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라 개인지 감상은 거의 하지 않지만 이번이 특별한 경우인 것은 이 책이 지금까지 구입한 개인지와는 조금 궤를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매우 마음에 들지만 편집을 포함한 개인지 자체의 물리적 속성은 엉망입니다. 그래서 감상을 안 쓸 수 없었지요. 이런 글을 쓰면 혹시라도 나중에 검색할 작가님-보석젤리님은 마음 아파하시겠지만 안심하세요. 두 번, 세 번 강조하지만 내용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하하...;ㅂ;



5월의 눈은 중의적 표현입니다. 이는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의 단어고, 원래는 Eyes of May거든요. 5월의 눈이라고 하면 5월 달에 내리는 눈(雪), 5월의 눈동자(目)이라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영문으로 보면 중의적 표현의 대상은 눈이 아니라 May가 됩니다. Eyes of May는 마법사의 특이 능력 중 하나로, 불가능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모든 상황을 50%의 확률로 바꿉니다. 그래서 may인 거죠. 그걸 말장난처럼 바꿔 놓은 것이 5월의 눈입니다. 그리고 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법사 마리아쥬 프레르고요. 본명은 따로 있지만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다른 이름을 사용하다보니 주인공 마리(한사라)도 마리아쥬 프레르라는 이름을 씁니다. 아마 아주 익숙한 이름이다 싶은 부분이 있을 겁니다. 후후훗.


이 소설은 『스타워커』에 이어지는 이야기이고 앞부분은 『스타워커』의 주인공인 인하와 카엔이 등장합니다. 왜 평범한 대학생이던 인하가 판타지 세계인 이세계로 넘어가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사랑에 빠진 인하가 그 쪽 세계로 돌아가길 원했다른 겁니다. 원래는 세계에 난 구멍을 막기 위해서 짧은 기간 동안만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것이었는데 거기서 짝을 만난거죠. 그래서 기한이 지나고 돌아왔을 때 당장 돌아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거기에 증표로 단검을 두고 옵니다. 마리의 동료이자 역시 강력한 마법사인 소이가 만들어 인하에게 잠시 빌려준 중요한 단검을 말입니다.

어차피 찾으러 가야하니 안 갈 수는 없고. 하지만 같은 세계를 두 번 가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마력도 많이 소모되고요. 굳이 표현하자면 『델피니아 전기』에서 등장했던 것처럼 커다란 강에서 특정 물고기 한 마리를 낚시로 잡아 내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거기에 다녀온 인하가 있고 소이의 마력이 담긴 단검이 있어서 마력을 모으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소이에게는 강력한 행운이 있고 마리에게는 Eyes of May가 있으니까요.



여기까지가 서문에 해당하고 본편은 그렇게 다른 세계로 건너간 마리가 연애하는 내용입니다.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 때문에 반쯤은 붕 떠 있는 것 같이 마음을 못 붙이고 있던 마리는 여기서 루크를 만납니다. 공작 후계자이자 인하의 연인인 카엔과도 절친한 사이이고, 영지도 이웃한 사이라 마리는 신혼부부를 두고 여기서 손님으로 머뭅니다. 그리고 거기서 약혼자 넷을 잃어야 했던 루크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려 하지요. 아무래도 마법사들은 호기심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특이한 저주가 눈 앞에 있으면 풀려고 노력할 것이 뻔합니다. 그렇게 본편이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 이건 연애담이긴 한데, 연애담에 얽힌 사건들이 대부분 황위계승과 얽혀 있고, 마법사들이 이쪽 세계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과도 또 이어지기 때문에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무엇보다 지구에서건 루크네 세계에서건 강력한 마법사인 마리와, 제국에 단 둘뿐인 공작가의 후계자이며 3단계로 나뉜 기사 등급 중 가장 높은 트라카인 루크의 조합이다보니 적들에게 당할까 마음 졸이는 일도 없습니다. 마비노기로 표현하자면 굇수와 굇수의 조합이니 어떤 퀘스트건 문제없이 싹 다 클리어 한다는 겁니다.=ㅁ=

거기에 여주인공인 마리는 당당하고 솔직한 성격이라 직구를 던집니다. 고백을 할 때도 어떻게 대답할까 끙끙대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이런 여자주인공은 참 오랜만에 봅니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당당하게 서 있으니 속 시원하게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읽는 조아라 소설들이 대부분 속터지는 내용인데다가, 주인공이 강해도 상황이 꼬이다보니 읽는 사람의 속도 꼬이는 경우가 많아 더 그랬습니다.



그래서 내용은 아주, 매우,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문제가 되는 건 편집이지요.ㅠ_ㅠ;


앞서 언급했듯이 아래아한글과 같은 워드 프로그램으로 편집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혹은 그렇게 했더라도 인쇄 편집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겹따옴표나 홑따옴표가 모두 1바이트로 잡힌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는 보통 0.5바이트로 반칸을 차지하거나 하는데, 이게 한 칸을 차지합니다. 원고지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실 텐데, 보통 책을 만들 때 이런 문장부호들은 글자와 함께 움직이거나 반칸만 차지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모두 원고지 한 칸을 차지합니다. 그리 되면 따옴표를 사용한 대화는 일반 문장보다 한 칸 더 들어갑니다. 다른 책과 다르면 눈에 걸리기 마련입니다. 하하하..


그리고 폰트는 어떤 것을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신명조는 아니고 바탕체 계열의 폰트입니다. 읽는데는 문제가 없으나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인쇄가 흐리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야 인쇄가 흐린 것이 아니라 폰트의 획이 가늘어서 흐리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건 확신이 없네요. 요즘 안경 문제로 고생중이라 더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여간 처음 보았을 때 글씨가 흐리게 보인다는 점, 약간 답답해 보인다는 점도 걸립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오타와 오기입니다. 150쪽까지 읽었을 무렵,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포스트잇을 꺼내들고 잘못된 부분에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맨 뒤의 후기를 빼고, 본문만 370쪽인데 160쪽부터 붙여 나가면서 총 16곳을 체크했습니다. 잘못된 조사, 오타, 문장 반복 등의 단순 오류입니다. 누군가 한 번 검수를 했더라면 다 잡아낼 수 있는 부분이었지요. 솔직히 말하면 분노했습니다. 개인지로 만든다는 것이 단순한 작업은 아닐 텐데, 그렇다면 소설을 쓰고 한 번도 퇴고하지 않은 채 그냥 인쇄소에 맡긴 걸까요. 하하하.



그래도 내용이 워낙 마음에 들었으니 넘어갑니다.(먼산)


덕분에 책의 편집이 어떻든, 퇴고가 어떻든 간에 소설이 마음에 들면 다 묻힌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외전 특전이었던 루크의 고양이 귀는 정말로 최고였으니까요. 귀여워서 뭐라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단점은 다 덮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걸 보고 콩깍지가 씐다고 하나 봅니다.


시작부분이나 책 본편에 등장하는 내용을 보면 전작인 『스타워커』에서는 주인공 인하가 엄청나게 고생하는 것 같아 읽을 용기가 안납니다. 그러니 나중에 『5월의 눈』이 전자책으로 나오면 그것만 덥석...'ㅠ'; 하여간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보석젤리. 『5월의 눈(Eyes of May)』. (개인출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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