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친구 Ky가 놀러왔습니다. 예전에 애프터눈 티세트에 도전해보겠다고 했다가 일이 바빠 못오고 말았던 기억이 나서 Ky에게 갈래?라고 물었더니 당장에 미끼를 덥석 무는군요. 실은 저도 먹고 싶었거든요. 여행 다녀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애프터눈 티세트가 그리워지고 있습니다.
그 외의 리퀘스트로 맛있는 파스타집을 이야기 하길래 광화문 Pomodoro와 신촌 Quality Season을 코스로 잡고 광화문에서 만났습니다. 만난 시간은 11시 40분 경. 광화문역에서 뽐모도로까지 올라오니 11시 30분에는 텅 비어 있던 가게가 잠깐 사이에 사람이 가득차고, 밖에는 줄까지 서 있군요. 어차피 줄 서는 것이라면 일본에서도 이력이 났으니 수다를 떨면서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메뉴판을 가져와서 메뉴를 잽싸게 결정하고 그 동안 있었던 이런 저런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굴 본지가 꽤 오래되었군요. 1년만에 보는 얼굴인가 했더니 그보다 더 깁니다. 하지만 친구란 그런거죠. 어제 만났다가 헤어진 것처럼 다양한 주제를 한꺼번에 풀어 놓아도 어색함이 없습니다. 애니메이션 이야기부터 회사 일, 일본 여행, 맛집, 주변 친구들의 근황, 게임, 쟈니즈(...)등등. 아아, 이야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습니다.

친구는 화이트 와인을 주문했는데 와인까지 마시면 나중에 차마실 때 버거울 것 같아 제 음료는 주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샐러드. 새콤한 소스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지막 야채 하나까지 닥닥 긁어 먹었으니...;

친구가 시킨 것은 해산물 스파게티, 토마토 소스입니다. 입맛이 까다로운 친구도 마지막까지 다 긁어 먹었으니 꽤나 맛있었나 봅니다. 뽐모도로는 크림소스를 꼭 먹어봐야 한다고 했는데 미처 그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하기야 느끼한 것은 가끔 먹어주는 것이니 다음에 도전해봐야겠습니다.

크림소스를 피한 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지요. 토마토 소스 해산물 리조토입니다. 간만에 먹는 리조토가 입에 착착 달라붙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스파게티가 있는 풍경 간지도 굉장히 오래되었군요. 기억나는 김에 한 번 다녀올까요?

한 시간 정도 걸려 신나게 수다를 떨며 점심을 싹싹 비운 다음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이동했습니다. 머슬앤머글 옆에 자리잡고 있는 티앙팡 신촌 분점 퀄리티 시즌. 이미 며칠 전에 애프터눈 티세트를 예약해두었습니다. 예약은 3시로 했지만 이야기를 하니 먼저 나옵니다.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서 가능했을겁니다.
밥 먹은지 한 시간 정도 밖에 안 지났지만 원래 여자들의 배는 파티션으로 구분되어 있어 밥배와 간식배가 따로 있다고 누군가(마린블루스)가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부터 줄곧 퀄리티 시즌에 앉아서 차가 떨어지면 또 주문하고 뒹굴거리면서 즐겁게 대화를 했습니다.

맨 처음 들어가서 시킨 것은 차이. 친구는 그냥 차이, 저는 너츠 차이를 시켰습니다. 역시 1인용 포트와 작은 잔이 함께 딸려나옵니다. 따라보면 대략 두 잔 정도 나옵니다. 달달한 차이로 속을 달래는 사이에 애프터눈 티세트가 등장합니다.

우후후후후후후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시간은 넉넉하고 수다떨 거리는 많고. 수다 도중에 조금씩 집어 먹다보니 얼마 되지 않아서 하나씩 사라집니다.

맨 윗단에 올려진 것은 립파이와 버터, 사과잼입니다. 잼이나 버터도 다 자가제로 알고 있는데 사과잼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만들었던 것처럼 과육이 그대로 남아 있군요. 프리저브에 가까운 타입입니다.

두 번째 단에는 다양한 쿠키가 있습니다. 원래 티세트가 2인분이니 세트에 나오는 간식들은 거의 2개 세트로 나옵니다. 홍차와 함께 하나씩 집어 먹는 사이에 다 사라집니다.

