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원서입니다. 한국에 번역되어도 좋을텐데, 가능성은 아주 낮진 않다고 봅니다. 최근에 라이트노벨보다는 조금 윗단계로 출간되는 책들이 있거든요. 비블리오 고서당 시리즈라든지, 커피점 탈레랑이라든지. 비블리오 고서당은 번역본을 읽을지 말지 고민중이긴 한데 탈레랑은 도서관에 없네요. 일단 신청했으니 볼지 말지는 책이 들어올 때 시간이 되느냐가 관건입니다.

카라쿠사 도서관도 넓게 보면 그런 수준의 책입니다. 문고판으로만 나왔지만 라이트노벨이라기에는 내용이 가볍지 않아요. 그리고 같은 시기, 즉 지난 여름 여행 때 사온 책들 중에서 가장 기대하지 않았지만 가장 재미있는 책입니다. 물론 현재형이므로 미래에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ㅂ-; 이제 겨우 두 권 손 댔거든요.

비교대상은 삽화에 낚여서 홀랑 구입했던 『오더는 탐정에게(オ-ダ-は探偵に)』입니다. 나뉜 이야기중 한 편은 다 읽고 그 뒤의 다른 편을 읽다가 C님께 빌려드렸는데, 그 사이 『카라쿠사 도서관 방명록(からくさ圖書館來客簿)』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읽었던 책은 기억 저편으로 사장되었지요. 하하하.


각각의 표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더 탐정』쪽은 표지에 낚였습니다. 주인공이 아주 잘생겼더군요. 근데 성격은 정말로 나쁩니다. 사람에게 높임말로 독설을 퍼붓는 것이 특기입니다. 얼굴만큼은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생겼지만 성격은 절대 아니지요. 그런 성격이야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하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 상대역에 해당되는 여주인공의 성격이 정말 취향에 안 맞습니다. 포기한 이유의 30% 정도는 그 때문입니다. 나머지 70%는 내용에 그리 공감이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자주인공이 지나치게 순정만화풍이더군요.

사실 『카라쿠사도서관』은 책 뒷면의 소개글을 읽고는 반쯤 포기하고 구입했습니다. 교토 모처에 카라쿠사 사립 도서관이 있는데, 아주 젊은 도서관 관장과 신비한 외모를 가진 17세 남짓의 미소녀가 일하고 있다는 것이 광고문구입니다. 수상하지요. 참으로 수상합니다. 젊은 도서관 관장과 미소녀라. 게다가 메이드복이래요.
그래도 교토 도서관이라니 눈물을 머금고 딱 질렀는데 읽으면서 내내 웃었습니다. 설명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겉보기 설명일뿐. 실제는 다릅니다.

카라쿠사 도서관은 교토 북쪽, 기타야마 쪽에 있습니다. 시라카와도리 근처 어드메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정확한 지역을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입관료가 300엔. 이 비용에는 홍차 또는 커피 한 잔 비용이 포함됩니다. 커피는 드립커피이고 홍차는 스트레이트, 레몬티, 밀크티 중에 고를 수 있습니다. 한 번 들어와서 허한 시간인지 세 시간인지 시간제한이 있습니다. 시간을 넘기면 비용이 또 듭니다. 티켓도 판매하니 매번 잔돈을 준비하지 않고 왕창 구입했다가 뜯어 써도 되고요.
(옛날 옛적의 버스 회수권이 떠오르더군요.)

그런데 이 도서관은 사실 눈속임입니다. 이 책의 부제가 도서관의 원래 목적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저승사자 오노 타카무라와 상냥한 길잃은 영혼들(冥官.小野篁と優しい道なしたち).
정확한 번역은 아닙니다. 명관은 저승사자라고 해석했는데 저승의 관리를 지칭하는 겁니다. 주인공인 도서관 관장, 오노 타카무라는 헤이안 시대 때부터 유명한 인물이랍니다. 어디 설화에도 나온다는데, 낮에는 조정에 오르고 밤에는 우물을 통해 저승에서 일한다던가요. 투잡을 뛰는 셈인데 죽은 뒤에는 명관, 즉 저승사자로만 일합니다. 그런 타카무라가 사수로서 새로 명관으로 임명된 토키코(時子)를 가르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입니다. 이 두 사람이 지상계의 명계 출장소에서 하는 일은 부제에도 등장하는 길잃은 영혼(道なし)을 저승으로 보내는 겁니다. 현세에 집착이 많으면 죽은 뒤에도 혼들은 저승으로 가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 가지 조치를 취해서 이들을 저승으로 보내는데,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와중에 타카무라와 토키코의 사정도 뒤섞여 전개됩니다.

타카무라는 토키코에게 항상 존댓말을 쓰는데, 스물여덟로 보이는 타카무라가 열일곱의 토키코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은 이상하게 보입니다. 게다가 공주님이라고 부르거든요. 이 둘의 관계가 복잡한 건 둘 다 살아 있는 몸일 때, 타카무라는 토키코보다 신분이 한참 아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선배와 후배의 입장인 지금도 선배가 후배에게 존댓말을 쓰는 상황이 된 겁니다. 고칠 생각을 전혀 안하고, 토키코도 그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더군요. 그리고 사실 둘의 나이차이는 10살 이상입니다. 죽기 전에는 열여덟살 정도 차이났던 모양이니까요. 하지만 ... 맨 마지막 편을 읽으면 몇 군데 헷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건 나중에 B님께 여쭤봐야겠습니다.;

길잃은 영혼들을 돌려 보내는 각 이야기들도 상당히 잘 풀어냈더군요. 대신 읽는 동안 교토 여행이 심각하게 땡기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으어, 저도 시라카와도리를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걸어서 오리강을 건너고, 데마치야나기 주변을 걷고 싶습니다.;ㅂ;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타카무라의 성격입니다. 물론 맨 마지막 편에서 타카무라와 토키코의 관계에 대해서 음... 상당히 곤란한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하여간 타카무라의 성격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변태일 겁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이야기에서 20대 중반쯤의 아가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거든요.-_-;

"しかし作業服の下にガーターベルトとストッキングはいただけない. 非能率的だ. ついでに言えばまったく色氣を感じない."
(하지만 작업복 아래에 가터 벨트와 스타킹은 받아들일 수 없어. 비능률적이야. 이어 말하면 전혀 색기가 느껴지지 않아.)

여기서는 반말투로 말하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존경어를 씁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평범한데, 가끔 날리는 멘트가 능글맞고 변태기미가 엿보이는 아저씨입니다. 하기야 몇 년을 살았는데.-_-; 아니, 그래도 삐~년 만에 만난 토키코가 네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딱 잘라 이야기하는 걸 보니 그 사이에 저런 변태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책인데 단권인듯합니다. 뒷 권은 없어 보이네요. 과연? 뒷이야기도 더 나올법한데 말입니다. 번역 나오면 다시 한 번 읽어봐야지요. 물론 안나오면 어쩔 수 없이 원서로 또 한 번...;ㅂ;


仲町六繪. 『からくさ圖書館來客簿』. アスキ-.メディアワ-クス, 2013, 61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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