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읽은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와 『조용한 전환』은 전혀 다른 사건에 대한 두 기록을 담은 책이지만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세월호 사건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제목이나 소개글만 봐서는 아닐 것 같지만 읽다보면 연관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있습니다.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는 한국어판 저자 서문에서 세월호 사건을 언급합니다. 이 책은 1988년에 일어난 JAL 123편의 추락 사고 이후 대형 참사를 당한 유족들을 만나 인터뷰 하여 유족들의 정신적 충격과 행동들을 유형별로 분류해 소개하고, 대형 참사 뒤의 여러 문제점을 다룹니다. 부제로 나오는 '대형 참사 유족들의 슬픔에 대한 기록'이 딱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사건을 한국어판 서문에서 상당히 길게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군요.
『조용한 전환』은 3.11 도호쿠 대지진 재해를 전후하여 일어난 와카모노=젊은 세대들의 변화와 활동을 다룹니다. 저자가 원래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이기 때문에 한국의 사례가 많이 등장합니다. 일부는 동의하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은데, 하여간 읽는 동안 세월호 사건과 연관지어 고민할 내용이 상당히 많더군요.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건은 사건 자체보다 그 뒤에 벌어진 다툼들 때문에 관심이 달아났습니다.

세월호의 침몰은 한 학교 한 학년의 거의 모두가 사망했다는 것 때문에 비극성이 강화되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면 보통의 침몰사고로, 관련자의 문책과 경질, 그리고 그에 따른 후속 조치로 넘어갔을 겁니다. 오히려 어린 학생들의 많은 수가 사망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목소리가 더욱 컸고, 그 때문에 뒷 수습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감시와 항의도 소홀했다고 생각합니다. 뭐, 후속조치가 허술했다는 것은 사건이 일어난 직후부터 그 뒤로도 내내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상위가 무능력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보니 사건이 발생한 뒤 1년이나 지났음에도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과적에 대한 문제(안전불감증, 관행), 그리고 그에 대한 감시 소홀(공무원 문제)이 문제죠. 그 와중에 여객선의 노후 문제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차와는 달리 배는 꽤 오래 쓴다고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관리죠. 제대로 관리 안한 2년 된 차는 꼼꼼하게 관리 잘한 10년 된 차만도 못할 것이고, 이는 배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연령보다는 개조와 훌륭한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거죠. 따라서 일본에서 수명이 끝나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배를 치워버리라고 한다면 지금 현역으로 뛰고 있는 노장 유람선과 여객선들이 억울할겁니다.

(새 배를 수주해야 해운 여객업에 뛰어들 수 있다면 웬만한 자금력으로는 무리겠지요. 영세 여객업자들의 타격이 클겁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는 읽다가 도중에 포기했습니다. 절반까지는 읽었는데 읽다가 몇 번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통에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내려 놓았습니다.

참사가 일어났을 때의 반응도 사람마다 각양각색이고, 그에 대한 상처와 후유증도 제각각입니다. 하지만 그 아래에 깊은 슬픔과 절망이 깔려 있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배우자의 상실은 상상을 초월한 스트레스를 가져오지요. 게다가 갑작스러운 상실이니 더더욱 그렇고요. 그 사례들을 인터뷰한 여러 사람의 사례로 풀어 놓는데...

JAL123편의 추락으로 520명 탑승 중 3명만 살아 남았고, 나머지는 전원 사망이며 시신을 돌려받지 못한 사람도 상당히 많고 시신을 받은 사람도 부분 시신만 받거나 완전히 파괴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훼손된 시신을 받습니다. 아직 컴퓨터라는 것이 제대로 활용되기 전의 상황이라 유류품에 대한 확인이나 시신 확인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지요.
JAL의 대응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3.11 사태의 도쿄전력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읽으면 혈압 오르니... 사건 개요는 엔하위키 미러쪽의 항목 참조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엔하위키는 지금 내전 중이라 제대로 안 돌아갈겁니다.(...)

어쨌거나 시신 한 조각이라도 찾기를 원하는 유족의 마음이 어떠한지는 여기서 보고 알았습니다. 솔직히 세월호를 인양한다 한들 그 안에서 시신을 찾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마지막 모습을 보고 보내주고 싶어하는 유족의 마음이, 이 책을 읽고 나니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더군요. 이전에도 그런 마음을 몰랐던 것은 아니나 사례를 들어 확실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사뭇 다르더랍니다. 설득력이 있어요.


