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나면 유럽행 항공권을 찾아 헤매는 무서운 책. 그러니까 이 책은 정원 소개를 빙자한 여행서...(탕!)

반쯤은 농담이고 반쯤은 진담입니다.
교보에서 보았던가, 다른 곳에서 보았던가 기억이 희미한데 미리 찍어 놓고 있다가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습니다. 받아 보고서는 사진이 그리 많지 않고 글이 훨씬 많다는 데서 조금 당황했지만 그 글이 그냥 글이 아닙니다. 글만 죽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인터뷰이(취재원)와 인터뷰어가 마주 앉아 대화를 하듯 유럽 정원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재미있는 건 국가별로 인터뷰 대상이 다르다는 겁니다. 다만 헷갈리는 것이 이 부분인데, 각 챕터에 등장하는 저자는 한 명입니다. 그러니 ① 챕터의 저자가 취재원인지, ② 챕터의 저자가 취재하는 사람인지, ③ 혹은 편집자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책 날개에 나온 저자 소개를 보면 1번일 것 같긴 합니다. 그렇다면 이게 취재의 형식을 빌려 구성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 취재를 한 건지도 알 수 없네요. 기왕이면 이런 구성도 알려주지.'ㅂ'

조경에 대해서도 관심이 조금 있긴 한데, 솔직히 뭘 기르는 데는 솜씨가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성격이 급한 겁니다. 성격이 급해서 싹이 트면 기다리지 못하고 몇 번이고 들여다보고 화분을 뒤집어 엎곤 하거든요. 그 성격을 고치고 내버려 두면 화분도 그럭저럭 잘 자랍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감귤류와 궁합이 맞나 싶은 생각은 듭니다. 가장 잘 안 맞는 건 허브고요.

하여간 그렇게 정원이랑 식물에 관심이 많다보니 정원 관련 서적들도 이렇게 들여다 보는데, 이 책은 유럽의 가지각색 정원을 소개하면서 여행을 가라고 옆구리를 퍽퍽 찌릅니다. 예를 들면,

p.58-59
카레지에서는 피에솔레에서보다 좀더 원형의 모습을 볼 수 있겠네요.
그곳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플라톤 아카데미와 연결짓지 않을 수 없겠죠. 빌라 카레지와 피에솔레 언덕 자체가 철학자들의 학문과 문학의 배경이 된 곳이니까, 그곳에 가면 숱한 이야깃거리가 있을 겁니다. (중략) 특히 정원 안에는 수령 600년 된 배롱나무가 있습니다. (중략) 거기서 메디치가 학자들과 대화를 나눴죠.

....
(B님이 낚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식으로 각 정원을 비교하고, 각각이 가지는 특색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국가별로 조금씩 글의 분위기가 다릅니다. 영국편도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는데, 영국편은 이전에 보았던 『윤상준의 영국 정원 이야기』를 보고 기억에 남은 것이 몇 가지 있어서 떠올리며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등장하지 않았던 다른 사실들도 소개가 되는군요. 특히 어제 저녁에 마저 읽은 어떤 책에서도 위장결혼 이야기가 등장하더니 여기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해서..ㄱ-;

유럽 정원이라고는 하지만 소개된 곳은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입니다. 스페인 정원은 빠져 있지요. 사실 정원의 역사에서 주로 다루는 것도 이 네 곳 같지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탈리아랑 영국의 정원이 제일 궁금하고 프랑스나 독일은 슬며시 뒤로 빠졌습니다. 아니, 독일도 몇 군데는 궁금하더군요.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곳들이긴 한데, 정원 취향이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같은 계획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러고 보니 옛날에 모셨(..)던 어느 높으신 분은 향나무를 동그랗게 깎아 놓는 것을 보고 군사시대의 유물이지 잔재니 하는데,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서는 뭐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만있자, 그 왜 동물모양으로 나무 전정해둔 곳은 어디 정원이었지요? 그렇게 해놓고는 이런 저런 꽃들을 심으려 노력하시던데, 독일 등지에서 정원 조경 비용으로 들어가는 돈을 생각하고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그 분이 원하는 건 적당히 손을 써서 타샤 튜더 같은 분위기의 한국 야생화 정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긴 합니다만. 그런 정원은 한 10년 정도는 꾸준하게 손을 대서 관리해야 가능하지요. 한 두 해 들여서 될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니 은퇴 이후의 계획에 정원 가꾸기도 넣어야지요. 한 10년 부지런히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지금부터 미리 묘목 관리를...(...)


엉뚱한 곳으로 이야기가 흘렀는데, 프랑스의 정원을 소개하면서는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곳의 작은 정원, 의미 있는 정원, 역사적으로 중요한 정원이나 공원을 소개합니다. 파리라면 떠오르는 게 센강이나 몽마르트 언덕, 개선문을 시작으로 한 방사형 구조 정도인데 여기서는 루브르 박물관 옆의 정원이라든지,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정원들이 등장합니다. 파리의 정원 중에서는 모네 정원을 가장 가보고 싶더군요. 여기는 이전에 모네와 관련한 책을 보면서 몇 번 보았는데, 자연스럽게 가꾼 일본풍(...) 정원이라는 느낌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더 궁금하고요.

하지만 역시 제일 가고 싶은 것은 로마 주변의 정원이랑 영국의 정원...ㄱ-;
엊그제 은퇴 뒤로 유럽 여행을 미루겠다 한 것도 이들 정원을 둘러보려면 엄청난 시간과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장 오늘부터라도 적금을 들어 미리 자금을 마련해야겠습니다. 하하하.;



정기호 외. 『유럽, 정원을 거닐다』. 글항아리(문학동네), 2013, 16000원.



T님도 괜찮게 보실 거 같고. B님은 절대로 보세요. 앞부분의 이탈리아 정원을 보시면 홀라당 넘어갈거라 장담합니다. 게다가 로마편은 사진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거든요. 페이지 꽉차게 큼직큼직한 사진이 보이는데, 어흑.;ㅂ; 여행 가고 싶습니다. 게다가 로마시대부터 르네상스, 추기경들의 정원 등등 시대별로 꽤 다양한 의미를 다루었기 때문에 책 자체도 마음에 들더군요. 그러니 꼭 보세요. 저만 당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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