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서는 피식피식 웃었는데, 맨 뒤에 실린 해설을 보고는 더 웃었습니다. 해설은 번역자인 김상훈씨가 적었는데 몇몇 부분에서 포복절도했습니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제목만 정말로 많이 들었습니다. SF 걸작을 언급할 때 반드시 나오는 책이기도 하고, 로저 젤라즈니의 대표작이라는 사람도 있고, 워낙 제목 자체도 유명하잖아요. 그리고 모 블로그의 이름도 이겁니다.

그래서 궁금했지만 지금까지 손을 대지 못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베스트셀러고 명작이라고 하니까 손이 안가요.
..
청개구리 심보가 도졌다고도 할 수 있는데, 다른 로저 젤라즈니의 작품을 읽어보고는 용기가 더 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앰버 연대기』를 읽고는 참, 참, 참. 여기에 대한 평은 김상훈씨의 해설을 빌려다 씁니다.

p.484
플롯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함에 따라 독자들은 일인칭으로 서술되는 주인공 코윈의 행위가 단순히 물리적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그의 인식이 반드시 객관적 상황의 정확한 반영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서술되는 이야기는 '나'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이는 거라니까요.-ㅂ-;


하여간 『앰버 연대기』가 그리 재미있지 않아서 망설였는데, 『시월의 고독한 밤』은 의외로 또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손을 댈 용기가 났던 거죠. 엊그제 도서관에 가서 『시월의 고독한 밤』을 빌리면서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도 빌렸습니다. 빌리고 나서야 이게 단편집이라는 것을 알았고, 앞의 몇몇 편들은 보다가 중간에 그만두나 마나 고민했지만 끝까지 다 읽고 나자 아, 명작이다 싶더랍니다. 희한하지요.

옛날 옛적, 하이텔에는 시리얼란이 있었고 나우누리에는 SF 게시판이 있었습니다. 이 SF는 SciFi, 공상과학소설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SF와 판타지 소설을 연재하는 게시판이었습니다. 로저 젤라즈니의 소설은 딱 이 SF 같습니다. 그러니까 과학과 공상과학의 이미지에다가 신화와 철학과 역사와 마초와 서부시대와 개척시대와 카우보이 기타 등등을 넣으면 얼추 비슷할 겁니다. 기본은 SciFi지만 거기에 판타지와 신화적 요소랑 영미시가 많이 들어갔어요. 다만 단편에 따라서는 마초와 서부시대-카우보이가 지나치게 강해서 후추로 뒤범벅된 소설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아래에는 각 편에 대한 감상을 짤막하게 적어봅니다. 물론 내용이 잔뜩 들어 있으니 접습니다.


원제는 『The Doors of His Face, The Lamps of His Mouth and Other Stories』입니다. 표제작이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이로군요. 원제보다는 저 표제작이 더 많이 알려지지 않았나 합니다. 하지만 두 단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얼굴의 문~』쪽이었고요. 아무래도 취향의 문제겠지요.
제목을 찬찬히 훑어보니 강렬하게 남은 것이 많습니다. 주인공이 마초고 서부극을 보는 것 같은데다 600만불의 사나이까지 떠오를 판인데, 그런 옛 분위기를 가졌지만 상상력만큼은, 정말 따라갈 수 없습니다. 괜히 SF의 고전이 아니로군요. 물론 로저 젤라즈니는 호불호를 따지면 불호에 가깝지만 그래도, 한 번쯤 읽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해설도 꼬오옥 읽으세요. 재미없다면 도중에 해설 먼저 보고 마음을 다스린 다음 보셔도 됩니다.+ㅅ+



로저 젤라즈니.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김상훈 옮김. 열린책들, 9500원, 2002.



라고 적기는 했지만 이 책 다 읽는 데 일주일, 아니 이주일 넘게 걸린 걸 생각하면 참 취향에 안 맞았군요.;
거기에다 가격이 9500원이기에 기겁했더니만 2002년도 발행. 끄응. 지금은 가격 올랐을 겁니다.
그러니 이미 날은 지났지만 『시월의 고독한 밤』으로 눈가심을!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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