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산책 코스. 다음 지도에서 미리 찾아보고 갔는데도 살짝 헤맸습니다. 헤맨 부분은 삼익아파트 근처였지요.

1. 산책의 목표는 딱 하나였습니다. 대흥역에서 홍대입구로 가는 직선 코스를 찾는다.
그리고 그 목표는 상위목표를 두고 있었는데, 커피구입과 꽃보다도 꽃처럼 8권의 구입이었습니다. 꽃꽃 8이랑 맛의 달인 104(...)의 리뷰는 다음 글에 다루지요.


2. 커피를 사러 갔습니다. 가서 주문해놓고 홀랑홀랑 가계부를 쓰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제가 쓰는 펜을 유심히 보시더니 물으십니다.

"혹시 만년필인가요?"

넵. 만년필입니다. 평소 들고 다니는 펜이 딱 세 자루인데, 파랑과 검정볼펜 한 자루씩, 거기에 만년필을 한 자루 가지고 다닙니다. 그리하여 커피가 볶아지는 동안 아저씨와 둘이서 이런 저런 만년필 이야기를 했더랬지요. 그리고 돌아 나올 때는 커피 값도 깎아주셨습니다. 만세! >ㅅ<


2-1. 제가 만년필을 처음으로 받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좀 빠르지 않았나 싶지만 중학생쯤 되면 만년필 써도 되지 않겠냐며 아는 분이 선물로 주셨지요. 물론 관리가 제대로 안되어서 못쓰게 되었습니다.; 잉크를 담아 놓고 방치하다보니 그리 되더군요.-_-; 게다가 쓰던 잉크는 빠이롯트 제도용 잉크였을 것인데...;

2-2. 필압이 높은 편이라 펜보다는 연필, 볼펜을 선호합니다. 일기도 항상 볼펜으로 쓰고요. 펜으로 쓰면 오히려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볼펜이 좋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필기 도구는 연필입니다. 샤프도 아니고 연필. 사각사각 쓰는 느낌이 상당히 좋지요. 빈 종이 한 장 두고 슥슥 써나가는 느낌은 그 무엇에 비할바도 없습니다. 그런 때는 글씨를 상당히 크게 쓰는데...

2-3. 지금 쓰는 만년필은 아버지께 받은 것입니다. 아버지가 3년이었나 4년간 근무했던 회사를 떠날 때, 회사 사람들이 선물로 만년필을 주었답니다. 아버지는 쓰실 일이 없다며 제게 주셨고 저는 감사히 받아 쓰고 있지요. 그리고 그걸 핑계 삼아 교보에 가서 전용 잉크를 사오기도 했습니다. 만년필은 가능하면 같은 회사의 잉크를 쓰는 것이 좋다고 어디선가 봐서 그렇지요. 그 당시 만년필에 대한 로망이 살짝 생긴 것은 오사키 요시오의 단편 소설을 읽고 나서 였습니다. 주인공이 만년필을 모아 전용 케이스에 보관하며 독특한 색의 잉크를 담기도 하고 열심히 관리하는 모습이 꽤 멋져 보였거든요. 그 때 마침 만년필을 받았으니 저도 특이한 색의 잉크를 쓰고 싶었습니다.
아, 독특한 색의 잉크에 대한 로망은 엘러리 퀸의 「중간지대」 때문이기도 하군요. 잊고 있었습니다.

2-4. 그리하여 교보에서 잉크를 사게 되었는데 갈색이 좋았지만 그건 안 들어왔더군요. 그래서 무난한 남색을 골랐습니다. 훗훗훗.


3. 커피를 사들고 홀랑홀랑 걸어갑니다. 일단 신촌로터리 방면으로 걸어 가다가 철길을 따라 걷습니다. 철길은 지금은 열심히 개발중이라 막아두었지만 여튼 홍대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옛 철로를 따라 걷는 것이지요. 이게 경의선 철로였던가요. 하여간 열심히 따라 걷습니다.

3-1. 기억해두었던대로 삼익아파트가 보이자 아파트를 끼고 걷습니다. 주택가의 골목길은 아무리 가로등을 밝혀 놓아도 스산하군요. 가방 속에 뭐 들은 것 없나를 생각하며 걷는데 눈 앞에 이상한 것이 보입니다. 오른편, 차들이 나란히 노면주차되어 있는데 어느 차의 본네트 위에 고양이가 한 마리 앉아 있습니다. 헉. 크군요, 큽니다. 상당히 큽니다. 고양이의 보은에 등장하는 부타보다는 날씬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몸집이 큰 고양이가 차 위에 올라 앉아 열심히 몸단장을 합니다. 으아. 사진으로 찍고 싶지만 제대로 찍을 수 없을테고 또 도망 갈 것 같고.
근데 저 무게가 올라 앉으면 차가 망가지지 않을까.;

3-2. 그 골목이 막다른 골목이어서 조금 헤매다가 다시 신촌병원 옆으로 나오는 길을 찾아 걷습니다. 그 길을 나왔더니 대로가 등장하면서 창천삼거리라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호오. 언덕배기에 있는 아파트 옆길을 따라 걸어가면 왠지 산울림소극장과 맞닿은 삼거리가 나올 것 같습니다. 그쪽으로 나가면 커피프린스 앞을 지나 홍대입구역으로 그대로 빠집니다. 언덕 하나만 넘으면!


4. 그리하여 홍대입구까지 무사히 걸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ㅂ'
가는 길에 케이크집과 크로켓(고로께)집을 하나씩 찾았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찾아가야겠네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