『조용한 전환』은 상당히 독특한 책입니다. 교육공동체벗이라는 곳에서 출판을 했지만 개인출판에 가깝지 않을까 싶더군요. 책 맨 뒤에 교육공동체벗을 후원하는 사람들의 명단이 실려 있었거든요. 시민단체 혹은 모임에서 나눠 번역하고 책으로 출간한 것인가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번역자 이름은 따로 없고 기획자만 나옵니다. 이 책 자체가 일본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되었을 가능성도 조금 있지 않을까 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네요.
이 책은 3.11 대지진 이후에 일본 사회에서 내부적으로 조용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에서 시작합니다. 정확히는 그 전에도 있었던 사회 운동이 3.11을 기점으로 가시적으로 드러났다는 거죠. 그 움직임들을 주로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다루며, 이들을 역사적, 경제적, 사회적 맥락에서부터 짚어 나가 분석하여 이들의 새로운 경향과 조류를 보여줍니다. 덕분에 90년대 버블 경제 이후의 일본 젊은 세대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젊은이론은 안 읽습니다. 지금 나이는 젊은이라 하기에는 어중간하지만, 어쨌건 남이 나에 대해 개략적으로 쓴 이야기 읽어 뭐하나요. 난 아닌데 소리 밖에 더 나오나. 같은 맥락에서 일본의 젊은이론도 챙겨본 적이 없습니다. 책을 안 읽어도 신문에 여러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까요. 저자도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사회적 변화가 빨랐던 만큼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의 세대차가 상당하며 그것도 변혁에 따라 또 세대별로 다른 별칭을 붙인다고요.
(그렇게 본다면 요즘의 세대는 뭐라 부르나요? X세대부터 시작해 내내 무슨 세대라고 부르더니만 요즘에는 안하는 것 같습니다.)


책 끝부분에 등장하는 일본의 취업 방식, 신졸일괄채용이라는 것도 한국과는 많이 다릅니다. 새내기가 아니면 취업하기가 쉽지 않은 건 한국도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일본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합니다. 대학교 4학년 때, 3월부터 시작해-일본 새학기는 4월 시작이지요-취직활동에 들어가면 열심히 원서를 내고 통과한 곳에 가서 면접을 몇 번이고 봅니다. 한 곳에서 여러 번의 면접을 보고, 한 번에 여러 곳에 응시하기 때문에 4학년은 그야말로 면접대란이 되겠더군요. 만약 이 시기를 놓쳐 취업하지 못하면 아예 취업할 기회가 끊깁니다. 회사는 항상 신졸,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만 모집을 하기 때문에 한국의 사례처럼 몇 번이고 다시 응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모양입니다. 게다가 스펙을 기준으로 삼는 한국보다 어쩌면 더 골치아픈 것은 뽑는 기준이 딱히 있는 것 같지 않다는 겁니다. 떨어진 이유를 모르고 그게 또 당사자들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기도 하고요.

이에 대한 반발도 3.11 대지진 이후의 움직임으로 등장한 모양입니다.


나름 재미있다 생각한 것은 후쿠시마 원전과 관련한 이야기였습니다. 맨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데, 원전사고 이후 사회운동가들은 탈원전을 부르짖습니다. 하지만 정작 후쿠시마 지역 사람들은 탈원전을 바라지 않았지요. 원전과 관련해서 수많은 일자리가 발생하고, 후쿠시마 원전에 취직해 거기에서 도쿄전력 높은 곳까지 승진하는 것이 도쿄에서도 꽤 먼 시골지역(?)인 후쿠시마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취직이었다는 겁니다. 동상이몽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하여간 그런 현지와 외부의 다른 생각들과 함께, 현재 방사능으로 오염된 후쿠시마 지역에 대한 관광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의 문제는 있지만, 이미 체르노빌도 운영하고 있지요. 『체르노빌의 봄』도 그렇게 나온 것 같은데, 그 쪽에서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둡습니다. 대신 이 책에서 읽는 체르노빌 관광상품은 나름 밝은 분위기로 보이는군요.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인 것 같긴 합니다.

이걸 보면서도 세월호를 인양하게 되면 그걸 그냥 보낼 것이 아니라, 어딘가 항구에 정박시켜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교육 소재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꾸로, 이게 수학 여행 대상이 되는 거죠. 안전불감증에 대한 반성, 그리고 직업의식의 부재에 대한 반성. 말을 잘 들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말을 잘 들은 아이들이 죽은 그 상황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반성. 수 많은 반성과 다짐의 장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여간 이모저모 생각이 많은 책이었습니다. 『조용한 전환』은 번역에 대해 조금 불만이 있었는데, 첫자리에 오는 자음을 ㄱ과 ㄷ으로 표기하는 것은 좋지만, つ를 모두 츠로 표기했더군요. 읽는 내내 조금 걸렸습니다. 케이는 게이로 부르면서 마츠모토는 왜 마쓰모트가 아닌 거죠. 하하하. 하여간 책도 그리 길지 않으니 가볍게 읽을만 합니다.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지만 저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노다 마사아키.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 대형 참사 유족의 슬픔에 대한 기록』, 서혜영 옮김. 펜타그램, 2015, 17000원.
후쿠시마 미노리. 『조용한 전환: 3.11이 열어 준 가능성의 공간들』, (번역자미상). 교육공동체벗, 2015.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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