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올리면서 몇 번인가 언급한 적 있지만 제가 집에서 만든 음식은 대부분의 경우 저만 먹습니다. 제 입맛에만 맞도록 만든 음식이라 다른 사람들이 먹으면 지나치게 싱겁거나, 퍽퍽하거나, 달지 않거나 합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이런 조합이 가능한가 싶은 음식들도 등장합니다.

제목만 봐서는 절대 이상하지 않은 토마토를 넣은 채소 수프는 그 자체만으로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양파 듬뿍, 양배추 듬뿍, 당근 잔뜩을 썰어서, 양파, 당근, 양배추 순으로 넣고 볶다가 적당히 익으면 거기에 토마토 캔 두 개를 넣는 겁니다. 토마토가 통채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깍둑썰기 해서 통조림으로 만든 것이라 그냥 붓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물을 붓고 여기에 허브 드 프로방스와 굵은 소금을 넣어 푹푹 끓이면 완성. 당근이 푹 무를 정도로 끓입니다. 수프에 흰콩을 넣기도 하는데 이 때는 깜박하고 콩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만이라면 괴식은 아닙니다. 그저 토마토를 넣은 채소수프로 미네스트로네와 비슷한 느낌인겁니다. 고기도 안 들어가고 파마산 치즈 껍질도 없지만 비슷하긴 합니다. 고기는 사실 안 넣는 것이 아니라 못 넣는 것에 가깝지요. 고기를 추가하면 재료비가 배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코스트코에 갈 때마다 닭가슴살의 구입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도 그 연장선입니다. 독특한 취향일지 몰라도 전 닭다리보단 닭가슴살이 더 좋습니다. 살이 많아서 좋아요!


본론으로 돌아와서,

2월 어느 날의 난잡한 작업 책상 모습입니다. 점보컵에 담긴 것이 그 채소수프입니다. 옆에 있는 것은 고구마. 고구마는 길게 썰어 굽는 쪽이 굽는 시간도 짧고 먹기에도 편합니다.
그 뒤로 보이는 캐드펠 시리즈와 리스토란테 파라디소는 일단 넘어가죠.;


저 뒤로 보이는 티코지에는 커피가 아니라 일본에서 사온 겐마이차(현미녹차)가 들어 있습니다. 옥수수와 현미 알갱이, 그리고 녹찻잎이 들어 있습니다. 말차가루와도 비슷한 가루가 많이 나는데 맛은 깔끔하고 고소합니다. 환율 오르기 전에 구해둘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물품 중 하나입니다. 빵빵한 커피 팩-그러니까 커피 200g 팩 하나 정도의 부피가 1천엔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거라면 한참을 두고 마실텐데 일본 여행 갈 때는 홍차 구입에 바빠 다른 종류의 차는 거의 손을 안댑니다. 그러다보니 현미녹차도 구입한다하고는 까맣게 잊어버렸지요.


이것이 본론.
토마토 수프가 괴식이 된 이유는 이겁니다. 사진에서도 자태를 아름답게 뽑내고 있는 저 팥.-_-a
실은 팥죽을 해먹으려고 팥을 삶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언젠가는 만들겠지라며 점점 뒤로 미루고 있다가 상하지 않을까 걱정될 때쯤에 간단하게 팥을 해치우는 방법이 생각난 겁니다. 바로 채소 수프에 팥 삶은 것을 넣는 겁니다. 물론 수프 전체에 팥을 넣고 끓이면 나중에 팥 때문에 홀랑 다 상할 수 있으니, 만든 수프를 조금씩 데워 먹을 때 팥을 넣는 겁니다. 두 큰술 정도? 하여간 듬뿍 넣습니다. 그런데 저기에 또 흰콩이 보이는 걸 봐서는 저기엔 밥도 들어갔군요.-ㅅ-; 채소 수프만으로는 속이 허전하다 싶으면 리조토를 끓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박박 우기면서 식은밥도 수프에 넣어 같이 끓입니다. 그러면 정말로 괴식 완성.
제 입맛에는 잘 맞습니다. 푹 끓인 밥알과 채소국물이 섞이면 그것도 나름 좋고요. 거기에 콩과 팥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맛있게 한 그릇 뚝딱 비웁니다. 물론 G는 손도 안댑니다. 채소 수프야 가끔 먹긴 하지만 콩이 들어갔다 하면 그것만으로도 손을 안댑니다. 거기에 팥이 들어갔다면 더욱 손을 안 댈 것이고 밥이 들어갔다면 괴식으로 낙인 찍고 외면합니다.


팥을 다 먹어서 요즘엔 그냥 평범한 채소수프를 먹지만 뜨끈하고 든든한 것이 한 끼 식사로 제격입니다. 이렇게 대강 만들지 않고 본격적으로 만든다면 더 맛있겠지요.



덧붙임. 언젠가 해보고 싶은 것인데.. 저 채소 수프에 카레 가루를 넣어 다시 끓이면 채소카레가 되지 않을까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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