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이었나, 올해 초였나. 라가와 마리모의 단편집이 두 권 나왔습니다. 구입할까 고민하다가 띠지였는지 책 뒷면에 있었는지, 슬픈 이야기라는 언급에 책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다 주변에서 『치무아 포트』만 먼저 빌려 보았습니다.
판타지인데, 작가 특유의 커다란 눈이 귀여운 토끼(라고 추정되는)의 캐릭터와 잘 어울린데다 간질간질하면서도 눈시울을 적시는 그 이야기가 참 마음에 들었더랬지요. 그래서 다른 한 권도 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같은 경로로 들어와 어제 취침시간을 넘겨가면서 책을 보았습니다.
(덕분에 날로 안 좋아지는 몸상태에 쐐기를 박았...ㄱ-)
테마가 죄라는 것은 지금 감상을 쓰면서 알았는데 역시 그렇군요. 세 가지 이야기 모두 소재가 그겁니다. 죄.
첫 번째 이야기가 워낙 사람 속을 후벼파는지라-게다가 다른 소설도 연상되고 하다보니 뒷편에 대한 기대치는 상대적으로 낮았는데요, 그 뒤의 두 편, 특히 맨 마지막 이야기가 대박이었습니다.-ㅁ- 취향에 직격해서 조만간 책 구입하려고 생각중입니다. 짧게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게 보았고요.
알고 보면 재미 없어질 거라 생각하는 부분은 살짝 접어둡니다.
첫 번째 편. 제목은 「갈대의 이삭」입니다. 그러니까 순천만의 갈대밭(링크)에서 본 것 같은 걸 말합니다. 하얀 솜을 매달고 있는 겨울 갈대를 두고 갈대의 이삭이라 부른 것이더군요. 여기도 주제는 죄인데, 관련해서 볼만한 책은 오쿠노 슈지의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내 아들~』의 반대 입장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라 생각했거든요. 사실 이 책은 읽지 않았습니다.-ㅁ-; 소개한 내용만 보고 대강 찍은 것이긴 하니..
전과자에게는 많은 꼬리표가 붙습니다. 우발적인 살인, 초범, 정상참작이 되어 형은 길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주인공은 그 사건으로 등에 엄청난 짐을 짊어지고 갑니다. 핑계없는 무덤 없다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솔직히 주인공의 편을 들어주고 싶지요.(먼산) 이야기가 주인공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탓도 있지만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됩니다.
손을 잡아주었으면 좋았을거라 생각하지만 우직한 성격 때문에 끝까지 그걸 짊어지고 가네요. 그래서 이 단편의 결말을 보고는 더 봐야 하나 좀 고민했습니다.-ㅅ-;
그러나 그 다음을 읽어나가게 만든 것은 그림의 힘.;
「삼백초」시작하면서 꼬맹이의 얼굴을 보고는 홀딱 반해서 그대로 읽어 내려갔습니다. 근데 이거; 애들에게 추천하기 민망한 장면이 있네요. 아니, 어른은 이러면 안되는 겁니다? 미성년자에게 그런 걸 가르치면 어떡해요! ;; 그 장면을 보니 자기가 담임하던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랑 바람이 나서 형무소에도 다녀온 어느 교사 이야기랑 『쓸쓸한 사냥꾼』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더군요. 그래도 「삼백초」에서는 깔끔하게 끝냅니다. 손자 미노루와 사귀는 아가씨에게 '어른이 애를 도피처로 삼으면 안된다'고 하던 이와씨의 말을, 주인공은 여러 의미로 자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다만 깔끔하게 물러났을 때는 외려 '만화니까' 그런건가 싶었고요. 뭐랄까, 현실에서라면 자각하고 있어도 그렇게 단칼에 잘라내기가 쉽진 않았을텐데요.
덧붙여 꼬맹이 때 귀엽다고 그 대로 커달라고 바라는 건 무리로군요.(먼산)
마지막 이야기인 「겨울 안개」. 이게 표지에 등장한 두 꼬맹이 이야기입니다. 우어어어어!
시작할 때는 무슨 로드무비인가 싶었는데 이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맨 마지막 몇 장에 등장하는 나이 먹은 모습이 정말로 귀엽더군요. 아아아.;ㅂ; 게다가 소재도, 죄라고는 하지만 이쪽은 갱생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원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다시 죄의 구렁텅이로 빠지지만 구원받았다고 할까요. 저는 그런 맥락에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원죄 때문에 죄를 짓고, 원죄의 고리를 끊겠다고 또 다른 죄를 저지르기 위해 가지만 예정에 없던 사람들을 만나서 원죄에서도 탈출할 수 있었지요.
막판에 고백하기 전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 부모라고 다 같은 부모는 아니지요. 훗.-_-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 두 아이들 때문에 아주 행복하게 노년을 마무리 하고 있을거라 믿습니다. 애도 그모양이고 떠맡은 손자도 그랬지만 그 아이들이 예쁘고 반짝반짝하게 자랐으니까요.///
표지의 두 꼬맹이는 정말, 진리입니다.+ㅅ+ 보고 있노라니 온천여행도 가고 싶어지고.. 훗훗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