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옛날 옛적 보았던 한국 동화책들의 삽화는 애들 취향보다는 어른 취향이었습니다. 어디더라, 계몽사에서 나온 30권인가 하는 동화 전집은 우울한 이야기들이 많아 대부분은 한 번 보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은 '외국 동화나 외국 민화를 보는 것보다는 한국 전통의 것을 읽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셨는지 제게 한국 동화를 읽으라 많이 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별 차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한국 동화는 꺼리게 되었으니까요. 지금 한국 소설을 읽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겁니다. 판타지는 예외...; 판타지나 무협은 한국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담아내지는 않으니까요.
그 당시 읽었던 소설 중에는 지금 생각하면 이게 동화인가 싶은 물건도 있습니다. 대강의 내용을 적어보자면,
"시골에서 살고 있는 꼬마가, 어느 대학생 형(거기서는 언니;)을 만나 친하게 지낸다. 나중에 억지로 졸라 서울에 올라갔는데, 그 둘이 만난 곳은 최루탄이 난무하는 시위장... 꼬마는 '언니!'를 부르짖으며 달려간다'
는 것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저런 내용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분위기도 그렇고 삽화도 그래서 손을 안댔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80년대의 시위 장면을 다룬 것이겠지요. 농활 혹은 야학을 위해 시골에 내려온 대학생 청년과, 순수한 시골 아이의 형제애. 그러나 청년은 시위에 휘말려 있는 그런 상황인거죠. 제일 기억에 남은 것이 저 '언니'라는 부르짖음이었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 당시는 형이라는 말 외에 언니라는 호칭을 남자 간에도 많이 썼다니까요. 여자가 손위 여자형제 혹은 손위의 여자를 부르는 호칭만 언니가 아니라 남자도 같은 상황에서 썼다는 겁니다. 언니라고 하면 당연히 여자만 쓰는 단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는 것이 신선했지요.
각설하고.
그 어렸을 적 보았던 삽화와 비슷한 그림을 보았습니다.
지난 일요일은 출근 안하고 교보문고에 다녀왔거든요. 교보까지 걸어가는 도중, 공평빌딩 앞 횡단보도 근처에서 저런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농협 옆 건물이었을겁니다.
저 쿨시크한 고양이의 눈매가 참으로 멋집니다.
왜 장황하게 옛 기억을 들췄냐면, 저 그림체가 그 당시 보았던 동화의 삽화들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렇게 쿨시크하지는 않았어요. 아, 저기에 왕관 하나 씌워드리고 어깨에 망토 둘러드리고 싶은 이 기분.
하지만 전시회는 오늘까지인 걸로 압니다..(먼산) 갈 시간이 안되는군요. 크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