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 부제목도 간촐하지요? 천년왕국의 조사. 이번 이야기는 상당히 두껍습니다. 1권과 4권을 같이 놓고 비교하지는 않았는데 두께도 상당히 비슷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구성이 다르고 분위기도 다릅니다. 무섭기로 말하자면 이번 권이 더 무섭습니다. 여러 의미로 '믿지 못하게' 되었으니까요.
1권은 첫 번째 이야기라 그런지 액션도 등장하고 이런 저런 궁리도 등장하고 히라가의 활약도 높습니다. 2권은 로베르토의 비중이 높고, 3권도 로베르토의 비중이 높지요. 4권은 로베르토보다는 히라가의 비중이 조금 더 높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수수께끼를 풀어내거든요. 물론 로베르토가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심 축이 주로 히라가입니다. 문서조사보다는 과학조사가 중심이 되면 히라가의 활약이, 문서조사가 중심이 되면 로베르토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ㅁ-/
이하는 내용이 상당히 들어 있는 관계로, 앞으로 보실 분들은 피해서 보시길 바랍니다. 제발 부탁인데 이거 번역 내주면 안되겠니.;ㅁ; (하지만 이런 종류의 소설을 번역할 때 어떤 번역자가 잘 어울릴까 곰곰이 생각하면... 으음;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는게 문제;;; 번역 장벽이 꽤 높습니다.)
카톨릭 내에도 파벌이 심하다는 건 1-3권까지도 익히 읽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 사는 곳, 특히 관료제에서의 상황은 어디나 비슷할테니까요. 인간 본성이 어디 가나요.-ㅁ-;
히라가와 로베르토는 프란체스코회 소속인데, 그 외에 베네딕트나 예수회 등의 파벌도 상당히 크다는 군요.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는 그래도 제가 세계사 공부를 좀 해두었다는게 다행, 또 다행으로 느껴집니다. 배경지식이 있으니 이해하기가 훨씬 편하더군요. 덕분에 읽는(넘기는;) 속도도 상당히 빠르고요.
여튼 이번 권에서의 파벌 싸움은 프란체스코회 vs 예수회입니다. 예수회의 총장이 '모 국가에 있는 어느 교회에 죽었다가 부활한 사제가 있으니 성인으로 인정해달라'며 서류를 제출한데서 일이 시작됩니다. 아마도 국가 모델이 세르비아가 아닌가 싶은데, 종교분쟁이 아주 심한 나라라 하더이다. 그리하여 히라가와 로베르토는 짐을 싸들고 이 나라에 갑니다. 교회는 산골짝에 있어서, 공항에서도 차를 타고 몇 시간을 가야하는 곳입니다. 그런 외진 곳에 있는 교회는 상당히 독특한 곳입니다. 그 교회의 사제는 안토니우스 14세(이하 14세). 유명한 성인인 성 안토니우스의 14대 째 환생이랍니다. 대대로 안토니우스의 환생자가 그 교회에 오면 교회에서 인증 과정을 거쳐서, 성 안토니우스의 환생을 중심으로 교회가 움직입니다. 3권에서도 그랬지만 이 사제가 없다고 교회가 안 돌아가진 않더군요. 여왕개미와 일개미의 관계인가. 조금은 섬뜩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 아니, 뭐든 관료제 사회는 비슷하지요. 머리가 없어도 아래는 잘 돌아갑니다.
자, 그런데... 히라가와 로베르토는 도착하자마자 기적을 맞이합니다. 세 개의 태양이 찬란하게 빛나는 가운데 14세의 손을 잡고 교회 앞의 거센 강물 위를 걸어서 건넙니다. 황망해 있는 두 사람은 이후에도 여러 기적을 맞이합니다. 14세를 통해 수 많은 사람들의 병이 나았고, 그에 대한 진단기록도 철저히 남아 있습니다. 거기에 맨 앞에도 등장하듯, 히라가는 화학테러로 죽었다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시를 받았다는 14세의 인도 하에 다시 깨어납니다. 정말로 죽었다니까요. 심장이 멎었으니 말입니다.
