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빌리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같은 작가의 『엠브리오 기담』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옆에 꽂힌 책을 보고는 호기심에 집었던 겁니다. 퇴근 길 버스 안에서 꺼내 들었는데 단편집이고 연작도 아니라서 읽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일곱 번째 이야기까지 읽고 나서는 책을 도로 집어 넣었습니다. 생각 가아서는 던지고 싶었는데 제 책은 아니니까요. 굉장히 뒤끝이 안 좋은 소설입니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다른 것보다 재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거나 가라앉았거나 뒷맛이 안 좋은 소설은 잘 안 봅니다. 한국 근대소설을 안 보는 이유도 동일합니다. 아리랑도 3권까지인가 보았지만 그 뒤로는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대강 손에 잡히다보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더군요. 골치 아픈 것은 인문 사회 과학 서적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 소설은 뒤끝이 안 좋은 소설입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이야기. 야마노테선을 타고 돌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방을 놓고 내리기를 기다려서는 기회를 보아 놓친 가방을 들고 내립니다. 현금만 꺼내고 가방은 폐기. 다시 말해 도둑인겁니다. 이 여자가 그렇게 된 계기는 첫 직장에서 실패하고 차츰 내리막길을 걷다 그런 것인데, 결국에는 우는 걸로 끝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동거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 이것도 뒷맛 안 좋아요.

세 번째 이야기는 결혼식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결혼하기 직전 남자친구가 식장에 있는 걸 발견합니다. 결혼하기 직전까지 저울질 하다가 도쿄대 나온 남자를 고른 터라 다른 친구에게 옷 갈아 입는 사이 하소연을 했는데, 그걸 신랑이 듣습니다.

네 번째 이야기는 엄마에게 돈을 도둑맞은 딸 이야기. 하지만 결국에 딸이 엄마에게 공감하고 아버지랑 이혼하고 가출하자고 도로 부추깁니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남편에게 살해당하기 직전의 여자 이야기. 순정 만화가랍니다.(먼산)

여섯 번째 이야기는 누나가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걸 알고 나서는 소심한 복수를 계획한 남동생이 고양이를 납치하는데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고양이가 죽으면서 아이는 외려 자신이 그런 거라고 자수하고는 입을 다뭅니다.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이 경찰서에서 싸우는 가운데, 남동생이 고양이를 유괴할 때부터 상황을 보고 있던 친구가 쟤는 아무 잘못 없다고 나서는 군요. 하지만 소년은 속으로 중얼거립니다. 내가 정말로 죄가 없나, 하고.

일곱 번째 이야기는 7년간 불륜 관계였던 남자가, 승진을 위해 불륜녀를 버리고 미국 유학을 선택합니다. 게다가 헤어질 때 아내가 둘째를 원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여자는 소심한 복수로 볼거리에 걸린 걸 알고는 남자에게 마지막으로 안아달라고 합니다. 둘다 볼거리 백신을 안 맞았다던가요. 남자는 결국 불임.-_-;



읽고 나면 기분이 굉장히 안 좋습니다. 가라 앉아요. 왜 이런 소설을 썼는지를 넘어서 내가 왜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기분이 나빠야 해?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것이 현대 소설인가 싶기도 하고..? ㄱ-


야마모토 후미오. 『블랙 티』, 김미영 옮김. 창해, 2009,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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