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관 살인사건은 아마 이번이 세 번째로 읽는 걸 겁니다. 이전에 읽을 때는 덜 느꼈는데, 이번에는 읽는 내내 번역자에게 감사하는 마음만 들었습니다. 이런 짜증나고 현학적인 이야기를 번역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까 싶더군요. 심심하면 밀교, 비의, 철학, 신학 등등의 잡다한 것들을 몽창 밀어 넣고 섞었거든요. 앞의 두 번은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책으로 보았는데 이번은 북로드에서 나온 책입니다. 판형이 다른 일본 추리소설보다 큰데, 내용도 상당히 많습니다. 게다가 소설로서는 드물게 삽화도 있고요. 그 삽화가 아마 원작 삽화일 건데, 분위기를 아주 잘 살려줍니다. 어렸을 적 추리소설에서나 보았을 그, 선 굵은 목판화 그림. 이게 으스스한 책의 분위기를 잘 살립니다.

세 번이나 읽었음에도 범인이 누구인지 홀랑 잊었습니다. 대강 누구였던 것까지는 이해했는데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는 까맣게 잊었더랬지요. 그래서 막판의 사건들을 보고서는 헛웃음만 지었습니다. 세 번째인데 왜 이래!

결국에는 미친 학자(...) 때문에 이 모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싶더군요. 그러니까 실험을 시작한 놈도 미친 것이고, 실험을 설계한 놈도 미친 겁니다. 우생학이나 유전자 지도 역시 마찬가지잖아요.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뭐할 가능성이 높다거나 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어디서나 예외는 있습니다. 그래서 생물학이 더 재미있는 것이고요. 괜히 퍼센티지로 이야기하고, 확률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일반화 시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이야기라니까요.

결국엔 탐 크루즈가 주연했던 모 영화의 이야기를 과거의 버전으로 재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하하하하.


현학적이고 탐미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면에서는 파일로 밴스를 앞섭니다. 파일로 밴스의 이야기는 그래도 알아 들을 수 있는데 노리미즈와 그 주변 사람들의 대화는 못 알아듣는 것이 태반입니다. 서당개 생활 3년이면 여기 형사님처럼 대강은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그 전에 저는 이런 친구랑은 같이 못 놀 것 같지만 말입니다.



커다란 숲의 자그마한 밀실은 단편집입니다. 앞서 올린 밀실 살인과 같은 작가고요. 이건 다양한 종류의 살인사건을 주제로 쓴 단편을 모아 놓았습니다. 어떤 것은 코믹이고, 어떤 것은 밀실이고, 어떤 것은 SF입니다. 재미있기는 하나, 뒤로 가면 갈 수록 취향에 안 맞는 이야기가 많더랍니다. 일부러 그렇게 쓴 것으로 보이던데, 그래도 제 취향 아닙니다. 고이 덮어서 내려 놓았지요. 하하.; 그래서 두 권을 함께 묶어 리뷰를 올리는 겁니다.'ㅂ'; 아마 다음에도 이 작가 책은 안 볼 것 같습니다. 두 권 모두 미묘하게 취향에서 벗어났으니까요.



오구리 무시타로. 『흑사관 살인사건』, 김선영 옮김. 북로드, 2011, 13800원,

코바야시 야스미. 『커다란 숲의 자그마한 밀실』, 최고은 옮김. 북홀릭, 2012, 1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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