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지만 아주 흥겹게 먹었던 파스타입니다.


발단은 간단합니다. 지난 달, C님 댁에서 먹었던 뇨끼 때문에 치즈 지름신이 내려와 작년 말에(라고 해봤자 몇 주 전) 코스트코에서 치즈를 대량으로 구입했습니다. 그라나 파다노랑 뮌스터 치즈였지요.
뮌스터 치즈는 그 이후 신이현의 『알자스』에서 다시 보고 기겁했습니다. 꼬리꼬리한 것이 화장실 냄새보다 지독한 향이 나는 모양인데, 제가 먹었던 것이 그것이라니 믿을 수 없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이름만 같고 다른 치즈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하기야 가자미 식해도 시판하는 것과 직접 만드는 것은 그 맛의 차이가 엄청나니, 동명이치즈가 아니라 먹기 편하게 나온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하여간 치즈가 냉장고에 들어 앉아 있으니 살림하시는 어머니 입장에서는 심기 불편하지요. 이런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게으름이 고양이가 되어 들어앉아 있어 계~속 만드는 걸 미뤄왔습니다. 크림파스타를 만들어 그걸 유리 그릇에 담고 오븐에 넣자니 번거롭잖아요.

그러다 이날은, 파스타를 만들되 그 위에 치즈를 올리고 뚜껑을 덮어 녹여버리자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해볼까 말까 고민하는데 옆에서 G가 '먹고 싶은게 없지만 배고프다'라며 제 속을 박박 긁는군요. 뭘 먹을까라고 물었더니 그냥 적당히 먹자는 둥의 말을 꺼냅니다. 이걸 그냥...-_-+
(전 평일에 보통 밥을 먹으니 주말은 특식을 먹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일인데, 회식을 자주하는 G는 특식을 먹든 아니든 상관 없으니까요.)



하지만 목마른자가 우물을 파는 법.

1. 집 찬장에 몇 달 째 들어 앉아 있던 푸실리를 꺼냅니다. 원래 저건 G가 마카로니 치즈를 만들어 먹겠다며 사왔다가 한 번 만들어 먹고는 느끼하다며 그대로 찬장에 넣어 잊혀져 있었습니다. 작은 냄비에 물을 담고 소금을 넣고 파스타를 삶습니다. 작은 냄비를 쓰는 이유는, 소스를 만들 때까지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2. 그 사이 냉장고에서 양파와 지난주에 사둔 느타리 버섯 한 팩을 꺼냅니다. 버섯을 사온 이유가 지난 주에 크림파스타를 해먹기 위해서였는데 게을러서 미뤄두는 사이 버섯이 채소칸에서 2주를 보냈습니다.-_-; 양파 하나를 채 썰고 버섯은 손질해 손으로 찢어둡니다. 채소를 준비하는 사이 웍 역할을 하는 프라이팬을 불에 올려 센불로 달구고 거기에 들기름을 두릅니다.(...) 왜 들기름이냐 물으시면, 버터를 찾을 시간이 부족했다 해두지요.; 그리고 양파와 버섯을 넣고 볶습니다.


3. 재료를 프라이팬에 두고 방치하는 사이에 설거지를 합니다.(...) 그리고 냉동실을 뒤져 이전에 사다 놓았던 버터를 꺼내 작은 조각을 준비하고, 우유를 꺼내 갈팡질팡하다가 커다란 컵에 따르고 전자렌지에 1분 30초 돌려 데워둡니다. 우유는 원래 팬에 데울 생각이었지만 그 팬에 파스타를 삶고 있었습니다.


4. (들기름 때문에) 적당히 갈색이 도는 채소는 꺼내 그릇에 옮겨두고, 다시 프라이팬을 불에 올린 후 버터를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밀가루를 꺼내 버터가 녹은 것을 확인하고는 뿌립니다. 버터와 동량으로 하면 됩니다. G에게 볶고 있으라고 한 다음 뒷 정리를 하다가 버터랑 밀가루가 잘 섞인 것을 보고 렌지에서 우유를 꺼내 그냥 붓습니다. 그리고 휘젓고 있으라 시킵니다. 그리고 저는 또 설거지를 합니다.


5. 바닥에 붙어 있던 루가 우유랑 잘 섞인 것을 보고는 채소를 투하합니다. 그리고 소금과 후추를 넣고 휘휘 젓습니다. 이 때 간은 가능한 약하게 합니다.-ㅅ- 프라이팬은 내버려 두고 G에게 강판과 치즈를 찾아오라고 시킵니다. 치즈를 좋아하는 G는 아무말 없이 잘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저는 파스타를 건져 소스에 넣습니다. 뒤적거리다가 섞인 것 같다 싶을 때, 그라나 파다노를 강판에 대고 직접 갈아 파스타에 뿌립니다. 치즈가 간간하기 때문에 별다른 간을 하지 않아도 소스는 절로 간이 됩니다.


6. 팔이 아프다고 투덜대던 G를 대신해 치즈를 갈다가 되었다 싶으면 정리해 또 챙겨 넣습니다. 그리고 다시 설거지 모드에 들어가고, G에게 슬라이스 된 뮌스터 치즈를 적당히 올리고 뚜껑을 덮으라 시킵니다. 뭔가 되는 것 같이 보이는지 이젠 말을 잘 듣는군요.'ㅅ' 그리고 먹을 준비까지 G에게 맡깁니다. 이쯤되면 설거지도 뒷정리도 끝.




치즈가 녹진녹진하게 묻어나는 버섯크림스파게티.-ㅠ-
채소를 볶을 때 간을 하지 않았지만 소스가 간간해서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다음에는 채소 볶을 때도 필히 간을 해야겠네요.

치즈는 진리! 크림소스도 진리! 진하고 죽죽 늘어지는 소스에는 푸실리가 진리! >ㅠ<


(하지만 쓰고 있는 사람도 염장당하는 중이라능...;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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