로 움직이고 활성화 동력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편지대담입니다. 부제를 보면 그 내용이 확실합니다. 건축가 이누이 구미코와 커뮤니티 디자이너 야마자키 료의 참여 디자인을 둘러싼 왕복 서간.


그러니 그냥 건축학 관련 책이 아니라 사회학, 그것도 요즘 한국에서도 뜨는 마을 공동체와 관련 있는 책이라 하겠습니다. 괜히 읽었어요. 오히려 궁금증과 의문, 알고 싶은 것만 쌓이고 제대로 풀린 것은 없더라고요. 흑흑흑.


미야자키현의 노베오카 시에서 마을 재정비를 위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거기에 참여하는 이누이 구미코(건축가)와 야마자키 료(디자이너)는 서로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건축과 관련한 이야기, 사회학, 그리고 여러 공동체의 사례나 다른 곳의 건축 디자인까지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물론 그 간 오간 이야기는 이것만이 전부는 아닐 겁니다. 보면 편지 사이사이에 실제 얼굴을 맞대고 프로젝트를 위해 대화했다는 내용이 있으니까요.

마을 재정비가 뭔가 싶은 사람들도 있을 텐데, 한국에서도 종종 이런 정비는 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은 망한 창동역. 그 앞서 있었던 용산역 등등의 사례 말입니다. 다만 이건 코레일이라는 공사를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이고 실제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거나 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 외에라면 아마도 용산가족공원이 있겠네요. 국립중앙박물관이 종로구에서 용산구로 이사갈 당시, 박물관 부지와 마을 주민들의 공원이 충돌하면서 상당한 반발이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그런 것을 조율하는 것도 약간 마을 디자인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서울은 관의 입김이 세기 때문에 아무래도 마을 자치회를 중심으로 한 마을 정비나 디자인은 나오기 어렵고, 소수의 인물들이 모여 뚝딱 해치우는 형태가 되기 쉽죠. 오히려 시골에서 마을 자체적으로 뭔가 일신하려고 할 때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만.

노베오카 시의 사례나 여기서 소개하는 마을 디자인은 오히려 명탐정 코난에 등장하는 베이커 마을의 사례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자치단체의 입김이 세고, 따라서 자치단체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마을 토박이들의 입김이 세고. 그 때문에 마을 정비가 들어가면 반상회나 아파트 입주회 등의 여러 모임을 통해 여론을 수집하고, 다시 마을에 새롭게 들어서는 건물에 대한 의견을 종합하고. 새롭게 정비하려는 시장이나 상가의 모습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대강 그런 분위기겠지요. 한국에서는 그런 적극적인 참여 분위기가 나오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만... 찾아보면 사례는 나올 겁니다. 마을 공동체와 관련한 연구가 00년대 이후 꾸준히 나오고 있으니까요.



하여간 책을 읽으면서 졸기도 했지만 관심두면서 본 곳도 많습니다. 막판은 거의 날림으로 보았지만 그래도 메모한 부분을 찾아 정리해봅니다.



p.44-45

'주민 참여로 설계를 진행하면 디자인의 질이 낮아진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합니다. (중략) 그러니까 완전히 반대죠. '주민의 의견을 들었으니까'가 아니라 '주민의 의견을 들었는데도' 이렇게 평범한 디자인이 나오다니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한가, 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봅니다. 하하하하하;ㅂ;



p.091

'이론은 훌륭하지만 모양을 갖춘 순간 실망한다'는 것. (중략) 다른 건축가가 제시하는 미래상과 그 구체적인 형식에서도 공통되는 부분이지요.


건축물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이론에서도 종종 보이지 않던가요.



p.106

하지만 시민에게 마을 이미지에 대해 물으면, 아무래도 건축물의 색이나 형태 이야기로 연결되기 쉽거든요.(중략) "노베오카는 물과 산과 공장의 마을이니까, 청색과 녹색과 초록색의 건물로 했으면 좋겠어요"하는 식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44-45쪽의 이야기와도 연결됩니다.



p.124

'아름다운 풍경'이란 랜드스케이프 디자이너가 마을을 디자인하는 것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죠.(중략) 랜드스케이프 디자이너는 보통 되도록 낙엽이 떨어지지 않은 벤치를 디자인해달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 결과 공원에는 상록수만 심고 노숙자들이 잘 수 없는 벤치를 디자인하게 되는 거죠.(중략) 주민의 불평에 대응하다 보면 다른 일은 할 수 없게 됩니다. (중략) 이러다 보니 '낙엽수는 심지 말 것', '가로수 그루 수는 되도록 적게', '벤치는 잘 수 없는 구조로' 등의 주문이 나오게 됩니다.


그 뒷부분에는 그래서 지역 주민들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풍경에 대해 공감대를 가지고 어느 정도 불편한 것을 감수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커뮤니티 의사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낙엽수와 벤치.. .. .. 현실적인 예시에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더 와닿습니다. 허허.



200쪽에서 언급된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은 재미있네요. 목적지와 그에 따른 시나리오를 준비하되, 항상 네 종류를 준비하여 상황이 변해도 다른 시나리오로 대치하는 방법이랍니다. 특정 상황에 대해 종축과 횡축이 되는 기준 문장을 잡고 OX의 상황을 만들어 총 네 가지를 만드는 겁니다. 의식적으로는 아니지만 무의식 적으로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항상 마음 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의식적으로 만들어 두면 그게 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272쪽에는 '가능한한 장래에 일어날 법한 일을 상정하고 리스크를 피하는 방법론을 구축하면서 진행하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바이벌일지 모르지만 실제 그런 상황도 필요합니다. 끄응.;



p.242 "사람이 적을 때에도 쓸쓸하지 않은 장소였으면 좋겠다." 그런 장소는 저도 참 좋아합니다. 나무가 많고 밝은 장소에서의 호젓한 분위기. 사람이 적어도 아늑한 장소.



250쪽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전공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어찌보면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커뮤니티 디자인의 전문가는 사실 건축보다는 다른쪽의 전공을 하고 와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겠지요. 하지만 건축적 배경 지식이 있어야 그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고 설계하는 것이 쉽지 않을까요. 아니면 다른 전공을 배우고 다시 건축 전공을 배우는 것이 나을까요. 최소한도의 배경 지식은 가지고 있는 것을 선호하지만 자칫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차단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어렵습니다.



이누이 구미코, 야마자키 료. 『작은 마을 디자인하기』, 염혜은 옮김. 디자인하우스, 2014, 15000원.


p.074. 개인 주택은 건물주와 대화를 나누며 설계를 진행하면 되겠지만~ 이라고 번역했는데 보통 건물주보다는 건축주라고 쓰지 않던가요? 건물주와 건축주는 전혀 다릅니다만, 이 경우에는 건물주가 아니라 건축주라고 하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왜 이 책을 빌렸는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출판사를 확인하는 순간 납득했습니다. 읽는데 오래걸렸지만 읽을만 했습니다. 두뇌를 자극하는 재미있는 책이더군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