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은 감정을 교류한다는 뜻이 아니라 교차감정을 말합니다. 다른 부분은 무리없이 보았는데 JAL 123편의 추락사건에 대한 기록 부분이 이전에 읽었던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의 분위기와 사뭇 다릅니다.
책 저자인 오시다 시게미는 일본의 법의학자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그간 겪었던 여러 법의학 공방들 중에서 주요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책 표지에 아예 '40년 관록의 법의학자가 말하는 법의학 현장의 진실'이랍니다. 솔직히 읽으면서는 작가 본인의 자랑 위주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건 강단에 오래 선 교수가 으레 자기 이야기를 풀다보면 결국 자기 자랑으로 흘러가는 것과 비슷하고, 실제 본인이 한 일들을 보면 자랑해도 무리 없을 수준입니다. 본인이 했음에도 인정받지 못했다고 언급하는 부분도 여럿 있는데... 음...
책은 크게 4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살인사건의 부검이나 증거 확인 등을 다루고, 두 번째는 DNA 검사, 세 번째는 대형 재난에서의 문제, 네 번째는 의료과실 이야기입니다. 살인사건의 증거를 확인하는 도중 흉기와 상흔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이야기는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칼로 찔렸을 때, 긁혔을 때, 타박상일 때의 상처 모양은 단면도(?)와 표면이 전혀 다르지요. 그걸 구체적인 그림과 함께 실어 놓았는데 판형 때문인지 픽셀이 깨진 것은 아쉽습니다. 전문서적은 아니므로 이런 부분은 전문서적을 참고해야할 겁니다.
DNA 검사는 CSI에서 참 많이 보았고요.
가장 흥미가 갔던 것은 세 번째입니다. 비행기 추락사고에서의 신원 확인 문제인데 앞에 언급한 것처럼 여기서는 상당수의 시신을 인도했다고 나오지만 바로 얼마 전에 읽은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에 언급된 바는 조금 다릅니다. 막판에 신원 미상의 시신을 모두 화장하고 그 유골을 1/n으로 나눴다고 보았거든요. 시신 조각을 조금씩은 다 얻었을지 모르지만 나머지 확인할 수 없는 부위는 그랬던 모양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당시 사이타마현에 근무중이었기 때문에 군마현 담당이었던 그 당시 주무 지자체는 아니었을 거지만 양쪽 책을 비교해 읽어보면 같은 사건을 두고 사건 담당자와 유족들의 온도차가 상당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대형 재해에는 한신대지진도 포함됩니다. 고베를 중심으로 일어난 대지진 때는 의외로 부검이나 검시관들이 나설 일이 드물었답니다. 지진 발생 시각이 새벽이라 대부분이 자택에서 사망했다더군요. 덕분에 길거리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고 하고요. 그러면서 간토 대지진이 일어났을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저자는 도호쿠 대학 교수입니다. 책은 2010년에 나왔고요. 그리고 그 몇 년 뒤에.. (하략) 개인적으로는 도호쿠대지진의 기록이 나온다면 그것도 굉장히 의미있을 거라고 봅니다. 나온다면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전문용어가 나오긴 하지만 CSI나 NCSI를 즐겨 보던 사람이라면 무리 없이 읽어내릴 수 있는 수준입니다. 저야 모르는 것은 건너 뛰고 보았고요. 거꾸로 말하면 전문적인 내용은 많지 않은 편입니다. 게다가 한 에피소드가 굉장히 짧은 편이고 일본의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어떻게 좀 안 될까요』에서 여검사와 남변호사의 결혼식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거기서 '자영업자와 공무원의 결혼이니까'라며 웃으며 말하는 검사가 아주 인강깊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법체계의 지나친 경직성과 미덥지 못한 일처리는 공무원이기 때문에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렵니다. 그래도 아주 많이 심하네요. 무죄 판결이 난 시점이 16년 복역 마치고 난 뒤였다니. 하하하하하.. 그런 사례가 한 두 건이 아니더군요. 심지어는 재심 들어가려는 움직임이 있자 바로 사형집행한 사례도 있더랍니다.
오시다 시게미. 『법의학 진실을 부검하다』, 김혜민 옮김. 바다출판사, 2015,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