(그 때 로베르토가 눈물 뚝뚝 흘리는 장면은... 아....;ㅂ;....)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이하 생략)
이어서 감상 나갑니다. 감상쪽은 진짜 내용 폭로가 많습니다.
상당히 내용이 많았지만 속도는 빨랐습니다. 『바티칸 기적조사관』읽으면서 일본어 실력이 쑥쑥 느는 느낌입니다.; 책이 두껍다고 투덜댔는데 다 읽고서도 취향에 안 맞는다고 투덜댔습니다. 그도 그런게, 1-3권은 막판 뒤집기가 있습니다. 그랬는데 이번 권은, 막판 뒤집기를 하고서도 또 뒤집혔어요.;ㅁ; 해소가 덜 되었어요! ;ㅁ; 물론 1권이나 3권에서도 일말의 여지는 남아 있고 악은 완전히 뿌리뽑히지 않았지만, 4권은 히라가와 로베르토의 완패입니다. 다른 건 판정승 정도 되지만 이번은 완패가 맞아요. 그렇게 준비해놓고도 막판에 J에게 어퍼컷을 맞고 넉다운 당합니다. 젠장. 그러니 읽는 입장에서는 불연소라고 울부짖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게다가 히라가가 말했듯, 읽고 나면 내 기억 자체를 못 믿게 됩니다. 어디까지가 내 기억이 맞는지, 이것이 진실인지 고민합니다. 이번 트릭은 1권에서도 살짝 나왔지만 1권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방식입니다. 게다가 무서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당할지 모릅니다. 으어. 아마 히라가와 로베르토는 이에 대한 트라우마를 평생 못 벗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신부님들은 매 권마다 트라우마를 하나씩 안고 가네요. 1권은 덜하지만 2권에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고, 낙인 찍혔고. 3권에서는 도끼와 갈라설 수 있었지만 트라우마는 강화되었고. 4권에서는 '여긴 어디, 난 누구?'를 찍고 있었고.-_-;
2권부터 등장한 모씨는 4권에서의 활약도 무지막지합니다. 한데 아무리 봐도 이 캐릭터, 위험해. 어떻게 쓰냐에 따라 다른데 작가 습성을 보았을 때 보통 인물이 아닐 것 같단 말입니다. 이 캐릭터에 숨겨진 뭔가가 있다는데 한 표 겁니다. 그게 히라가랑 로베르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나쁜 쪽이라면 굉장히 화낼거예요.-_-+
그리고 J.
...
덕분에 고양이에 대한 로망이 더 생깁니다. 저도 고양이를 기르면 그 분처럼 될 수 있을까요.(...) 아니, 애초에 맨 앞의 그 장면부터가 함정이었다니! 미처 생각도 못했습니다. 진짜 여러 모로 깔았군요.;
그리고 그 서재.
으으으. 언젠가 그런 서재 가지는 것이 목표입니다! 일본의 땅콩집도 다시 읽고 리뷰 올리면서 한 번 서재에 대한 꿈을 키워보지요.
5권은 직접 사와서 보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 책상 위에 다른 책들도 가득한지라-시오노 나나미 두 권, 온다 리쿠가 참여한 책이 한 권, 토레스 시바모토가 삽화를 그린 소설이 한 권-있는 책부터 보고 그 다음에 볼래요. 그리고 이 핑계를 대고 조만간 일본에 가야죠. 근데 갈 시간이 없어! 연휴에는 항공권이 비싸단 말입니다! ;ㅂ; 그렇다고 연휴 아닌 때 휴가 내면 제 업무가 없다 한들 눈치 보여서 안됩니다.(엉엉엉)
여튼 5권은 그 다음의 별미로 남겨두고 언제 먹을까(?) 즐겁게 기다릴래요. 4권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