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는 특정 주제의 책들을 왕창 빌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 소설, 여행기, 요리책, 일본 수필, 서양소설 등만 빌리는 거죠. 평소 잘 가지 않던 쪽의 서가를 들여다보다가 이런 책도 있었네라며 빼다보니 잔뜩 고르게 되는 겁니다. 지난번에 도서관 갔을 때는 일본 수필만 왕창 빌렸는데 어제는 일본 소설을 잔뜩 들고 왔습니다. 잔뜩이라고 해봐야 네 권 밖에 안되지만 말입니다.'ㅂ'; 어제 짐이 많아서 수필 한 권에 소설 네 권 빌리고는 두 손 들었거든요. 그 외에 전문서 두 권이랑 유인물이 잔뜩 있어서 말입니다.

제목에 아예 일본 수필이라고 언급한 것도 지난 주에 빌린 책이 수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모저모 읽은 책들을 적어봅니다.


「심리학이 서른살에게 답하다」는 베스트셀러인데다가 전작인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가 유명해서 궁금한 김에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제 입맛에는 맞지 않더군요. 다 아는 이야기들의 나열인데다 편집이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빽빽하게 담고 책도 가볍게 만들었다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종이가 가벼우면 보존성은 떨어지긴 하지만 읽기에는 편하죠.
범용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런 일반론이 가슴에 확 들어와 박히는 때가 있으니 갈피를 못잡거나 방향을 못 잡을 때,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읽으면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활속의 예술」은 오하시 시즈코의 「멋진 당신에게」와 비슷한 느낌의 수필입니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되새겨서 일본과의 차이를 말하고 있는데 글 분위기를 봐서는 상당히 예전에 나온 책 같습니다. 한국에 출간된 것이 96년이니, 일본에서 나온 것이 80년대라 해도 뭐...'ㅂ'; 옛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뭔가 한갓진 느낌이라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우아함(?)을 만끽할 때 읽으면 좋을 겁니다. 다만 도서관에서 밖에 구할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지요. 그리고 모든 도서관에 다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행복한 느낌」은 「멋진 당신에게」를 번역한 책 중 하나로 보입니다. 왜냐면 제가 읽은 부분이 상당히 많이 섞여 있었거든요. 이것도 50% 정도는 이미 읽은 이야기인데 나머지 50%는 읽지 못했던 부분이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보고 있자니 정말 「멋진 당신에게」 1권부터 5권까지를 몽창 사다가 죽 읽고 싶어지는군요. 아쉽습니다.ㅠ_ㅠ


「들꽃 진료소의 하루」는 이전에 「들꽃 진료소」라는 책을 봐서 같은 작가인 것을 알고 빌렸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에 일본의 시골에 있는 어느 진료소가 배경이고 그 일상생활이 중심 내용이었다고 기억했는데 책을 직접 읽어보니 진짜 어렴풋한 기억만 남았더군요. 들꽃 진료소 = 野の花(노노하나) 진료소는 호스피스 기관입니다. 연장 의료 외에는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이지요. 종합병원에서 일하던 글쓴이가, 돗토리에 내려와서 작은 진료소를 연 것이 계기입니다. 재정 문제도 있으니 운영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그래도 잘 버틴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들꽃 진료소」쪽이 나중에 나온 책 같은데 이쪽도 빌려왔으니 조만간 감상이 또 올라갈겁니다. 아마 이전에도 적어 올린 것이 있을텐데 이글루스 백업 파일은 아직도 손 못대고 있습니다.;

