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책에 대한 감상을 한 번에 쓸까 하다가 적다보니 이 두 권만으로도 충분히 길어져서 따로 뺍니다. 다른 책들은 또 묶어서, 혹은 한 번에 쓰겠지요.


도서관에 모리미 도미히코(토미히코)의 책이 뭐가 있나 찾아보았더니 최신작을 빼고는 거의 다 있는 모양입니다.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는 서가에 꽂힌 걸 볼 때마다 볼까말까 망설였지만 손 안대고 망설이고 있었지요. 하지만 냐옹냐옹님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와 「유정천 가족」이 닿아 있다는 말을 들으니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마침 「유정천 가족」은 도서관에 있어서 먼저 빌려다 보았고 그 뒤에 「밤은 짧아~」를 빌려왔습니다. 출간 순서는 반대이고, 제가 호기심을 먼저 가진-읽어보고 싶어 했던 것도 「밤은 짧아~」쪽입니다. 「유정천~」은 이 때 처음 제목을 들었습니다. 「여우이야기」는 제대로 읽었는지 아닌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다지 취향에 맞지 않았다는 기억은 확실히 납니다. 아마 서가에서 대강 훑어보고 내려놓지 않았나 싶습니다.'ㅂ'

하여간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은 범용적으로, 아무에게나 추천하기는 조금 망설여집니다. 취향을 타는 책이라 그렇고요. 깔끔한 내용이 아닌데다 환상적인 내용이 일상적인 이야기와 뒤섞여 있다보니 더 그렇습니다. 애초에 「유정천」은 교토에 너구리와 텐구와 인간이 공존해 살고 있다고 설정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주인공은 잘난 것과는 거리가 멀고, 대체적으로 등장인물들은 어딘가 나사가 풀려 있거나 독특하거나, 일반인의 잣대를 들이대면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외도 있지요. 「유정천」에서, 냄비요리를 먹었다는 이유로 제게 죽도록 미움을 받고 있는 어떤 텐구.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니 정말 싫습니다. 뭐, 누구씨도 상당히 싫어하지만 그 쪽은 처음부터 미움받기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니 놔두고 말이지요.
「밤은 짧아~」도 일상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일상 속의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비일상의 인물들이 많습니다. 「유정천」을 먼저 읽고 보다보니 이쪽도 정체를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얌전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의외로 마스터님 취향에는 맞을지도...요?;


내용을 두고 보자면 「유정천 가족」이 설명하기 쉽습니다. 교토에는 너구리와 텐구(도깨비의 일종으로 보시면...;)와 인간이 공존합니다. 너구리와 텐구는 변신해서 인간 속에 어울려 살지만 가끔은 장난을 치거나 사고를 칩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몇 년 전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교토에는 1년에 한 번, 너구리 냄비요리를 즐기는 인간들의 모임이 있는데 그 냄비요리의 재료가 된 겁니다.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는지,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주인공인 나(야사부로)의 시점에서 번갈아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참고로 말하면 야사부로는 너구리 네 형제 중 삼남이며, 나머지는 야이치로(첫째), 야지로(둘째), 야시로(막내)입니다. 일본어를 아시는 분이라면 금방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등장하는 여러 키워드가 일상 속의 비일상을 주장하는 「밤은 짧아~」와 닿아 있습니다. 특히 「밤은 짧아~」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이 누군가 골몰하게 되는데요, 「유정천」이 뒤에 나온데다가 최신의 이야기라 치면 「밤은 짧아~」의 등장인물인 누구가 누구인지 좀 고민스럽습니다. 그 누구씨가 결혼하기 전인가 싶기도 하고. 원서를 봐야 그 이름을 두고 추론할 수 있을텐데요.

「밤은 짧아」는 이공계의 솔로탈출 해피엔딩기로도 읽힐 수 있으며 염장도가 조금 있으니 주의하면서 보세요. 하지만 이 아가씨 정말 보통이 아니군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말술인데다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데다 운도 굉장히 좋은데다. 하지만 선배 쪽이 노력형이니 괜찮을거라고 봅니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바퀴.....(거기까지)
하여간 여기 나온 코스대로 한 번 돌아다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용의 느낌을 서울식으로 비교하자면 이런 정도?

1. 신촌에 있는 모 술집에서 결혼식 피로연이 열립니다. 대학 클럽(동아리) 동기인 두 사람이 결혼한 것인데, 주인공은 거기서 클럽 후배(아가씨)를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신촌에서 신나게 술판이 벌어지는 가운데, 아가씨는 술이 더 마시고 싶어져서 피로연장을 나와 돌아다니다가 한 아저씨를 만나 신나게 술을 푸고, 신촌 여기저기를 같이 돌아다닙니다. 주인공은 쫓아다니다가 신촌 어드메에서 또 이상한 사람을 만나 작은 사건에 휘말리고, 거기서 또 아가씨를 만나고... 결국 아가씨는 신촌 바닥의 알아주는 애주가와 대작을 해서 이겨, 같이 다니던 아저씨의 빚을 탕감해줍니다.

2. 와우북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소식에 주인공은 갈지 말지 갈등하지만 아가씨가 거기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냅다 달려갑니다. 그리고 아가씨가 찾는다는 작은 동화책을 찾기 위해 지구상에서가장매운음식으로만들어진 훠궈 냄비에 도전합니다. 얼굴 도장은 찍지만....?

비유한겁니다.;
소설은 주인공(나)와 아가씨(나)의 시점에서 번갈아 진행됩니다. 교토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텐데, 저는 최근에 「때때로 교토」를 읽으면서 교토 여행의 유혹에 시달려서 교토 지도를 뽑아 놓고 여행 경로 연구를 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이해가 쉬웠습니다. 교토 지명을 모르면 상대적으로 재미가 떨어지겠지요.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놀러다니는 소설을 볼 때, 그 각각의 지역을 알고 있으면 재미가 배가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마 이 두 사람이 다니는 대학은 K대가 아닌가 싶지만 확신은 못하겠네요.


두 책을 같은 번역자가 번역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몇몇 용어들이 따로따로 놉니다. 그게 읽으면서 조금 불편했습니다. 가짜 덴키부로라는 술이 등장하는데 「유정천」에서는 덴키부로라고 나왔지만 「밤은 짧아」에서는 전기부랑이라고 부릅니다. 「밤은 짧아」에서 그 술을 소개하면서 전기 운운하는 말장난이 등장해서 덴키부로가 아닌 전기부랑이라 소개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밤은 짧아」에서는, 교토의 몇몇 지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의 문제도 있지요. 이마데가와 마치를 이마데 강 거리라고 하는 것이 좋은가 아닌가의 문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마데가와는 이마데 강, 가모가와는 가모가와라고 하면 헷갈린다고요.-ㅁ-


모리미 토미히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서혜영. 작가정신, 2008. 12000원
 「유정천 가족」, 권일영. 작가정신, 2009. 12000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