맨 아랫단에 있는 두 개의 그릇은 사과 반쪽이 통째로 올라간 파이와 초콜릿 수플레입니다. 수플레가 좀 가라앉았지만 그래도 맛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과파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새콤한 사과가 자칫 버터와 밀가루에 질릴 수 있는 입을 잘 달래주는군요. 샌드위치가 없어도 이 사과 파이 덕분에 맛있게 티세트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콘! (뒤에 보이는 것은 갈레트입니다. 버터 쿠키지요)
스콘을 반으로 나눠 버터와 사과잼을 듬뿍 발라서 입에 넣으면 극락이 따로 없습니다. 거기에 홍차를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스콘도 홍차도 점점 뱃속으로 사라지는군요.

이렇게 개인 접시가 나오기 때문에 스콘도 여기에 올려놓고 버터와 잼을 듬뿍 바를 수 있습니다.


티세트에 딸려 나온 것은 다즐링 한 포트지만 이쪽은 친구에게 넘기고, 저는 위타드의 베리베리베리를 마셨습니다.

새빨간 차. 향도 그렇지만 맛도 베리의 향연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베리들이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트로베리 외에도 여러 베리들이 들어갔을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딸기맛만 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색 때문인지 베리베리베리는 이렇게 유리포트에 나옵니다.


자아, 여기까지가 티세트.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평일 오후라 손님이 거의 없었습니다. 6시가 즈음에서야 한 팀 두 팀 들어오더군요. 그래서였는지 거의 유일한 손님-대화에 정신이 팔려 다른 손님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OTL-이었던 저희 테이블에 시식용 케이크가 오기 시작합니다.

커스터드 딸기 케이크와 함께 시작된 티마스터와의 대화.
밖에 화분이 많다 싶었더니 최근에 엄청나게 많은 화분을 들이셨답니다. 다 먹는 종류로 말입니다. 레몬밤이나 로즈마리 같은 허브도 그렇지만 밤 나무도 세 그루, 블루베리도 두 그루, 포도나무도 심고 몽키 바나나라는 작은 바나나나무도 들였답니다. 다들 한 번씩은 들어본 이름에다 화분에도 관심이 조금 있었으니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엉뚱한 이야기들과 함께-집에 있는 코니를 잘 길러 (아빠는 요리사에 나오는) 커피술을 만들어달라는 Ky의 리퀘스트라든지-원예를 화제로 잠시 티마스터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3-4월쯤 나무에 싹 틀 때도 한 번 가보고 여름에도 한 번 가보고, 열매 수확이 있을 가을에도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햇살을 보면 시간의 변화를 느끼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1시 40분에 들어가서 7시 40분쯤에 나왔으니 6시간 정도 있었던건가요? 그 사이에 시식용 케이크를 하나 더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오렌지 절임과 건포도가 들어간 시골 스타일-Ky와 저는 "칸다 에이지가 만들듯한"이라 표현했지만요-케이크가 나옵니다. 이런 타입의 케이크도 좋아합니다.

위에는 또 아몬드가 듬뿍 뿌려져 있어-G는 질색할겁니다;-견과류를 좋아하는 저는 굉장히 행복했습니다. 훗훗~

철관음도 마셔보고 싶다는 Ky의 말에 덥석 철관음도 마셔봤습니다. 중국차 쪽은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올해의 목표인데 차 페스티발을 제대로 넘길 수 있을지가 미지수입니다. 이번에 다관과 다판을 사오면 실패하는 겁니다. 그리 되면 다관도 점점 늘어나 어머니의 구박도 한층 더 심해지겠지요? 지금 커피용구와 홍차용구를 숨겨두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다판은 어디에 두어야 할지 정말 난감합니다. 일단은 여기저기 숨겨둔 홍차가 몇 통인지 생각하며 지갑과 통장잔고의 협조를 받아 잘 달래야겠습니다. 이러다 폭주하면 정말 안된다고요!


이날 정말 행복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 얼굴도 보고 맛있는 것도 잔뜩 먹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잔뜩 들었으니 말입니다. 언젠가 시간되면 그 때는 혼자 살짝 다녀와도 좋을 코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티세트는 2인분이지만 스콘세트라면 혼자서라도 먹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가보고 싶은 놀기 코스는 하나하나 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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