책을 보고 있노라면 편안하게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섯가지 복 중에 죽음도 있던가요. 잘 죽는 것도 잘 사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지요. 다른 사람에게 가능한 폐를 덜 끼치고 죽고 싶다는 것이 제 생각인데 생각대로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뭐, 현대 사회에서는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지만요. 의학이 발달하고 평균 수명이 늘다보니 환갑을 넘어간 그 뒤의 삶은 뭔가 여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분이기 때문에, 잘 움직이지 않고 수명이 다된 기계(몸)를 끌고 어떻게든 끌고 나간다는 거죠. 잘 관리하면 심하게 고장나지 않고 문제 생기지 않게 살 수도 있지만 써야하는 기간(수명)이 점점 늘어나니 결국에는 고치러 병원에 들락날락하게 되고, 비용은 많이들고, 하지만 모아 놓은 돈은 없고..(이제 그만.;)

지금 외조부가 병원에 입원중이십니다. 그렇다 보니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더군요. 부모님은 벌써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고 저도 그에 대한 각오를 해야한다는 생각일까요. 노령화 사회가 되면서 이제 보험회사의 부담도 상당히 늘어날텐데 혹시 보험회사 주식을 가지신분은 슬슬 처분을 생각하...(퍽!)

이 책을 읽다보니 이런 잡다한 생각이 들더랍니다.


「미녀냐 추녀냐」는 원제가 부정한 미녀나, 정숙한 추녀냐였나봅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그 문제거든요.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답은 때에 따라 다르다입니다.'ㅅ'
미녀는 정확한 통역이고 추녀는 상황에 따른 의역을 말합니다. 정숙하다는 것은 깨끗하게, 잘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부정하다는 것은 잘못된, 틀린을 의미합니다. 문맥에 따라 다르게 읽히겠지만 부정한 미녀는 상황에 따른 의미를 전달하고 있지 않은 직역체 통역, 정숙한 추녀는 맥락에 따른 의미를 잘 전달하는 의역 정도로 보면 되겠지요.

요네하라 마리는 러시아어 통역사입니다. 통역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이 책으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탔다네요. 수상했을 때 심사위원이었던 오에 겐자부로가, 제목을 두고서 요미우리 문학상 역사상 최악의 제목이라 했다는데 그렇긴 합니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제목을 잘라내고 출간했겠지요. 저는 그 잘린 제목에 낚여서 가벼운 이야기겠거니라며 집어 들었는데 말입니다. 어흑. 제 취향에는 「문화견문록」이나 「미식견문록」이 더 맞습니다. 이 책은 가벼운 책이 아니라 그런거죠.;

일본어를 대강 배운 입장에서 일본어의 장단음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이 없었는데 읽다보니 생각이 확 바뀌었습니다. 얼렁뚱땅 넘어가지 말고 제대로 다시 공부해야겠다고요. 한국어와 일본어가 상당히 유사한 만큼, 70-80%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100%의 수준으로 일본어를 구사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잘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동감했습니다. 그 비슷한 이야기가 「마녀의 한다스」인가에서도 나왔지요. 서양인이 스페인어를 배울 때와 일본인이 스페인어를 배울 때 단기적으로는 서양인이 빨리 배울지 모르지만 완성도는 일본인쪽이 높다는 이야기였다고 기억합니다.

다른 부분은 다 재미있게 보았는데 가장 마음에 안드는 것이 책 뒤에 실린 나고시 겐로의 해설편이었습니다. 거기서 쿠릴열도 반환에 대한 언급이 나온 걸 보고는 기분이 확 상했지요. 독도가 떠올라서 그렇습니다. 그 부분을 제한다면 대체적으로 외국어 공부의 열망을 확! 불러 일으켰다가 의욕을 확! 꺾어 버리기도 하는 책이니 감안하면서 보세요. 하지만 보고 있자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확실하게 듭니다.'ㅂ'


김혜남,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 걷는나무, 2009. 12000원
도쓰카 마유키, 「생활속의 예술」. 영림카디널, 1996. 6000원
오하시 시즈코, 「행복한 느낌」. 베틀, 1992. 4500원.
도쿠나가 스스무, 「들꽃 진료소의 하루」, 김난주. 샘터사, 2005. 9000원.
요네하라 마리, 「미녀냐 추녀냐」, 김윤수. 마음산책. 2008.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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