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thums up.

올해의 추리소설로 두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빙고님께는 원서로 보실 것을, 첫비행님과 아이쭈님과 티이타님께는 번역서 쪽을 추천합니다. 번역이 무난해서(걸리는 곳이 없어) 번역서로도 괜찮거든요. 그래도 빙고님은 이미 한 권 보셨다니까 원서를 추천합니다.

이 책도 프님 추천이었지요. 처음에는 아이이치로의 낭패인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아가 두 개, 이가 두 개인 『아아이이치로의 낭패』입니다. 물론 띄어쓰기는 그게 아닙니다. 아, 아이이치로입니다. 감탄사의 아도 아니고 성이 아, 이름이 아이이치로입니다. 거참, 거창한 이름이지요. 번역자 후기를 읽고 왜 이름이 이런지 알고 나서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렇군요. 말하자면 한국어로 가가람이라는 이름을 짓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왜 인지는 번역자 후기를 읽으시어요.

처음 프님의 추천에서는 브라운 신부와 비슷하다라고 해서 덥석 미끼를 물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저자 자체가 일본의 G. K. 체스터튼 소리를 듣는답니다. 과연, 주인공인 아이이치로가 이런 저런 행동의 맥락을 보고 앞으로 이리 될 것이다 예언(!)하는 것이 브라운 신부와 같은 신묘한 능력을 보이더군요. 심리적으로 이런 행동을 할 것이라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근데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넘겨 짚는데 그것이 백발백중인 이 청년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물론 엘러리 퀸이나 파일로 밴스 같은 엄친아는 아닙니다. 아주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거든요. 아무 것도 없는데도 허우적 거리며 쓰러지거나 뭔가 작은 일만 있어도 허둥지둥 하는 모습이, 가만히 서 있을 때의 귀공자 같은 분위기를 한순간에 날려버립니다. 입만 열지 않으면 서양인형이라는 장미십자탐정보다 상태가 심각합니다. 외모가 아니었다면 쪼다(...)나 등신(...)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입니다. 게다가 취미가 사진 찍기입니다. 아니, 아예 직업이 사진찍기지요. 그것도 보통 사람들의 시선에는, 정말로 필요 없고 쓸모 없을 것 같은 것만 골라 찍습니다. 특이한 구름이나 특이한 곤충이나 특이한 식물만 찍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 여기저기를 헤메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상한 사건들과도 자주 마주칩니다.
그러고 보니 어수룩하게 보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긴다이치 쿄스케랑과도 비슷한데, 적어도 쿄스케는 아이이치로보다는 자주 똑똑한 모습을 보입니다. 아이이치로는 가만히 서 있을 때랑 트릭 풀이를 제시할 때를 제외하면 사람이 뭔가 부족해보이거든요.OTL

그러니까 이 소설은 아이이치로라는 인물 때문에 절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첫 단편을 보았을 때는 그 심리 트릭을 잘 파악하는 것이 대단하다 싶었는데, 몇 편 읽으면 읽을 수록 기괴한 트릭과 상황과 심리와 정황 등에 당황하며, 그걸 그렇게 잘 눈치채는 이 청년에게 홀딱 반합니다. 아, 차라리 외모가 이렇지 않았다면 차라리 귀엽기라도 했을 것을, 외모와 하고 다니는 것이 귀공자 급이니 여자들이 이 남자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혹시 다음에 나올 장편에는 뭔가 로맨스라도 있을까요. 아니, 없을 것 같은데. 양웬리보다도 이쪽이 더 접근하기 어려우니까요.(...)

아아이이치로의 한자명을 빼먹었네요. 亞愛一郞. 한자로는 간단하지요? 하지만 읽는 법은 난감합니다. 하하하.


아와사카 쓰마오. 『아아이이치로의 낭패』, 권영주 옮김. 시공사, 2010, 12000원.
『아아이이치로의 사고』, 권영주 옮김. 시공사, 2012, 12000원.



덧붙이자면.
1권에 해당하는 『아아이이치로의 낭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소설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나온 곤다 만지의 해설입니다. 해설이라고는 하나, 이 소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다루고 있지요. 2차 대전 후, 대만 사람으로 일본 필명(?)은 시마자키 히로시인 傅金泉가 상당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전과 전후의 일본 추리소설을 수집합니다. 소설뿐만 아니라 관련 잡지들도 수집하여 그 컬렉션이 상당히 방대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환영성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그 잡지를 통해 수 많은 추리소설 작가들과 교류합니다. 아니, 2권인 『아아이이치로의 사고』에서 해설을 다나카 요시키가 썼고 거기서도 환영성이 언급된 걸 보면 판타지 소설작가나 SF쪽과도 관련이 있었겠지요. 시마자키 히로시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 위키 쪽을 참조하세요.(링크)
그러나 잡지란 돈 먹는 하마지요. 결국 환영성은 폐간되고 이 사람의 방대한 컬렉션도 결국 뿔뿔히 흩어집니다. 전무후무한 추리소설 컬렉션이 그렇게 흩어지다니.;ㅂ; 그 부분을 읽으면서 '일본의 추리소설 광들은 도대체 뭐 한 것이냐!'라고 버럭 화를 냈으니까요.
사실 한국이라고 다를 것 같진 않습니다. 이런 컬렉션이 나오면 자신의 막대한 돈을 들여 그 기록물들을 모아 남기는 사람들이 나올까요. 아니, 그렇진 않을 겁니다. 저도 그럴 생각은 있지만 자금이 없는 걸요. 1, 2억으로 될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참 아까운 컬렉션입니다. 그런 컬렉션을 추리소설 협회 등에서 모아 구해서 보존했다면, 차라리 그게 더 좋았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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