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크타르 마이, <무크타르 마이의 고백>, 이룸, 2006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꽤 오래전의 일입니다. 책이 나온 직후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온 날짜가 8월 24일이니 아마도 연수를 다녀온 뒤에 보았을겁니다.(그렇게 따지면 아주 오래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내용을 대강 알고 있기 때문에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무크타르 마이와 관련된 기사들은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여러 외신들이 상황을 전하면서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어제 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을 읽으면서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저는 정말로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루 세 끼를 다 챙겨먹을 수 있고 수도와 전기가 완비된 곳에서 살고 있으며 납치와 폭행에 대한 특별한 두려움 없이(100% 걱정 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살고 있으며,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사회활동을 하고 직업을 가지고 있어 고정적인 수입이 있을뿐더러, 저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초고속인터넷을 이용합니다. 이렇게 나열한 것을 종합하면 저는 세계 1%의 상류층(-_-)일겁니다.

무크타르 마이의 고백을 읽고서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합니다.(먼산) 제가 파키스탄에 태어났다면 여자로서 저런 대접과 모욕과 비난을 받고 제 정신으로 서 있을 수 없을 겁니다. 아마도 일찌감치 자살의 길을 택했겠지요. 수 많은 파키스탄의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무크타르 마이의 이야기는 2002년부터 시작됩니다. 카스트 제도가 있는 파키스탄에서 무크타르 마이는 소작농 계급의 이혼녀입니다. 아버지와 가족의 뜻에 따라 결혼을 했지만 능력없는 남편 때문에 이혼하고 친정에 돌아와 살고 있었지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지만 대신 코란만은 암송하고 있었기에 이혼 후에는 마을 아이들에게 코란을 가르치며 그래도 어느 정도의 지위를 누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무크타르 마이의 삶이 송두리채 뽑혀 나간 것은 이웃 때문입니다. 밭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 건너편에는 마이의 계급보다 상위 계급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무장도 가능하고 횡포도 부리고 마이의 계급보다 훨씬 세력있고 권력과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마이의 12살(13세로 나오기도 하나 정확한 나이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출생등록 같은 것이 전혀 없으니 어른들이 넌 몇 살이다라고 하면 그런줄 안다 하는군요)난 남동생이 집안의 여성과 말을 했다는 이유로 감금하고 폭행합니다. 그 남동생을 구하기 위해 잘못을 빌러 그 옆마을(이라기엔 그 부족이라는 말이 어울리겠군요)로 간 다음 그 곳에서 부족장이 결정한 대로 네 명의 남자들에게 끌려 집단 강간을 당합니다. 강간 후에 반 나체가 된 몸으로 그곳 부족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강금되었던 남동생도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이야기가 점점 커졌던 것은 언론과 외신들에 의해 외국에까지 보도되고 파키스탄의 여성인권유린과 연계되어 계속적으로 기사가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이는 같은 처지에 놓였던 수 많은 다른 파키스탄 여성들처럼 자살을 선택했겠지요. 파키스탄 법률에 의하면 강간당한 여자는 반드시 증인으로 남자 넷을 대동해야하는데 마이의 경우 창고에 끌려가 강간을 당했기 때문에 증인으로 세울 수 있는 남자는 강간범인 카스트 상위 부족의 네 남자 뿐입니다. 이들이 증인으로 설까요?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요. 거기에 이들은 경찰과도 연계되어 있고 그 주의 높으신 어르신들과도 잘 아는 사이였으니까요.

마이는 여기서 죽음 대신 경찰에 신고하고 고소하고하는 머나먼 싸움의 길을 떠나갑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자신같이 "모르기 때문에 당하는" 여자아이들이 없기를 바라며 마을에 학교를 세워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여성인권을 위해 여러 여성들과 함께 싸워나갑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직접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책 중간에 일자무식 소작농의 딸의 아닌 어느 파키스탄 여 박사의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여성인권 유린의 한 예로 등장하더군요. 상당히 좋은 집안에서 자라 공부도 열심히 해서 박사학위를 딴, 고위 계급의 여성이 있습니다. 결혼해서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도 하나 두었지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어느 날, 남편은 일로 집을 비우고 그녀는 혼자 집에 있었습니다. 잠을 자는 사이에 인기척을 느꼈고 누군가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집을 지키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군이 그 집을 지키고 있는데 누가와서 강간을 합니까? 그 사람은 밤새 그녀를 괴롭히고 아침에는 TV를 켜서 영어 방송을 보는 등 느긋한 행동을 하다가 사라집니다. 얼굴도 보지 못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추측컨대 고위 군인이겠지요.
경찰에 신고하고 범인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그녀는 협박을 당합니다. 폭행의 충격도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협박까지 당하고, 제대로 된 조사도 받지 못하게 되자 결국 그녀는 파키스탄을 떠나 영국으로 갑니다. 남편의 보호 아래에서였지요. 그러나 아들은 출국 허가를 받지 못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아들은 파키스탄에 남겨두고 영국으로 가야하는 어머니의 마음. 저는 겪어보지 않은 일이지만 ...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이슬람에서의 여성 인권이 낮은 것은 아닐겁니다. 이슬람의 율법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전근대적인 관습법이 문제지요. 유교라고 다릅니까? 같은 유교의 지배하에서였지만 고려와 조선 전기 때, 그리고 조선 후기에서의 여성 지위는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저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크타르 마이의 저항은 파키스탄 내에서도 찬반논란을 일으키며(외세를 등에 엎고 날뛰는 여자, 외세에 휘둘리는 여자 / 파키스탄의 여성 인권을 위해 몸바쳐 헌신하고 있는 여자 등) 결국엔 간통법 개정에까지 이르릅니다. 엊그제 나온 기사가 있었기에 저도 이 책을 읽을 생각이 들었지요.


세상에는 불합리한 일이 많습니다.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그러면 안됩니다. 내가 그 일에 관여할 수 없을지라도 똑바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참여자가 될 수 없다고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될테니까요. 주시자라도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