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를 둘러보다가 집어 들었습니다. 연구에 몰두하여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는 어느 연구자의 이야기를 다룬 모양인데 호기심에 들고 왔지요. 작가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그 작가라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하기야 그 책도 제목만 듣고 손대지 않았는데... 전작이 괜찮았다고 했으니 괜찮겠거니 하고 빌렸습니다.



(라고 적고 수정.; funnyfunny님의 댓글 보고서 깨달았네요. 다른 작가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모리 히로시는 『모든 것이 F가 된다』,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의 작가입니다. ... ... 앞의 책을 적어 놓고 보니 왜 비뚤어진 결말이 나오는지 대강 이해가 갑...(응?))


80% 읽을 때까지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10%가 문제였습니다. 그 마지막 10% 때문에 책에 대한 감상평이 확 하락했네요. 왜?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랍니다.



이야기는 1인칭 관찰자 시점에 가깝습니다. 나는 수학을 상당히 좋아하고 수준이 높습니다. 그리고 수학 성적이 높을 경우 진학하기 쉬운 학교에 맞춰 진학하고, 대학교 4학년 때 논문을 쓰기 위해 강좌에 들어갑니다. 사람이 적은 모리모토 강좌에 들어가서는 모리모토 교수가 아니라 그 아래 조교인 기시마 선생에게 지도를 받기로 합니다. 하지만 조수(지금의 조교)에 해당하는 기시마 선생은 잠시 미국에 가있는 터라 그 동안은 기시마 선생의 제자에 가까운 나카무라에게 직접 지도를 받는 상황이 됩니다. 나카무라는 박사과정 학생이고요.


기시마 선생을 만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립니다. 하지만 만나고 나서는 둘이 궁합이 잘 맞아 함께 연구를 진행합니다. 에니악은 아니겠지만 하여간 그와 유사한 대형 컴퓨터(계산기)를 이용해서 계산을 하는데, 미리 프로그램을 짜고, 계산기에 입력하고, 그 결과를 확인하고, 수정하고. 그리고 이후에는 단말기를 사용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런 작업과 연구를 반복하는 와중에 학부 졸업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다시 박사과정에 진학합니다. '나'는 연구만을 생각하는 기시마 선생에게 감화되고 존경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살짝 로맨스가 끼어 들어갑니다.


하지만 나와 기시마 선생은 다릅니다. 연구만을 추가하는 기시마 선생과는 달리, 나는 결혼과 함께 다른 길을 걷습니다. 천상 연구자의 길도 있지만, 만약 연애를 하지 않았다면 그 길을 갔겠지만 결국 일반적인 교수로의 길을 갑니다. 그 와중에 기시마 선생은 많은 연구를 하지만.....



아마도 연구를 접었거나 혼자만 연구를 하고 있거나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화자인 하시바가 교수가 되었고 같은 학문을 하고 있으니 학회에서 만날 일이 많았을 겁니다. 근데 왜? 기시마 선생이 나중에 결혼을 했다는 것도 친구들을 통해 듣긴 하지만 직접 만나는 일은 없습니다. 왜? 학회에서 만날 일이 없었다는 것은 기시마 선생이 논문 발표를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하시바가 교수인 이상 계속해서 연구 실적을 내야하고 학회의 발표를 주도하는 일은 계속되었을 겁니다. 기시마 선생을 만날 수 없었다는 건 기시마 선생이 더 이상 그런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는 걸로 읽힙니다.

무엇보다 맨 마지막 10%에 해당되는 부분에서 결혼은 둘째치고 '**의 **가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 같더군요. 연구만 해서는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아니면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은 그런 평범한 일상과는 다른 길을 가야한다고 하는 건가요. 아니면 기시마 선생과 대비해서 일반적인 길을 걸었던 하시바를 강조하고 싶었던 건가요. 결론에서 기시마 선생의 삶이 그리 행복하거나 조용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 넘겨 짚은 걸까요.



마지막 10% 때문에 책에 대한 모든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결국 마음은 차갑게 식었네요.





모리 히로시. 『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 홍성민 옮김. 작은씨앗, 2013, 12500원.



마지막의 10%만 제외하면 그 때까지는 참 괜찮았습니다. 하시바가 박사과정 마치는 부분까지는 읽을만 하니 추천합니다. 그 뒤를 읽고 나서의 판단은 ...

80-90년대에 전산학과나 유사학문을 했던 사람, 혹은 그 쪽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수학 전공하시는 분도 흥미롭게 보실 것이라 보고요. 그리고 연구직에 있는 분들께도 추천합니다. 하지만 아주 많은 기대는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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